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안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영국 여왕의 일본 방문시 유일하게 가는 관광지로 간택(?)된 곳이었죠.
방문 전 6개월전부터 샅샅이 조사후 방문해서 볼거리 선정을 하는 영국 왕실이 선택한 곳이니 일단 인정하고 봐야 하는 곳입니다.
이쪽 지역의 일정은 시조 가와라마치에서 교토 버스 1일권으로 금각사쪽으로 가다가 대덕사에 내려 구경하고 금각사- 료안지(금각사에서 료안지 갈때는 금각사앞에서 59번 타고 가는게 좋습니다.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였습니다)- 닌나지(료안지에서 닌나지는 걸어가도 되는 거리) 이런 동선으로 움직인 하루 였습니다.
료안지는 한마디로 바로 이 석정을 보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영국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의전 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외국을 순방할 때면 그 나라의 대표적인 유적 한 곳을 꼭 방문하는데 이를 결정하기 위하여 왕실의 의전 관계자들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전문가까지 대동해 현장을 답사한다고 합니다.
1975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본을 방문 때 들른 곳은 바로 이 료안지(용안사) 였습니다.
정확히는 용안사 석정이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여기저기 짜집기 해 놓은 글들중에 아래 내용들이 많던데 나의문화답사기에서 유홍준 작가님은 다음과 같이 써 놓으셨네요.
"석정의 돌은 있는 그대로 감상하면 그만인데 일본인들은 거기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양 탐색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곤 한다."
그 대표적이 얘기가 15개의 돌이 어느 방행에서 보아도 하나는 숨도록 놓여 있어 낮은 자리서 보면 14개만 보인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15개의 돌을 한 번에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방장 마루 정면 딱 한 곳에서 만은 15개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는 속물적인 얘기일 뿐이다. 이정도 넓이의 정원에 돌을 펼쳐놓으면 하나쯤은 안 보일 수 있기 마련인데 누가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이야기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석정이 '선의 정원'이 아니라 숨은 돌 찾기 게임 마당이었단 말인가.
이보다 더 유치한 설도 있다. 15개의 돌이 다섯그룹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5개, 2개, 3개, 2개, 3개로 배열된 것에 대한 해설이다.
하나는 '호랑이 새끼 물 건너기'에 맞춘 것이라는 설이다.
일본의 후스마에에는 호랑이 그림이 제법 나온다. 일본에는 없는 호랑이를 그림으로 즐겨 그리게 된 것은 호랑이의 용맹이 무사들의 기질과 잘 맞았기 때문으로, 호랑이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유호도>와 함께 <호랑이 새끼 물건너기>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대개 에도 시대의 일이라고 한다.
ㅡ 최경국 <중국 유호도의 한일 양국의 수용양상> ㅡ 한국일어일문학회 2010.
그러나 용안사 석정을 여기에서 찾는 것은 난센스다. 이야기인즉슨 어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 세마리를 데리고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새끼중 한 마리가 영맹스럽게 사나워서 새끼들끼리만 있으면 이놈이 다른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했단다. 그래서 어미 호랑이는 고심 끝에 먼저 영맹스러운 놈을 건네놓고 돌아와서, 다른 한마리를 데려다 놓은 다음 다시 영맹스러운 놈을 데려오고, 남은 한마리를 데려다놓고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영맹스러운 놈을 데리고 건넜는데, 그렇게 오간 숫자로 정원의 돌을 배열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참선하는 명상의 공간에서 왜 갑자가 동생잡아먹는 호랑이 새끼 얘기가 나오는가. 이 얘기는 나 어렸을 때 호랑이가 아니라 '식인종 강 건너기'라는 버전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를 수리적으로 분석하여 돌 더미를 둘씩 더하면 7, 5, 3이 되니 이는 황금분할 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두 무더기씩 더해가면 7, 5 , 5, 5가되어 홀수의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홀로 있을 때는 뭐란 말인가
이는 마치 아무런 형상을 그리지 않은 추상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냥 거기서 일어나는 감상을 즐기지 못하고 이런 도상, 저런 도상이 있다고 찾아보는 바람에 본래 추상 작품이 가진 고유 이미지를 망치는 꼴과 똑같다.
이런 속설에 현혹되지 말라
석정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미상이다.
헤이안 시대 용안사 자리는 왕가들 차지여서 뒷산 시슭에는 역대 덴노들의 묘지들이 있는 곳이었다.
헤이안 시대 말기 후지와라 집안의 한 귀족이 여기에 산장과 함꼐 절을 짓고 덕대사라 불렀는데 집안의 가세가 열악해지면서 이 절은 폐허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 관령을 지낸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1450년에 이 터를 양도 받아 지은 절이 용안사이다.
관령은 쇼군 다음가는 자리.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직책.
관령직도 쇼군처럼 세습되었는데 세 명문가가 돌아가면서 맡았다.
막강한 슈고 다이묘 였던 호소카와, 시바, 하타케야마 이 세 집안을 '3관령'으로 불렀다.
용안사 창건 17년후 인1467년 오닌의 난 때 동군 총대장이 바로 호소카와 가쓰모토였고 그가 일으킨 전란 통에 용안사는 불타버리고 말았다.
가쓰모토가 죽고 그의 아들이 마사모코가 용안사를 재건 1488년에 방장 건물이 낙성되었다. 이 때 정원이만들어졌고, 다시 주지인 도쿠호 젠케쓰 선사가 이 정원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1797년 다시 화재로 소실 서원의 방장 건물을 옮겨다 놓은 것이 지금은 용안사 방장이다.
용안사의 사격은 그리 높지 않다.
천룡사, 남선사, 상국사 같은 탑두로 시작하여 나중에 독립한 묘심사파의 말사이다.
그래서 위압적인 거대한 삼문, 법당, 불전 같은 것이 없고 덕대사가 때무터 내려오는 큰 호수 방장 건물이 핵심 공간을 이룬다.
ㅡ이상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내용 발췌 ㅡ
다실 앞 물확 쓰쿠바이 입니다.
영락통보 같은 엽전 모양에 오유지족이라고 쓰여 있는 쓰쿠바이 입니다.
석가모니의 마지막 가르침을 담은 유교경의 "족함을 모르는 자는 부유해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자는 가난해도 부유하다"는 말에서 나온 글귀입니다.
이 물확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하네요.
오유지족이라는 글자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내려가 글자를 확인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삶에 '오유지족'이라는 글자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봤더랬습니다. 행복해 지려거든 이런 마음자세로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진실로 감사하면서,,,
그게 많아서가 아니라 족함을 알기에 감사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번 여행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한다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고 지나갔던 장소였답니다.
방장 뒤쪽 정원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꾸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획일화된 방장 6개 공간.
가운데 앞칸 : 메인 홀 격인 중심 공간
가운데 뒤칸 : 속공간으로 대개 부처를 모신 불간
오른쪽 앞칸 : 신도의 공간
오른쪽 뒤칸 : 스님들이 의발을 받드는 공간
왼쪽 앞칸 :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
왼쪽 뒤칸 : 서원
각 공간을 분할하는 미닫이 문은 후스마, 또는 후스마 쇼지 라고 하고 여기에는 격식과 취미에 맞게 그림이 그려졌다,
료안지의 석정도 석정이지만 물확에 씌여 있는 '오유지족'이란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절을 나왔습니다.
어느덧 족함을 알고 사니 "세상 속편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더랬는데 한 번 더 곱씹어 보게되는 물확의 '오유지족'이 글을 쓰다보니 료안지의 방문은 더 깊은 감동으로 와닿게 됩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
★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석정이 뭐에 쓰이는건지 그 내용은 모르겟네요...
꼼꼼하게 적으신 내용과 의미를 깊이 읽어보겟됩니다.
석가모니의 말씀이 더 다가오네요..
넉넉함과 부족함을 안다는게 이렇게 깊이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아,,,,,
석정은 돌로 만든 정원을 말하구요.
맨위의 사진은 실제정원을 완전 축소해서 모형으로 만들어 비치해 놓은 것이랍니다.
일본 절들은 이렇게 작은 자갈들을 깔아서 만든 정원을 가지고 있는 절들이 많더라구요.
반 정도는 연못과 나무들이 어울어진 정원이 있기도 하구요.(이런 정원을 지천회유식 정원 이라고..)
이런 자갈돌로 만든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지더라구요.
정원을 하나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문화를 일본이 가지고 있어 명성이 자자한 작정가들이 있을 정도지요.
예술적인 차원도 있을 것이고,
절에 있는 이런 석정들은 아마도 명상이나 수행에 도움되라고 만들어 놓은게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