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자유를 오해하여 성적인 방종에 빠진 것에 대해 질책했다면 오늘 바울은 거룩함을 오해하여 지나치게 금욕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사역했던 교회의 사모님은 기도를 통해 환상을 볼 정도로 소위 ‘영빨’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과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두 분의 고성이 강대상과 예배당 뒤를 오가게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영적이며 통변과 방언과 신유의 은사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부부관계가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서로 분방하지 말고 다만 기도를 위해 합의상 얼마간만 하되 곧 다시 합하라”(고전 7:5)고 말씀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사랑과 신뢰가 필요합니다. 적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도 필요합니다. 이 밖에도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바울은 부부간의 성생활을 꼽고 있습니다. 상기한 5절 말씀처럼 말입니다. 부부간의 성생활과 기도생활이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불가분한 이 두 가지를 자꾸 나누려고 한다면 지나친 금욕이나 무분별한 성적 방종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것조차도 서로 합의하고 그마저도 한시적으로 해야 하며 끝이 나면 다시 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이 독신임을 거론하면서 가능하면 자신과 같기를 바란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독신을 종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하지 못하여 음행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림은 물론이요, 복음 전파에도 방해가 됨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처럼 절제할 수 있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이 절제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독신으로 사는 것을 권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부부생활을 유지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도 축복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결혼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음행에 빠지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장성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룬 채 살아가길 바랍니다. 설령 적령기가 넘어 아직 짝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혼자 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되 생명을 살리는 것에 만족을 느끼면서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것인지 깨닫고 제도 밖으로 넘어가서 음행에 내 몸을 사용하거나 반대로 영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극단적인 금욕으로 치닫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결혼은 상대를 내 소유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연합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됨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고 성령의 도우심 아래서 성결함과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뵙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관계가 먼저 작은 천국이 되어야 자녀들도 천국을 맛보고 훗날 마찬가지로 천국의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된 성도들의 관계를 깨닫게 하시면서 특히 진정한 연합이 무엇인지를 성찬식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부부간의 진정한 연합 역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연합은 물론 몸의 연합 또한 중요함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 상호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결혼 생활이 건강해질수록 가정이 행복해지고 그 가정들이 모인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자녀들의 문제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그 인생을 맡기면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가정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내 모든 삶을 배우자와 공유하고 영적으로 교감하며 몸과 마음 모두 진정한 연합을 이루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배우자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구원은 하나님께 있을 뿐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배우자와 그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가정에서의 선교사가 되어 배우자를 더욱 사랑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