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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스도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을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독교는 하늘의 가치가 땅의 삶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확장되어진 역사입니다. 기독교 하나님의 뜻과 하늘의 질서를 땅의 제도와 문화 속에 이루어 낸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문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다 사명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너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말씀이 성도의 삶, 교회의 사명, 우리 시대의 선교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하늘에서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정체성을 얘기하는 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씀했어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어떤 분들은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시민권은 하늘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예요. 우리는 하늘의 가치, 하늘의 질서와 문화, 하늘의 영광과 하늘의 뜻을 알고 그것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은혜가 됩니다. 여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걸어갑니다.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낯선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왜 전혀 다른 자기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기 때문에 함께 살지만 전혀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는 낯선 사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난받기도 하고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에요. 그리고 이런 일들을 당할 때 우리는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짓고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 취급을 하고 비난받고 박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땅의 현실과 하늘의 가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어요.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고 그 사랑을 이 땅에 전해주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이 세상에 실천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 체계와 전혀 다른 더 높고 고상한 그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만이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신 거예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말은 먼저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가치를 경험하고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도 미시오데이 하나님의 선교에 우리 모든 교인과 우리 교회가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미셔널 처치 선교적 교회가 되고, 우리의 삶이 미셔널 라이프, 선교적 인생이 되기로 결단하고 출발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먼저 그 미션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계시는 하늘, 하늘의 가치와 하늘의 질서와 하늘의 뜻을 경험해야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맛보아 알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미셔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은혜 받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 행동가들은 무조건 어떤 뜻이 정해지면 행동을 먼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행동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뜻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 뜻을 묵상하고 내면화시키고 그 뜻으로 충만한 사람이 움직일 때 세상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 생명을 흘려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 그러면 먼저 그 은혜를 받는 일에 힘쓰는 교회가 돼야 돼요.
이번 주에도 우리가 은혜로운 성회를 마련했습니다. 목금토 주일까지 이어지는 특별한 시간이에요.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에요. 이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두 나오셔서 함께 기도하시고 하늘을 바라보시고 하늘 문이 열리고 여러분들에게 쏟아지는 그 놀라운 은혜에 깊이 젖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또 주님은 땅에서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삶의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 이 자리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곳이에요. 삶의 자리, 내 삶의 상황 그것을 독일어 신학 용어로는 지츠 인 네벤이라고 합니다. 삶의 자리 이 자리가 중요합니다. 여기가 여러분의 사명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이에요. 그것이 가정이 되기도 하고 학교가 되기도 하고 직장이 되기도 하고 사업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꼭 아프리카에 가야만 선교를 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내 삶의 자리에서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현실을 잘 살아내야 합니다. 마치 이 땅의 삶을 초월한 사람처럼
여러분 공중부양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붕 떠 있는 사람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우리의 이상은 하늘에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 땅에 있어요. 그 이상을 실현해야 되는 곳이 이 땅입니다. 그래서 공중부양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과 세상의 현실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하는 사명의 현장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신앙생활 할 때 70년대 80년대는 불렀던 찬양들이 주로 그런 거였어요.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우리 세대는 그것 익숙합니다. 내 모든 보안은 저 하늘에 있는 그래서 저도 은혜 받고 시골에 내려가서 이렇게 잔디밭에 가을에 이렇게 누워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면 저 구름 사이로 주님이 오실 것 같고 이제 내가 곧 가야 되는 세상이고 그런 시간들을 많이 꿈꿨어요.
그런데 이 찬양은 반은 맞고 반은 찬양이 틀린 건 아니겠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겁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요. 죽어서 주님 앞에 서는 어린 양 보좌 앞에 가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버리고 떠나야 될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인 됨을 보여야 하는 현장이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매우 이상적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스콧 라트레 박사는 기독교는 영혼의 인간의 영혼만을 구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사람의 생활과 습관과 공동체 문화를 변화시켰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변화가 문명 전체로 확장되면서 기독교 문명 운동이 일어난 거예요. 하늘에서 개인에게로 하나님의 은혜가 또 개인에게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문화와 문명 전체로 흘러가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 하늘의 가치가 가정으로 세상으로 흘러가는 은혜와 생명의 통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형제 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와서는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정말 최고의 그리스도인 같은데 집에 가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몇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교회 가서는 천사 같은데 집에 가면 악마로 변하는 거죠. 가정에 가면 지옥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처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를 그것이 교회로 그것이 사회로 문화와 문명으로 흘러갈 때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 솔직히 말해서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게 부부 관계더라고요.
아멘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살아보니까 우리가 저도 어제 우리 또 이제 아들이 결혼을 했지만 저도 이제 결혼 생활 30년이 지난 야 정말 그 우리는 그 반대를 무릅쓰고 2년 반에 모진 반대를 우리 장로님이 지금 보고 계실 텐데 그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해서 행복하리라고 막상 살아보니까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넘어야 될 게 많고 그래서 여러분들은 전도사 목사는 안 싸울 것 같죠 우리도 싸웠어요. 그런 시간들을 보내. 근데 가장 먼저 그 하나님의 뜻과 서로 사랑을 실천해야 될 가장 기본 단위가 가정이잖아요. 근데 여기서 안 되는데 내가 교회에서 또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요?
이게 돼야 됩니다. 물론 요즘은 전혀 싸우지 않습니다. 제가 지면 되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돼요. 우리 집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거꾸로 생각해 그건 뭐 자유고 어쨌든 부모 자녀 간에도 많이 싸웁니다. 그렇죠 우리가 자녀를 낳아보면 얼마나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이런 과장된 표현이 어디 있어요 근데 진짜 애들을 키워보니까 내가 내 자녀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
그런데 어느 날 이놈이 그래가지고 자기가 낳은 딸하고 싸우고 아들하고 싸우고 이 줄다리기 하고 그런 게 인간이에요. 근데 부모 자식 간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돼
뿐만 아닙니다. 형제 간에 직장에서 학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그렇죠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근데 제일 어려운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어려워요.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내 사람이면서 가장 어려운 게 가까이 있는 사람. 솔직히 말해서 샹젤리제에 지나가는 사람이 나보고 욕한다고 내가 열받을 일 있어요?
없어요. 아프리카 꼬뜨디부아에 어떤 청년이 막 나를 욕한다고 내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을 일이 없어요. 그런데 내 직장 동료 같이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것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또 사업의 현장에서 하늘의 공의와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되고 성실해야 됩니다. 물론 그게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그 최선을 다하는 그 몸부림이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라는 이 기도를 실현하는 과정이에요.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에서 하늘의 은혜와 사랑이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나님 나라의 환대를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은 강자를 귀히 여기고 약자를 멸시하는 것이 세상의 가치입니다. 꼭 닭의 무리와 같아요. 닭도 병든 닭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쪼아 그걸 좀 보살펴야 되는데 더 괴롭히고 쪼아 인간이 그래요. 뭐 말로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강자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기알리 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강자든지 약자든지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동일한 하나님의 현상이 있는 거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자면 얼마나 부자고 가난하면 얼마나 가난합니까? 하나님 앞에는 아무 차이가 없는 거예요.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일 뿐입니다.
그게 하늘의 뜻이에요. 그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강자와 약자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알고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돼요. 아니라고 말이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중 시민권자의 선교적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과 땅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혈연, 지연, 학연, 부족, 친구 뭐 얼마나 많은 관계들이 형성이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살면서 우리가 우리 인생에 형성된 모든 그 네트워크, 그 관계는 하나님의 복음, 하늘의 생명 하나님의 뜻이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된 하나님이 설계하신 하나님의 달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강을 건너서 저기로 가려면 다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복음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에요. 그 다리를 타고 흘러가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하나님과 이 세상, 하늘과 이 세상 사이에는 우리가 다리가 돼야 돼 음 복음이 흘러가는 다리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는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관계다. 괜히 그거 가지고 뭐 이걸 끊어 말어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그 모든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이웃에게로 세상으로 흘러가는 길로 활용을 해야 돼요. 그것이 바로 이중 시민권을 가진 또 하나님이 주신 그 미션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의 지혜이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선교학자 도날드 맥가브란이라는 분은 이것을 하나님의 다리 브리치 오프 가드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다리 복음이 세상 속으로 흘러갈 때 하나님이 그때 새로운 다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이미 다 구축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복음이 흘러가는 관계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복음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브릿지 헌신 예배로 드리고 있어요. 브릿지는 우리 교회 30대 청년들을 그룹입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알기로는 20대와 20대와 40~50대 그 세대를 이어주는 중간 역할을 우리가 하겠다. 그런 이제 의지와 의미를 가지고 이 브릿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금까지 왔어요. 이제는 세대 간의 불리지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는 데 역할을 하는 브리지 더 브리지 어프가 하나님의 브릿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브릿지 헌신 예배를 통해서 그렇게 새로 자리매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리가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 하늘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는 다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미셔너리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이 하늘의 문화를 가지고 이 땅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용서를 가지고 이 땅에서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거 예수 믿으면 제일 힘든 게 누군가를 용서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는데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평안을 폭력이 가득한 이 세상에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모이면 싸웁니다. 교회도 이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모였기 때문에 싸워요. 그래서 프랑스도 싸우고 미국과도 싸우고 한국과도 싸우고 사람들이 모이면 자꾸 갈등하고 싸웁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그 속에 들어가서 우리 자신을 녹여서 평화를 만드는 거예요. 바라기는 우리 선한 교회 교인들은 가는 곳마다 평화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좋잖아요. 선한 교회 선한 교회 다니는 교인 선하다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사람들, 절망하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해주고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은 절망하잖아요. 낙담하고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가서 잠시 만나도 잠시 5분만 얘기해도 눈빛만 마주쳐도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어야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셨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동체예요. 교회 와가지고 막 시험 들고 물론 개인적인 그 사람의 캐릭터의 문제도 있지만 어떤 공동체는 자칫하면 가만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더 상처받고 침체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정말 살아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곳에 가는 사람마다 나는 오늘 교회 갔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갔다가 죽어야 되겠다 이런 사람도 갔다가 다시 살아서 나와야 되는 거예요.
오늘은 나 오늘 마지막으로 예배드리고 이제 이혼 도장 찍어야지 이렇게 하고 왔다가도 예배드리고 나갈 때 손 잡고 나가는 역사가 있는 것이 교회 공동체 그게 교회입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소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돼야 돼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 기독교 문명 운동의 핵심 동력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어떤 혁명가나 어떤 탁월한 정치인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해요. 역사를 보세요. 물론 잠시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조금 변하는 것 같지만 진정한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잖아요.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절대 군주 국가를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어요.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는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정적 그 동지까지도 다 제거하고 나중에는 자기가 신으로 등극하는 그러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진정한 변화는 어떤 이상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 하늘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충만하게 누린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갈 때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보다도 더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특별히 오늘은 브리지 헌신, 예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알토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깊이 고민하시고 특별히 오늘 이 말씀처럼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을 위하여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매일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매일 확장되어서 세상이 하나님 나라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