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Under dog)
투견장에서 '밑에 깔린 개'라는 의미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낮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2022 향수옥천배 체전부에서 이런 언더독의 작은 반란(?)이 있었다. 경신전선 족구단이 창단 후 처음으로 체전부(최강부)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참가팀 수가 4팀이었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LG디오스와 조이킥스포츠가 불참했지만 우승을 차지한 이천시민족구단을 비롯하여 일등가, 생거진천 런까지 참가팀들의 면면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천시민에 패하기는 했지만 일등가와 생거진천 런을 꺾으며 2승 1패로 이천시민과 세트 득실 차이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분위기가 한 번 넘어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이 표현은 랠리 게임이라는 족구 경기의 특성상 강팀과 그렇지 못한 팀을 구분하는 잣대로 많이 표현되었다. 흔히들 최강부의 언더독이라고 불리는 팀들이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패배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이러한 문제점 때문이기도 하다. 경신전선 역시 이에 예외는 아니었지만 올 시즌 들어 이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앞서가던 경기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 아쉬웠다. 향수옥천배 유일한 패배를 당한 이천시민과의 경기에서 1세트 초반 앞서가며 분위기를 탔지만 잔 실수들이 쌓이며 역전패하고 2세트마저 무너지며 결국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언더독이 탑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약점들을 보완해야 가능한 것이다.
창단 그리고 현재...
경신전선 족구단의 창단 과정은 단순했다. 회사에서 점심 식사 후 짬이 나는 시간에 직원들끼리 족구를 하고 있었는데 직원 중 한 명이 '이 정도면 족구를 잘하는구나'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기세 좋게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직장인 족구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치 못한(?) 참패였다. 그날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진리를 깨달은 그들은 좌절하고 그만둘 법도 했지만 오히려 족구에 더욱 매진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주위에 선수들을 한두 명씩 입사시키며 지금에 이르렀다.
경신전선은 충남 천안에 위치한 케이블(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선) 제조업 전문 업체이다. 선수들은 전원 이 회사의 직원이고 생산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정도면 실업팀이 아니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쉽게도 회사 내에 존재하고 있는 클럽팀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분기에 한 번씩 클럽 지원 활동비 명목으로 족구단 활동비가 나올 뿐, 그 이상의 지원은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위원장, 사무국장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과 사내 선배들이 중간중간 소정의 찬조금을 지원해주고 있어 선수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
수비수 유리안은 '비록 실업팀은 아니지만 족구를 계속하면서 생업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동강도에 대한 부담감도 적고, 급여도 넉넉합니다. 그리고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시고, 챙겨주시는 등 회사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게다가 근무지도 천안이라서 수도권에서 멀지 않으니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다
2018 시즌 벌어진 청주직지 청원생명쌀배 일반부 우승으로 최강부에 승격한 경신전선은 최강부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2019년에 벌어졌던 고용노동부장관기 3위가 유일한 입상이었다. 이랬던 이들이 2022 시즌, 김제 새만금배 3위, 향수옥천배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최강부에서 가끔 예상치 못했던 팀들의 입상이 있기는 했지만 최강부 입상이 요행으로 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언더독으로 평가받는 팀들 입장에서는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이 하나도 없으니 이러한 성과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과인 셈이다.
아직은 안정감이 부족해 보이지만 허슬플레이가 돋보이는 박홍근, 유리안, 박형규의 수비라인, 토스 능력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경기의 흐름을 읽는데 아직은 서툴러 보이는 세터 이태훈 그리고 현역 아니 어쩌면 역대 공격수 중 가장 강력한 안축 파워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은 실수가 좀 많고 수 싸움의 수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공격수 전유현
장점만큼이나 뚜렷한 단점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의 구성'이 가장 적절한 수식어일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말해 아직은 최강부의 언더독이라는 의미이다. 단 한 번의 준우승의 성과를 두고 이들을 탑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바로 그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뚜렷한 단점이 팀에 약점이 될 수 있으나 바꿔 말하면 무엇이 부족한지 이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안정감을 보완한 수비라인,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을 얻은 세터, 잔 실수를 줄이고 수 싸움의 수를 조금 더 늘린 공격수. 장황하게 늘어놓기는 했지만 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바로 '경험'이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이들에게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된다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언더독의 반란을 넘어 최강부의 강력한 한 축으로 성장할 이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주장 이태훈과 1문 1답
Q. 선수들이 맡고 있는 업무는?
A. 선수들은 현재 전원 생산직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경신전선에 입사하기 위한 요건이 있다면?
A. 입사하는데 크게 필요한 스펙은 없습니다. 다만 '지게차 운전 자격증'은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선수들 모두 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도 계속해서 족구선수들을 취업시킬 의향이 있는지?
A.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업팀이 아닌 회사 내의 동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족구 실력만 가지고는 취업시킬 수는 없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T/O가 생겨야 하고요. T/O가 생긴다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할 것입니다.
Q. 연습(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A. 근무형태가 3조 3교대이다 보니 자체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려해줘 선수들은 모두 같은 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습 시간을 맞추는 것은 편합니다. 주간이나 야간 근무 조에 걸릴 때는 인근의 다른 팀들과 교류전을 통해 실전 감각을 기르고 있지만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정해진 프로그램 내에서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현 평택태양스포츠단의 단장님이신 장경수 형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족구 스승님이시기도 한데, 우리 팀에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단장님을 자주 찾아뵙고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습니다.
Q. 팀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A. 감히 말씀드리자면 팀 분위기만은 최강부에서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웃음) 선수이기 이전에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다 보니 오히려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더 배려하고 있고, 각자 선수들의 가족(아내, 아이들)들과도 모두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동료가 아닌 형제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경신전선 족구단은 실업팀에 가까운데요, 아마도 선수들의 벌이가 가장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해 봅니다.(웃음)
Q. 운동을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반대로 불화가 있었다면?
A.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재미있어서인지 딱히 한 가지 에피소드를 꼽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굳이 있다면 대회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전) 유현이가 강서브를 넣을 때 나머지 선수들이 제발 실수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는데 (유) 리안이랑 제가 종교가 달라서 리안이는 '아멘'하고 있고, 저는 '아미타불'하고 있습니다.(웃음) 불화는 전혀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Q. 2022 시즌 목표가 있다면?
A. '우승입니다.'라고 말하면 비웃는 이들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목표라는 것도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라는 사실도 우리 팀원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번 향수옥천배에서 준우승의 성과도 거두었으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대회에 출전하면 일단 기본적으로 입상이 목표입니다. 사실 최강부의 대부분 팀들은 우리와 한 조가 되면 상당히 좋아합니다. 확실한 1승 상대, 심지어 공짜팀이라고 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감정도 많이 상하고 화도 나지만 냉정하게 언더독이니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 팀원들이 괜히 그러한 분위기에 주눅 들고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경기를 하는 팀들은 우리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하는 패배는 단순한 1패가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부담 없이 할 수는 데까지 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팀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팬 분들 입장에서는 강호들이 초반에 탈락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강호들을 초반에 탈락시키려고 갖은 애를 쓰죠. 그분들 입장으로 본다면 우리는 '악당'일까요?(웃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악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경신전선 족구단 선수 명단
공격수 전유현 (1993년생, 김포대학교 출신)
세 터 이태훈 (1989년생, 평택태양스포츠단 출신)
좌수비 유리안 (1996년생, 경동나비엔 출신)
좌수비 박형규 (1989년생, 평택태양스포츠단 출신)
우수비 박홍근 (1985년생, 경신전선 입사 후 족구단 활동 시작)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경신전선 족구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