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방문객이 150만 명이 넘는다는 거대한 온라인 시장, 옥션. 고객들의 입소문이 매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곳에서 지난 3년 동안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놓치지 않은 떡집이 있다. 단골 고객이 많아지면서 주문이 폭주, 2~3일을 기다려야 떡을 받을 수 있음에도 고객들의 만족도는 100%에 가깝다. 떡은 동네 떡집에서 사 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온라인 시장에 당당히 떡이라는 아이템을 등록시킨 사람, 조현제 사장이 운영하는 ‘궁중 영양떡집’ 이야기다. 궁중 영양떡은 최근 옥션이 발표한 상반기 20대 히트 상품 안에도 들었다.
조 사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경기도 일산의 한 주택가. 간판에는 분명, ‘궁중 영양떡’이라고 써있었지만, 내부는 떡집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작업 공간은 떡 방앗간이라기보다는 레스토랑의 주방 같았고, 컴퓨터 한 대와 작은 테이블 하나, 떡을 포장하는 샘플 케이스가 전부인 매장은 일반 사무실에 가까웠다. 어리둥절해하며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조현제 사장이 다가왔다. 젤을 발라 삐죽삐죽 세운 헤어스타일에 굵은 목걸이, 조리사복에 앞치마까지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그의 모습 역시 떡집 사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혼자 일하는데도 이렇게 옷을 갖추어 입느냐”고 하자, 그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을 통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찰떡세트. |
“긴장감을 잃지 않으려고요. 혼자 일할수록 자기 관리를 더 잘해야 해요. 대충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의 대답은 옥션에서 누리고 있는 궁중 영양떡의 인기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떡이 완성되기까지 10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을 오로지 혼자 해내고 있다는 그는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다”며 웃는다.
“오후까지 주문을 마감하면 저녁부터 떡을 만들기 시작해요. 다 만들어 놓고 집에 가면 보통 11시, 12시가 되죠. 찰떡은 식어야만 칼을 댈 수 있기 때문에 밤새 식힙니다. 새벽 4~5시쯤 일어나서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따뜻해요. 그걸 일정한 크기로 잘라 서로 붙지 않도록 일일이 비닐로 포장하고 다시 케이스에 담는 작업을 마치면 아침 10시쯤 돼요. 최대한 신선한 상태로 고객들에게 보내기 위해 오후 동안 제가 보관했다가 늦은 저녁, 맨 마지막 타임에 택배 기사에게 접수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도와주는 사람이 생겨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지난가을부터 예비신부 우승현 씨가 매장에 나와 주문과 고객관리 일을 도맡고 있는 것. “젊은 사람이 떡집을 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우 씨는 “직접 매장에 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며 웃는다.
올해 서른다섯인 그가 떡과 사랑에 빠진 것은 서른 살 무렵. 그 이전까지만 해도 ‘떡집’은 그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15년째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님 옆에서 틈틈이 일을 도우며 자란 그는 떡 만드는 일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 그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원했던 일은 경찰 특공대나 대통령 경호원 같은 특수직. 실제로 경찰 특공대에 자원,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니던 회사에서 별 비전을 느끼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뉴스 한 대목이 그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을 들으며 그는 무릎을 쳤다. 영양이 풍부하면서 맛있고, 먹기 편하고, 칼로리 부담도 없는 떡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시간 지나도 말랑한 떡 만들려고 1년간 연구
그는 아버지가 운영해 온 방앗간을 실습실 삼아 떡 만드는 연습을 했고, 2004년에는 농협중앙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떡 경연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받았다. |
다니던 회사에는 사직서를 냈다. 그러고는 1년간 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 다니며 궁중 떡을 공부하면서 아버지의 방앗간을 실습실 삼아 떡 만드는 연습을 했다. 다음날이면 딱딱해지는 찰떡을 어떻게 하면 시간이 지나도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맛의 표준화가 주된 관심이었다. 떡 만들기에 한창 몰두해 있던 2004년 농협중앙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떡 경연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그가 원하던 떡을 개발해 냈다. 떡을 처음 개발할 때부터 그는 동네 떡집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전국 판매를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옥션의 문을 두드렸는데, 온라인 시장에서 떡을 팔겠다고 나선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자리를 잡기까지 1년쯤 걸렸지만 온라인 매장은 장점이 많아요. 일단 주문량만큼 만들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없고, 성수기·비수기 구분이 없어 매출이 안정적이죠. 배송을 하지 않는 주말에는 쉴 수도 있고요.”
새로운 방법으로 떡을 파는 그를 가장 신기해한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 한참 지난 떡의 맛이 그대로라는 사실도 믿기 어려워했다. 그는 “그 비법은 아버지에게도 가르쳐 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저희 떡은 받는 즉시 냉동실에 넣어야 해요. 먹기 직전 꺼내 실온에 20~30분 정도 놔두면 금방 해동되면서 원래의 맛을 냅니다. 해동될 때 갓 만들었을 때의 신선함과 쫄깃함을 되살리는 것, 그게 바로 핵심 기술이죠.”
최상의 재료를 고집하고 있는 것도 단골을 많이 확보하게 된 요인이다. 설탕을 거의 쓰지 않음으로써 단맛을 줄였고, 찹쌀에 호박·흑미·쑥 등의 천연 재료를 넣어 맛과 색을 살렸다. 호두, 잣, 땅콩, 해바라기씨 등의 견과류와 콩을 듬뿍 넣어 영양 만점의 떡을 만든 것도 특징. 특히 대추, 유자, 호두, 잣, 꿀 등으로 소를 만들고, 만두처럼 빚어 고물을 묻힌 고소하고 쫄깃한 두텁떡은 최고 인기 품목이다. 사은품으로 동봉하는 수정과 역시 그가 직접 담근 것. 통계피를 푹 우려낸 수정과는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과는 맛이 달라 수정과만 따로 살 수 없느냐는 문의를 자주 받는다.
매출이 얼마인지 묻자 그는 대답 대신, 판매량을 일러 준다. 35~36개 들이 한 박스를 기준으로, 하루 30~40세트가 그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 물량이라는 것. 한 세트 가격은 29,000원이다. 궁중 영양떡이 인기를 끌면서 저가 공세를 펼치는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그는 쉽사리 가격경쟁에 휩쓸리지 않는다. 최고의 떡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요즘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오히려 저를 부러워해요.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도 많아 아예 프랜차이즈 매장을 구상 중입니다. ‘던킨 도너츠’ 같은 형태가 적당할 것 같은데, 계속 고민을 해봐야죠.”
몸은 고되지만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는 조현제 사장. 그는 앞으로도 ‘건강’을 컨셉트로 한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떡의 온라인 판매’라는 새로운 시장을 연 것처럼, 이 실험 정신 강한 젊은 사업가가 앞으로 우리 떡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지켜보는 일은 제법 흥미로울 것 같다.
사진 : 이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