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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反骨)
뼈가 거꾸로 솟아 있다는 뜻으로, 권세나 권위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골을 이르는 말이다.
反 : 거꾸로 반(又/2)
骨 : 뼈 골(骨/0)
반골(反骨)이란, 뼈가 거꾸로 선 것을 말하며 속뜻은 명령이나 권위,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생길 법한 기질이며, 특히나 겉으로 반골 기질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더욱 겉과 속이 달라지는 이중인격적인 면모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성인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골 기질을 면상으로 드러냈다가는 본인이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성인 나이가 되면 사춘기가 찾아온 청소년 때와는 다르게 반골 기질을 노골적으로 면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보기 어려워진다.
보통 익명을 이용한 온라인 상이 아니라면 뒤에서 눈에 잘 띄지않게 비방이나 일탈을 하는 방식으로 주로 일어난다. 사회적인 대세를 따르기 싫어하면서 본인들을 차별화시키는 힙스터 기질도 어떻게 보면 소프트한 반골 기질중에 한 부류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삼국지연의의 촉나라 장수 위연과 관련이 있다. 위연은 뒤통수가 눈에 띌 정도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백성들과 힘을 합쳐 봉기를 일으켜 한현을 살해하고 유비에게 투항하는데, 그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녹을 먹으면서 그 주인을 베었으니 불충이요, 자기가 사는 땅을 들어 바쳤으니 불의입니다. 게다가 위연의 골상을 보아하니 뒤통수에 ‘반골(反骨)’이 있습니다. 나중에 배반할 것이 틀림없은 즉, 미리 화근을 제거하려고 합니다”라며 처형을 건의하면서 나온 단어다.
그러나 유비는 그의 능력을 높이 샀으며, 지금 처형하면 백성들의 마음도 돌아설 것이라면서 위연을 받아들였고,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촉나라의 명장으로 활약했으나 제갈량 사후 위연은 진짜로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예상한 제갈량이 마대를 미리 첩자로 심어놓아 위연을 참살한다.
물론 이는 연의(演義)의 창작으로, 정사(正史)에서 위연은 한현의 부하였다는 기록이 없고 유비의 병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위의 반골 얘기는 나오지 않으며 위연도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 (비록 국가 전체를 전복시키는 수준의 반란은 아닐지라도) 제갈량의 유언을 무시하고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본인의 군을 마음대로 휘둘러 내분을 일으킨 죄로 참수당한다.
이와 유사한 용어는 고집불통, 마이페이스, 유아독존, 안하무인, 벽창호 등이 존재하지만 독선적이거나 고집이 세다는 의미보단 권력이나 명령에 반항한다는 쪽으로 자주 쓰이며, 옛날에는 역적에게 붙는 부정적인 단어였지만 후대에는 권위에 저항하거나 불복종한다는 중립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그 권위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반골이라는 말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투사'라는 찬사에 가깝게 쓰일 때도 있다.
반골(反骨)
쉽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기질(氣質) 또는 일정한 세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굽히지 않고 거슬러 버티는 기골.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뼈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쉽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기질 또는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말한다.
삼국지(三國志)의 촉서(蜀書) 위연전(魏延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에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난 위연(魏然)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용맹하고 호탕하며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탓으로 상대편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나쁜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유비(劉備)는 그를 장수로서의 능력을 인정하여 한중(漢中)의 태수(太守)로 임명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장비(張飛)가 임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비는 위연을 임명하게 된 까닭을 밝히기 위해 그 직무를 어떻게 담당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위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조조(曹操)가 천하를 들어오려고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를 막기를 원합니다. 부장이 인솔하는 10만 병사를 이르게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소멸시키기를 원합니다.”
유비와 사람들은 위연의 장엄한 말에 감복했다. 그러나 제갈량(諸葛亮)에게는 위연이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위연의 성품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목덜미에 이상한 뼈가 거꾸로 솟아 있는 것을 보고 장래에 반드시 모반을 도모할지도 모를 위험한 인물임을 짐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위연 역시 제갈량을 겁쟁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
어느 날 위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래서 행군사마(行軍司馬) 조직(趙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젯밤에 내 머리에 뿔 두개 거꾸로 나 있는 꿈을 꾸었소. 이것을 해몽해 주시오.” 조직은 말했다. “기린의 머리에도 뿔이 있고, 청룡의 머리에도 뿔이 나 있습니다. 변하여 하늘로 올라갈 상으로 천하에 보기 드문 길몽입니다.”
조직의 해몽은 사실과 달랐다. 사실 뿔은 칼 도(刀)자 를 사용한다. 용(用)자는 사용한다는 뜻이므로 꿈을 꾼 자의 목이 잘린다는 나쁜 꿈이었던 것이다. 위연은 이 꿈 해석을 믿고 모반을 꾀하려고 했다. 그런데 위연의 모반을 미리 알아본 제갈량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런 일을 대비하여 계략을 세워 두어 마대(馬岱)로 하여금 거짓 위연을 따르게 한뒤 마대로 하여금 목을 치게 했다. 그리고 삼족도 멸하였다.
사실 위연의 꿈에 등장한 뿔은 칼(刀)을 사용(用)한다는 뜻으로, 길몽이 아닌 흉몽인 것이다. 원래는 위연이 일으킨 모반이라는 뜻이지만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는 위연이 결코 촉(蜀)나라를 모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 오늘날에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뜻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나중에 위연은 모반죄에 걸려 죽지만, 이 장면을 두고는 공명(孔明)이 용맹,호방한 위연을 다잡기 위해 잔꾀를 부렸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반골(反骨)을 배타하는 사회에 있다. 통제사회라면 이런 부류를 반골로 찍어 거세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골의 또 다른 발상에 주목하는 열린 세상이다.
뼈가 거꾸로 박혔다는 반골의 골상학(骨相學)도 허무맹랑 하거니와, 역사적으로도 반골인 사람은 대개 자유분방하고 자주적, 창의적인 기질을 가졌다. 집단의 고식성(姑息性)에 저항하거나 예속을 거부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수많은 선각은 물론이고 묘청(妙淸)과 만적(萬積), 화가 장승업(張承業), 심지어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까지도 따지고 보면 시대와 불화한 반골 아니겠는가.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반골(反骨)이라는 김기덕 감독이 얼마 전 베를린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그에게서 풍기는 반골의 체취가 새삼 향기롭다.
[참고]
그러면 역사상의 위연(魏然)은 어떤가? 정사(正史)등의 사료를 보면, 그는 삼군의 우두머리인 촉(蜀)나라의 맹장이며, 촉(蜀)에 충성을 다하여 많은 전공을 올린 인물이다. 한중(漢中)을 공략한 후에 유비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중(漢中) 수비의 대임을 위연에게 주었다.
제갈량이 제1차 북벌(北伐)에서는 자오곡(子午谷)의 기습작전을 헌상하였다. 그의 계책은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시종 분전하여 많은 전공을 올렸다. 위연의 죽음에 대하여 기술한 정사의 위연전(魏延傳)을 보면, 양의(楊儀)가 마대(馬岱)를 보내 위연을 쫓고, 결국 붙잡아 죽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게 구체적 이유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말하는 것처럼 역모 때문이었을까?
정사(正史)의 후주전(後主傳)과 위연전(魏延傳)의 주(註)에서 인용한 위략(偉略)에 의하면, 양의(楊儀)와 위연(魏然)은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위연이 제갈량을 대신해 군사를 지휘하게 되자, 양의는 자신이 살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위연은 군사를 데리고 북(위魏)으로 투항할 생각이다’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수하의 군사를 이끌고 위연을 공격했다. 위연은 원래 북으로 투항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쫓기어 살해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위연은 위에 투항하지 않고 남으로 돌아가 양의를 공격했지만, 실은 역모 따위는 없었다’고 쓰여 있다.
위연에게는 원래 촉(蜀)에 반역할 의지는 없었고, 그가 죽은 것은 오로지 양의 때문이었다. 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억센 기질의 소유자로 묘사되었고, 반역의 악명을 뒤집어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하게 되었다. 그럼 위연은 억울한가? 그의 명예를 회복해야만 할까? 현재의 많은 학자는 위연의 죽음은 억울한 것으므로 명예를 회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담량소(譚良嘯), 장대가(張大可)의 공동 저작인 삼국인물평전(三國人物評傳)의 위연평정(魏延評傳)과 성도(成都) 무후사(武侯祠) 박물관에서 펴낸 무후사대관(武侯祠大館)의 ‘억울하게 죽은 대장 위연’등에서도 모두 위연의 명예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논자는 위연을 촉(蜀)나라에 있어서 유일한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장군이며 얻기 힘든 인재였다고 말한다.
또 그의 촉(蜀)에 대한 충성심(忠誠心)은 변함이 없었고, 머리에 반골(反骨)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소설가(小說家)의 터무늬 없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자오곡(子午谷)의 계책(計策)은 북벌(北伐)을 성공시켰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전략이었고, 위연(魏然)이 거병(擧兵)한 것은 양의(楊儀) 때문이었지 반역(反逆)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 최근에 다음과 같은 견해가 나왔다. 역사적 인물로서 위연은 확실히 행실이 나쁜점이 있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그는 풍운(風雲)을 질타한 촉(蜀)나라의 대장이었고, 촉한 정권을 위해서 힘을 발휘했다.
그의 사소한 못된짓을 꼬투리 잡아 꾸며진 문학적 이미지는 시종 악인이었지만, 이것은 역사상의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문학상의 이미지가 역사인물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역사상의 위연을 평가하는 경우라면 문학적 이미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위연의 자오곡 계책에 대해서는 역사상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과도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성공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위연의 평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제갈량의 사후에 양의와 싸운 것은 아무리 보아도 위연의 큰 잘못이다. 따라서 그것 때문에 위연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가 군사를 일으켜 소동을 벌인 것은 위에 투항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소동의 성질과 결과는 분명히 촉에 대한 역모이며 적대 행위이다. 따라서 그가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며, 억울한 죄 때문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판정을 뒤엎을 근거는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랫동안 위연은 억울한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였다. 정사의 양의전(楊儀傳)에 의하면, 양의는 승상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받은 데다 반역자 위연을 죽였기 때문에 스스로 공적이 아주 크고, 따라서 제갈량을 대신하여 정무를 맡게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승상의 직위는 장완(蔣琬)이 대신하게 되었다. 장완이 실권을 잡게되자, 양의의 직권은 크게 줄어들었다. 중군사(中軍師)에 임명되었지만, 아무런 직무도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양의가 참을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비의가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투털댔다. '먼저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일 군사를 이끌고 위에 항복했다면 이렇게 영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비의가 깜짝놀라 이것을 후주에게 밀고했다. 양의는 옥에 갇혔고 얼마후에 자살했다.
양의는 위연과 대립한 한쪽의 주역이었다. 그러므로 위의 기술에서 적어도 두가지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위연과 양의의 다툼은 평소의 모순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위연에게는 역모의 생각 따위는 없었고, 오히려 양의야말로 생각이 얕았다. 둘째, 후주 유선과 승상 장완이 양의의 직권을 줄이고 옥에 가둔 것은, 촉한 당국이 위연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을 의미한다. 양의를 처단한 것은 아마도 조정이 위연의 명예를 회복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생각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최근 이 문제에 관하여 사천문물(四川文物)(1989년 제4기)에 도유지(陶喩之)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는 현재의 한중 석마파(石馬坡) 유적을 고증함으로써, 위연이 죽은 얼마 후에 장완과 비의에 의하여 이미 억울함이 풀렸던 것과 역사상의 위연이 언제까지라도 억울한 죄를 쓴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도씨의 논문은 현재의 한중 북문 밖의 석마파 유적이야말로 위연의 억울함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역사적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석마파 유적 내에는 위연의 묘가 있고, 석마 한 마리는 파손되고 한 마리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마의 모양과 풍격, 조각 기법은 후한 후기의 석각(石刻)과 일치한다. 석마는 현재 한중시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도씨의 논문은 청의 건륭(乾隆) 연간에 왕행검(王行劍)이 펴낸 남정현지(南鄭縣志) 중의 석마유적이라는 대목을 인용하였다.
위연은 원래 노장(老將)으로 전공(戰功)이 있다. 말년에 함부로 날뛰어 자신도 죽고 가족도 몰살되었지만, 장완은 그 본의를 헤아려 양의를 죽이고자 하였을 뿐, 위연이 반역을 도모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당시에 과거의 공로를 생각하여 예를 갖춘 장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석마의 유적이 후세에 전하는 것도 반드시 이유없는 것은 아니다.
위연은 억울하니 그 동안의 판결을 뒤엎어야만 할 것인가. 위연이 죽은 얼마후에 조정이 그의 명예를 회복하였으니, 그를 둘러싼 재판은 종결되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래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만약 한중의 석마 유적이 장완 등에 의한 시정의 움직임이며, 위연의 명예를 회복할 역사적 증거라고 한다면, 더욱 신뢰할수 있는 역사 기록을 찾아내서 이 견해를 보강해야만 한다. 둘째, 왕행검의 남정현지(南鄭縣志)에서는, 석마 유적을 장완이 위연의 억울함을 풀어 준 증거로 삼았지만, 이것은 단지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반골기질(反骨氣質)
이른 아침잠이 깨어, 더 누워있기도 뭐하고 해서 일어났다. 근처에 있는 호수공원을 아침 운동 겸 가고 있는데,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최 사장을 만났다. 최 사장은 새벽잠이 없어서, 오전 5시면 일어나 매일 호수공원 열 바퀴를 돌고 온다고 하며, 한 바퀴 도는 데는 1킬로라고 했다.
같이 돌면서 얼굴을 서로 마주치게 도는 사람을 지적하며,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고 있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항상 반대쪽으로 도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하면서, 저런 사람은 반골기질이라고 하며, 호수공원을 꼭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는 수칙은 없지만, 공동체 생활에서 모두를 위해 사회규범이 있듯이 서로의 안위를 위해 작은 데서부터 질서를 지키고,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골기질이라는 의미에 대해 평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유 없이 불평불만에서 시작, 자기합리화를 위해 반 상식적이고, 반이성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안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불통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골은(反 거꾸로 반, 骨 뼛골) 뼈가 거꾸로 솟아 있다는 뜻으로, 삼국지 제갈공명이 위연(魏延)을 두고 한 말이다. 중국 촉나라에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난 장수 위연(魏延)이 있었다. 그는 자기 능력을 과신한 탓으로 상대편을 깔보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유비(劉備)는 그를 한중(漢中)의 태수(太守)로 임명하며, 앞으로 직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관해 물었다. 이에 위연은 만일 조조가 공격해 온다면, 왕을 위해 그를 막을 것이라고 말해, 유비와 주변 사람들이 그의 큰 뜻에 감동하였다.
그러나 제갈량(諸葛亮)만은 그의 목덜미에 거꾸로 솟아 있는 뼈를 보고, 장차 모반을 도모할지도 모를 위험한 반골기질의 관상이라고 판단해, 별로 좋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위연은 자기의 머리 위에 뿔 2개가 거꾸로 솟아 있는 이상한 꿈을 꾸어 역술가 조직(趙直)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길몽이라고 대답했다.
세월이 흘러 유비와 장비도 죽고, 제갈량마저 병으로 죽고 없을 때, 위 연은 해몽을 그대로 믿고 병권을 장악하기 위해, 모반을 꾀하려 하였지만, 제갈량이 죽기 전에 미리 알아차려 대비책을 세워 두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위연은 유비의 부하 마대(馬岱)의 칼에 죽는다. 사실 위연의 꿈에 등장한 뿔(角)은 칼(刀)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길몽이 아닌 흉몽이다.
반골기질이란, 원래 위연이 일으킨 모반이라는 뜻이지만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는 위연이 결코 촉나라를 모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 오늘날에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뜻으로 알려져 있다. 반골기질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보면, 불의와 부정에 굽히지 않는 감수성이 강하며 원칙주의자이며, 강골 성격의 소유자다.
또한, 국가의 기득권을 점유한 극소수의 지배계층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법을 정해, 피지배 계층을 세뇌하고 순응하도록 만들며 지배해 왔다. 교묘하게 국가를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유지 시키려고 하는 핵심 규율의 정체성을 간파하고, 이에 맞서 원칙주의와 정의 사회를 위해 저항한 세력들이기도 하다. 기득권자들이 볼 때는 골치 아픈 반체제 세력들이다.
언론 역시 가짜뉴스가 아닌, 빠르고 정확한 보도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알 권리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며, 권력에 아부하는 기생 기자가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언론 직필의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해야 마땅하다. 불의와 부정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골 정신, 저항기질의 붓을 들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 언론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불의와 부정에 정의감을 굽히지 않는 원칙주의 반골기질이 곧, 나라가 유지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희망이다.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따르지 않는 이기주의적 기질이 아니라, 불의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반골기질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사가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나라를 위하는 반골기질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다. 생활의 편리를 가져오는 첨단기술이 반갑기도 하지만, 진정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에 경제적 각축전, 정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조용할 날이 없다.
지구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로 자연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의 오판과 핵실험으로 인해 국민은 몹시 불안해하고 있고, 우리 민족의 소원인 평화통일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미 관계와 복잡하게 얽힌 한반도 정세의 실마리를 속 시원히 풀 수 있는 반골기질의 능력을 갖춘 해결사가 절실히 요구된다.
▶️ 反(돌이킬 반/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은 ❶회의문자로 仮(반)과 동자(同字)이다. 又(우)는 손을, 厂(엄)은 언덕의 뜻으로 뒤엎는다 또는 반대(反對)를 뜻한다. 비탈진 지형은 정상이 아니므로 반대를 의미한다. 反(반)은 위에서 덮는데 대하여 밑으로부터도 뒤덮는 일, 그 양쪽을 합하면 반복이란 말이 된다. 또 손바닥을 뒤집다, 배반하다, 돌아오다, 돌아보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反자는 ‘되돌아오다’나 ‘뒤집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反자는 厂(기슭 엄)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厂자는 산기슭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추상적인 물건으로 응용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反자를 보면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어떠한 물건을 손으로 뒤집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反자는 ‘뒤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배반하다’나 ‘반역하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反(반)은 변증법(辨證法)의 정(正), 반(反), 합(合)의 세 가지 계기 가운데에서 부정(否定)을 뜻하는 계기나 반립(反立)의 뜻으로 ①돌이키다 ②돌아오다, 되돌아가다 ③되풀이하다, 반복하다 ④뒤집다, 뒤엎다 ⑤배반하다 ⑥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어긋나다 ⑦반대하다 ⑧물러나다, 후퇴하다 ⑨보복하다, 앙갚음하다 ⑩되돌아보다, 반성하다 ⑪꾸짖다, 나무라다 ⑫보답하다, 되갚음하다 ⑬바꾸다, 고치다 ⑭죄를 가벼이 하다 ⑮휘다 ⑯구르다, 뒤척이다 ⑰기울다 ⑱튀기다 ⑲생각하다, 유추(類推)하다 ⑳대답하다 ㉑기인(起因)하다 ㉒모반(謀叛), 반역(反逆) ㉓번(횟수를 세는 단위) ㉔반대로, 도리어 ㉕더한층, 더욱더 그리고 ⓐ어렵다, 곤란하다(번) 그리고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판) ㉡팔다(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정(正), 도울 찬(贊)이다. 용례로는 공산주의를 반대함을 반공(反共), 반대로 움직임을 반동(反動),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두 사물이 맞서 있는 상태 또는 어떤 의견이나 제안 등에 찬성하지 않음을 반대(反對), 반사로 비친 그림자를 반영(反影), 반사하여 비침을 반영(反映),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한 가지 일을 되풀이 함을 반복(反復), 자극이나 작용에 대응하여 일어남을 반응(反應), 전쟁을 반대함을 반전(反戰), 쳐들어 오는 적을 되받아 공격함을 반격(反擊), 상대방에 반대하여 대들음을 반항(反抗),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표시를 반기(反旗), 서로 미워함을 반목(反目),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반성(反省), 반대되는 뜻을 반의(反意),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반객위주(反客爲主),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반구제기(反求諸己),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눈으로 봄을 반목질시(反目嫉視), 언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거나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반복무상(反覆無常), 도리어 처음 만 같지 못함이라는 반불여초(反不如初),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반수발사(反首拔舍),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반수불수(反水不收) 등에 쓰인다.
▶️ 骨(뼈 골)은 ❶회의문자로 月(월, 살)과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冎(과)의 합자이다. 骨(골)은 살 속에 있는 뼈, 몸 속의 뼈, 한자의 부수로 되어 뼈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骨자는 ‘뼈’나 ‘골격’, ‘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서의 骨자는 뼈와 관절이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肉(고기 육)자가 더해져 뼈와 살을 함께 표현하게 되었다. 이처럼 骨자는 뼈와 살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단순히 ‘뼈’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骨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뼈’나 ‘신체’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骨(골)은 (1)뼈 (2)골품(骨品)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뼈 ②골격(骨格) ③기골(氣骨), 의기(義氣) ④사물(事物)의 중추(中樞), 중심(中心), 골수(骨髓) ⑤몸, 구간(軀幹; 머리와 사지를 제외한 몸통 부분) ⑥인품(人品), 됨됨이 ⑦골품(骨品) 제도(制度) ⑧문장(文章)의 체격(體格) ⑨굳다, 강직하다 ⑩글씨가 힘차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뼈 해(骸),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살가죽 기(肌), 가죽 피(皮)가 있다. 용례로는 일이나 말의 골갱이를 골자(骨子), 척추동물의 몸을 이루고 지탱하게 하는 여러 가지 뼈의 조직을 골격(骨格), 뼈가 부러짐을 골절(骨折), 건물의 주요 구조가 되는 뼈대를 골조(骨組), 몸이 파리하여 뼈가 앙상함을 골립(骨立), 고마움 또는 원한이 마음속 깊이 새겨짐을 각골(刻骨),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유골(遺骨), 살이 전부 썩은 사람의 머리뼈를 해골(骸骨),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단단한 기질로 굽히지 아니하는 성품을 강골(强骨), 쉽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기질을 반골(反骨), 몸이 약한 골격 또는 그런 사람을 약골(弱骨), 오래되거나 늙어서 가치나 쓸모가 없게 된 물건을 골동품(骨董品), 뼈가 부러지는 부상 또는 그 상처를 골절상(骨折傷), 동물의 몸을 버티고 보호하며 힘살이 들러붙는 뼈로 된 조직을 골격계(骨格系), 뼈 조직에 석회 성분이 줄어들어 다공성을 나타내는 증세를 일컫는 말을 골다공증(骨多孔症), 가까운 혈족 사이의 사랑을 일컫는 말을 골육애(骨肉愛),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을 뜻함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쟁(骨肉相爭), 뼈와 살을 같이 나눈 사이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족이란 뜻으로 부자와 형제 또는 그와 가까운 혈족을 지칭하는 말을 골육지친(骨肉之親),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일컫는 말을 골경지신(骨骾之臣), 가까운 혈족 사이의 정분을 일컫는 말을 골육지정(骨肉之情)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