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자수첩
[기자수첩] 지금 KBS는 40년 전 그런 방송 만들 수 있을까
이영관 기자
입력 2023.06.30. 03:22업데이트 2023.06.30. 08:49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note/2023/06/30/JWASTIJV35G2NL2BIS6EL7CT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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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방송은 국가 권력의 입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9시 뉴스만 틀면 대통령 동정 보도가 나오던 당시 방송 뉴스는 ‘땡전 뉴스’라 불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공영방송에 귀 기울이고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방송 종사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에도 KBS는 나름대로 공영방송 역할을 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중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인정받는 것이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날수로 138일, 시간으로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전무후무한 방송. 이 프로그램은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당시 KBS만이 할 수 있었던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생인 기자는 비록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주위 어른들에게 당시 KBS가 국민들에게 준 감동이 얼마나 컸는지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실제로 KBS는 지상파의 맏형으로서 당시 사회에 큰 울림을 준 프로그램들을 다수 제작했다. 그 결과, ‘초분’(1997) ‘환경 스페셜’(1999~2013) ‘한국의 미’(2001~2004) 등 비(非)정치적 부문에서 명품 다큐멘터리를 내놓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묵묵히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 방송 종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요즘 KBS에서 과거처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기획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뉴스 프로그램은 1980년대와 비교해 내용만 달라졌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이러면 땡전 뉴스 시절과 뭐가 다르냐”는 사람도 많다. 뉴스만이 아니다. 각종 현대사 프로그램에서 국민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관점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내놓아 사회적 소란만 일으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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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KBS에 입사해 30년 넘게 재직한 강동순 전(前) 감사는 “과거 KBS는 수신료를 받는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질 높은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에서 찾았다”며 “공영방송은 공공재인데 최근 특정 세력이나 이념의 입김이 강한 조직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매체 간 경쟁이 심해진 다매체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KBS가 40년 전처럼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송을 다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TV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은 단순히 수신료 분리 징수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처럼 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을 공영방송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