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다른 세상에 있고,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경치나 분위기가 좋은 곳을 이르는 말이다
이백이 쓴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의 한 부분이다.
큰바리봉, 의상봉, 장군봉 등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우두산은 과연 산세가 아름다웠다
우두산은 일본 개국신화와 관련된 전설의 산이며,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곳이라 해서 산 이름도 의상봉이다
14명의 회원이 승용차 석대로 다녀온 우두산은 이미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주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여 9시 무렵에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우두산 주차장에 당도하였다
가조는 정감록에 가야산 만수동 한양 조씨 천년도읍지라고 기록돼 고대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신라의 가소현(加召縣)인데 방언(方言)이 비슷하여 소(召)가 조(祚)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14명의 회원들은 늘 하던대로 스틱을 높이 쳐들고 화이팅을 외친 다음 출발하였다
산행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매우 깔끔하게 지어져 있어 기분이 좋았다
산행로도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었는데, 고견사를 알리는 글씨가 선명한 큰 자연석 옆으로 들어섰다
늘 변함없이 신산회의 푯대가 되어주시는 황보회장님의 향기가 온 산에 번져 나갔다
고견사로 올라가는 철계단이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지만 땀이 많이 흘러서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였다
산에 오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벗을 줄 알면서도 옷을 껴입는 마음이 우둔하다 ㅎㅎ
철계단 옆에서 우렁차고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기에 내려다 보았디
우두산의 명물인 견암폭포(見岩瀑布)였다
견암폭포는 계곡의 상류에 고견사라는 절이 있어서서 고견폭포(古見瀑布)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두산의 계곡이 그다지 깊지 않고, 요즘 강수량도 적었는데 물줄기는 젊고 풍부하였다
고견사 경내에 들어서니 거대한 은행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라 말 최치원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통일 신라에서 조선까지 이어지는 고견사의 위상을 알려 주고 있는 설화를 품고 있다
고견사(古見寺)는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理貞)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의 이름은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보니 전생에 이미 와 본 곳임을 알았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1988년 중창하였고, 절까지 화물운송용 모노레일이 놓여있다
의상봉 아래에 자리잡은 고견사는 아담하고 정결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고견사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지만 이곳 범종루가 가장 맘에 들었다
특히 자연석을 이용해서 축대를 쌓았는데 뛰어난 조형미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아랫쪽에는 크고 투박한 돌을 쌓았고, 위쪽엔 작고 아담한 돌들을 쌓았는데 그 조화로움에 석공의 안목이 돋보인다
돌틈 사이사이에 풀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이 또한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가 울고갈 만큼 석축의 조형미는 빼어나다
고견사에는 세 가지 자랑거리와 볼거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630년에 만들어진 동종(銅鐘)과 고려시대 석불(石佛), 숙종이 원효 대사를 기려 내린 강생원(降生院) 편액이 그것이다.
동종은 대웅전 안에 있어서 보지 못했고, 숙종이 하사했다는 편액은 어디에 숨겼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이 석조여래상은 화강암으로 된 큰 바위에 불상과 광배를 조각하여 만든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석불의 얼굴은 형태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윤곽은 뚜렷하며 토속적인 인상이 물씬 풍겼다.
고견사는 의상대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숙종 임금이 고견사를 창건한 원효와 의상 스님을 추앙해서 직접 편액을 써서 내렸다고 전해진다.
절 아랫쪽에는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매일 두 사람분의 쌀을 얻었다는 쌀굴이 있다.
등반대장의 옆으로 보이는 마애불은 최근에 조성된듯 한데 고견사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계곡길은 습하고 더웠다
물줄기가 젤젤 흐르는 샘터(?) 앞에서 가져온 물을 마시며 쉬어갔다
물이 고여있는 샘터 앞에는 제단과 촛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도들이 기도처로 이용하나 보다
종교가 다를지라도 기도하는 마음만은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두산 장군봉에는 옥황상제의 딸을 사랑한 장군이 형벌을 받고 산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산에는 장군의 원한이 아직도 서려있는지 우리가 오르는 길은 사납고 거칠었다
그러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법....이윽고 고갯마루가 보여서 서둘러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은 장군봉, 의상봉, 고견사 방향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자매님들을 근처에 있는 가조온천으로 모시고 가서 피로를 풀어드리고 싶은데...마음 뿐이다
의상봉으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한참을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의상봉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은 상당히 길고 험해서 심장이 약한 사람은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골짜기를 타고 오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서 난간을 꽉 붙잡으며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의상봉 정상에 다다르니 대단한 풍광에 압도되었다
의상봉(1,038m)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 때문에 다른 봉우리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암봉(巖峰)으로 이루어진 의상봉에 서니 가야산·덕유산·지리산을 비롯해 장군봉·상봉·비계산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는 가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거친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의상봉 정상에 올라 속세에서 짊어지고 온 마음의 짐을 던져 버리고 내려오니 시장기가 돈다.
멀리서 바라본 의상봉의 모습은 소 머리 같기도 하고, 스님의 머리 같기도 하였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설치된 철계단을 보니 다시 손에 땀이 쥐어졌다
시장기를 참으며 우두산 정상에 도착했지만 산세와 전망은 의상봉을 따라가지 못했다
우두산은 산세의 수려하기가 덕유산, 기백산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다
우두산은 지도상에 별유산으로 되었으나 최근의 개념도에는 우두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거창군청 홈페이지 안내와 우두산 정상 표지석과 의상봉 표지석도 최근에 우두산이라 바뀌었다.
정상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봉우리는 가야산이다
그 맥에 닿아 있는 의상봉은 별유산의 한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정면의 암릉은 이 산의 마루턱이라 부를 만하다
날카로운 바위들이 늘어선 모양새가 흡사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한 석화성(石火星)이 뚜렷하게 보였다
국내 최초로 산악 절벽에 세 꼭지점을 연결하는 이른바 Y자형 출렁다리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산악절벽의 세 꼭지점을 연결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으로 이동해서도 다양한 각도의 우두산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Y'자형 삼각 출렁다리의 길이는 무려 109m다.
아직 완공이 안 돼서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데도 건너오는 사람들이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출렁다리 앞에 늘어선 다섯명의 선녀들은 지금 속세로 내려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ㅎㅎ
출렁다리에서 내려오니 거창군에서 추진하는 치유의숲 공사 현장이 눈에 띄었다
42억을 들여 산림치유센터, 아트포레스트, 약용수원, 치유숲길 등을 조성한다고 한다
지자체마다 야침찬 사업들을 펼치고 있는데 환경 파괴 문제와 실효성 면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함양에 있는 서원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남계서원(藍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자리잡고 있다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1552년(명종7)에 지었다.
1566년(명종 21)에 나라에서 ‘남계(灆溪)’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상국 <소나무 숲에는> 부분
남계서원에서 울타리 하나를 건너면 청계서원(淸溪書院)이 있다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한 마을에 서원이 두 개나 전해져 오고 있는게 특이하고,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에서는 선비스러운 기품이 느껴졌다
내일이 바로 유창호 등반대장의 회갑이라고 한다
리따 자매님이 깜짝쇼를 만들어서 오늘 산행에 참여한 모두를 '양평해장국집'으로 초대하였다
케익의 촛불 앞에서 박수 치며 노래부르는 두 분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난다
지금까지 살아온 60년을 축복하고,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60년을 축원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이 나서 만60년이 되는 해를 회갑이라고 한다.
자기가 타고난 간지가 만 60년이면 도로 그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만60년이 되는 해의 생일을 회갑으로 친다.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참이슬과 테라를 섞어 마시는 흥겨운 잔치에 여러 사람이 초대되어서 지꾸 숫자가 늘어났다
우리 신산회가 13년 동안 이어온 것은 등반대장의 공로가 지대하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더 큰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였다
첫댓글 부드러운면서 강한산이지요
다들 수고하셨고
산행과 여행을 연계시키면 좋겠지요
가을빛 고운 날.. 좋은분들과 함께 한 산행.
행복만땅~이었습니다.
대장님, 벌써.. 환갑이라니~
지금의 열정으로 주욱~~ 리따와 함께~`
신산회와 함께~~ 건강하게 고고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