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물안에서 놀던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1학년때이다.
대학을 들어가니 전국구라 여기저기서 온 학상들을 만나니 이건 별 천지같았다.
3월 개강을 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던 시절이 아닌지라 옷도 변변히 없는데 매주 미팅을 하였다.
그 때 난 서울서 학교를 다녀서 시골에서 온 남학생을 미팅에서 만나면 그날 왕재수였다 생각했었다.
매주말 등산이다 영화다 구경을 다니고 마치 고삐풀린 말처럼 돌아 다녔다.
아직도 그 때의 방랑벽이 남아 집에서 차분히 일을 못한다.
울 엄니왈 "제는 집에 하루도 있는 날이 없어" 할 정도 였다.
그러니까 시골서 온 친구들은 서울친구들을 사귀고 싶어했다.
우리는 각자 출신지역의 특징을 잘 알기에 서로 공유하기를 속으로들 바랫다.
그러다 5월쯤으로 기억하는데 한 친구가 우리 몇몇이 언니가 대전에 있으니 친구들끼리 놀러가자하여 갔다.
여자3 남자 둘2. 친구 언니는 형부가 장교라 대전 어디 집을 세얻어 살고 있었는데
우리들에게 방하나를 내주었다.
계룡산으로 올라가서 갑사로 내려왔다.
그 당시는 산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었다.
쌀과 김치 꽁치통조림이 언제나 기본이었다.
울들이 보이가 있어야좋으냐 그냥가냐 할 때 밥을 시키고 버너가 필요하구 배낭을 메려면 보이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한 친구의 갖미팅에서 만난 친구와 그의 친구하나를 동행하였다.
산이 어땟는지는 별 기억이 없고 떠들고 놀고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서로들 관심이 있으니 얼마나 잘들 대해주었던가.
친구 언니는 우리들이 잘들놀기를 바라며 그 날 저녁
조기에 고사리를 넣어서 찌게를 끓여주었다.
처음 먹어본 것이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냄비에 구멍이 날 정도였다.
지금도 봄이면 조기에 햇고사리를 넣어 조기찌게를 끓인다.
시골에 친척이 없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날 저녁 우리는 유성온천을 친구언니 덕으로 갔었다.
물론 처음 이었다.
들어가니 넘 지저분하고 우유를 먹으러 샀는데 우유속에 이끼도 들어 잇어 못먹었다.
탕은 돌을 적당히 쌓아서 속에 물은 고여있는데 미끈거리고 더러워보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시골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왜 그리 지저분해 보였던지...
사람은 많고 어디 앉을 자리도 없고 여기가 그리 좋은데라는데 하며 서성거렸다.
서울의 하얗고 뽀얗고 날씬한 3 아가씨가 간것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시악씨들은 워디서 왔수?
서울서 왔어요.
뭐하는 아가씨들이랴?
학생이예요.
워쩌 그리 뽀야?
하더니 한사람이 와서 만져보았다.
그러자 여러 할머니들이 뭔 희귀동물 구경하듯 와서는 문질러보고
만져보고 우리는 완전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다.
우리는 너무 우수웠지만 웃는 것도 실례일 듯하고
싫은 척도 못하고 서로 쳐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얼른 적당히 씻고 나와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1970년 5월쯤으로 기억한다.
그 유성온천은 지금 마니 바뀌엇다.
아마 지금의 유성호텔 온천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번 가본다면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 때 그 남친과 같이 온 친구는 그후 울들의 줄기찬 미팅에도 별 상관없이
긴 연애끝에 결혼을 하였다.
20년은 된 듯하다. 캐나다로 이민간후 연락이 끊어졌다.
그 때는 그 시골학상들이 그 지방의 유지의 자제분들이었고
서울로 유학온 잘난? 학상들이었다.
그것은 결혼후 한 10년쯤 지난후 깨닫게 되었다.
근자에 어쩌다 티비에서 보기도하고 한번은 병원에 갔는데
내가 찾아간 그 의사가 아니었던가 서로 인지하고 친절을 받기도 했다.
정확히 46년이 넘은 이야기다.
넓은 사회에 던져진지 46년이다.
온갖 희노애락 흥망성쇠를 격고 2016년 추석을 맞았다.
이젠 장정의 길을 다 걷고 평탄한 길만 서서히 걷고 싶다.
2016년 여유있는 추석을 맞으며
시니
첫댓글 과거의 추억은 무조건 아름답더라
특히 그게 이성과 관련되면 더욱 아름답더라
아 !
47살만 젊어진다면?
나는 이성을 더 많이사귈거당
공부도 더 많이 열심히 할거당
그런데?
어느새
이제는 중년을 넘어서 노년이되고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선사가 됬단말인가?
내 젊은 시절은 어디로 갔단말인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말자
아름다운 5060 카페가 있고
우리 토끼방이 있지 않은가?
충성 우하하하하하
욕심쟁이 태평님 47년씩이나~
난 5년만 젊어져서 건강햇으면 합니다.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시네요.
시간이 되면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그 때에 추억을 같이 나눌 친구는 그 때 동행했던 친구들이 가장 적합한데
여건이 어렵고 그의 유사품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져 걷기방 가능하면 따라 다니는 것이 요즘의 최상방책입니다.
이것도 언제까지 다닐 수 잇을런지 한계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연도이군요. 저도 고등학교를 대전서 댕기고 그해 서울로 집이 이사를 왔답니다. 맞아요. 그당시 유성온천은 동네 목욕탕 정도로 작고 지저분했습니다. 소풍도 동학사, 갑사로 갔지요.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지금도 만나면 시끌벅적합니다. 집 주변에서 뜯은 고사리가 많으니 조기찌게 좀 와이프한테 만들어 달래서 먹어봐야 쓰겄다. 동창회에서는 서서히 졸업 50주년 기념 준비를 하는 모양입디다. 그러고 보니 많이 살았어요. 추억에 젖어 자세히 읽었습니다. 재미있어요.
조기찌게는 꼭 햇고사리때 맛이 젤 좋습니다.
5월 이 때가 조기가 날때고 햇고사리가 날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