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론·기고
[기고] “당신의 오늘을 위해, 우리는 내일을 바쳤습니다”
허강일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전 주아일랜드 대사
입력 2023.06.30.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3/06/30/2VUCO2Y4WFCLZI5EWWF7QPO2SY/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의 전경.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 세계평화와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김동환 기자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유엔기념공원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경건하게 다듬어진 푸른 묘역에는 붉은 장미와 영산홍이 못다 핀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듯 묘비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묘비석의 나이는 대부분 20세 전후다. 꽃다운 청춘들이다. 이들은 세계 평화와 정의라는 대의를 위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먼 나라에 와서 소중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이다.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 조성된 유엔기념공원은 올해로 설립 72주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전사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돼 현재는 11국의 참전 용사 2320명이 안장돼 있다. 모두 가슴 아픈 사연들이지만, 허머스턴 부부의 이야기는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들은 호주군 장교와 군 간호사로 만나 결혼한 부부였다. 결혼 3주 만에 남편은 한국전에 파병되었고 파병되자마자 1950년 10월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내 낸시 여사는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늘 남편 사진을 곁에 두고 그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내가 죽으면 남편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결혼 60주년이 되는 2010년 유엔기념공원의 남편 곁에 합장됐다.
참혹했던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어느덧 70년이 흘렀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유엔기념공원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참전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 참전 22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뭉쳐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운 국제적 연대의 상징이다. 유엔군 파병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불법 남침 행위에 대한 유엔 최초의 군사적 조치였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엔기념공원에는 참전국 22국의 국기가 태극기, 유엔기와 함께 나란히 게양돼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유엔 참전 용사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예우와 보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유엔기념공원은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유엔 용사들에게 얼마나 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장소이다.
아울러 유엔기념공원은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의 장소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참혹한 전쟁 탓에 탄생한 유엔기념공원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해 많은 국민들이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으면 한다. 유엔 참전 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그분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