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비경을 찾아다니던 어느 해, 오지에서 아침 산책을 나섰다가 빈집을 만났다.
사람이 살다가 떠난 집, 빈집이었다.
마음 비우기를 애쓰며 살았지만, 막상 온기가 없는 빈집을 만나고 보니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빈집으로 들어섰다.
집을 비우고 떠난 사람들 마음에도 아쉬움이 있었던가 보다.
두터운 하얀 창호지를 발라두고 떠난 걸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게지.
저 청마루, 초를 발라가며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던 날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 놋요강 하나 구석 자리 놓여 있었을 테고...
아기들은 서너 번쯤은 저 청마루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자랐을 것이다.
불 켜지 않아도 방 안이 환한 겨울 보름날에는
문설주 걸어 잠그고, 숨 죽여가며 젊은 주인 내외 사랑도 나누었겠지.
색색 잠든 아이들 혹 깰세라...
귀 밝은 시어머니 혹 들을세라...
말 안 듣는 아이 혼낼 때도 저 문 걸어 잠그곤 종아리를 때렸겠지.
창호지 그 너머로 소리야 걸림 없이 새 나갔겠지만
때리며 눈물 훔치는 어머니나
맞으며 싹싹 빌던 아이
한가닥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빗장 채워진 저 부엌 안엔 누룽지 퍼 먹으며 친정 엄니 걱정하던 며느리 한숨도 남았을 테고,
시어머니 구박에 남몰래 눈물 훔친 며느리 아픈 세월도 고스란히 담겼을 테고,
대처 나갔다 한참만에 돌아온 남편, 맛있는 밥상을 준비하곤 함지박 담긴 물에 얼굴 비추며 머릿결 단장하던 아내의 설렘도 담겨있을 것이다.
대청마루 족자 아래엔 쌀두지 하나 분명 있었을 테고,
그 곁에 다듬잇돌 하나쯤 놓여있었을 테지.
수박 나는 여름철엔 온 식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제 몫의 수박 먹기에 바빴을 테고,
설날엔 설빔 차려입고 대청 가득 엎드려 조상께 절을 올렸었겠지.
대청마루 밑엔 오래 묵은 검정 고무신,
먼지를 켜켜이 덮어쓴 채 버려져 있었을 테고,
댓돌 위엔 잘 닦은 할아버지 할머니 흰 고무신 두 짝 반짝반짝 정겹게 빛났을 것이다.
문 앞을 나서던 식구들...
떠나는 발걸음들이 쉬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눈물 훔쳤을 것이다.
먼저 감정 수습한 아버지,
"이제 그만들 가자~" 등 미는 소리에
'내 꼭 다시 돌아오마' 다짐을 하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이 집과 멀어졌을 것이다.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 빠져나간 온기로 이 집은 차츰 춥고 쓸쓸한 빈집이 되었을 것이다.
빈집을 돌아 나오면서...
마음 비운다고 다 비우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춥고 쓸쓸한 우리들이니...
마음을 비우더라도 온기만은 비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옛시절 떠올리며 천천히 읽으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잘 읽고 보고 했습니다.
누구나 가슴 속에 빈집 하나씩 품고 사는 것 같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집을 둘러보면서
과거의. 애환을 돌이켜 보시고요 ㅎㅎ
초가삼칸. 오막살이 집에서도
문화와 사랑과 교육등등
아름다운추억을. 끄집어
내어. 회상에잠겨봅니다
건행하세요
빈집,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빈 집을 보시고 감성에 젖으셨네요
네. 괜히 울컥하더라구요.
저 쇄락한 빈집을 보면서
그 집의 역사속에 묻혀있는 희로야락을 다 끄집어 내시는 마음자리님.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어도 그 정서는 공감합니다.
몇가지 들추어 보고자 했지만, 빈집은 그보다 수십 수백 배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겁니다.
@마음자리 많은 이야기를 간직 ^^
함지박 물에 얼굴 비춰 보면서
손빗질하고
음빠! 하며
새 신랑을 기다리며 살았을
빈 집
그 집
마음이 훈훈해지는
착한 글 잘 읽었습니다 ㆍ
음빠!하는 그 얼굴에
윤슬님 그 활짝웃음 더해졌으면
빈 집
그 집
더욱 훈훈했을 것입니다.
저집에 오래살고 싶어도.
.
.수입이 나올데가 없어 떠나갑니다.
ㅎㅎ 먹고는 살아야겠지요.
어느 가정의 한살이가
저기에 자리 했겠지 싶습니다 .
집이 나이들은 노인이 보이는듯 합니다
저도 오막살이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빈집의 흔적을 보면 대충 가늠이 옵니다.
잔해물만 봐도 알고 갑짜기 떠난거도 알것 같고 잘 정리하고 간 집은 보는이도 마음이 편하죠.
빈집을 보고 찹찹한 기분이 드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