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 9287 등록일자 : 2003/08/11 20:40 작성자 : 막국수 ()
제목 : 2기 무신정권 스토리(1178~1183)
2기 무신정권 스토리(1178~1183)
청년장군 경대승은 본이 청주이고 청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경진은 무신으로 무신의 난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고위직 무신이란 이유로 출세를 거듭했다. 조위총의 난이 발생하자 윤임첨의 우군 병마사로 출전하여 공을 크게 세워 지문하성사(종2품)가 되었다가 계속 승진해 중서시랑 평장사까지 지냈다.
경진 역시 정중부정권시절 다른 무신처럼 부정한짓을 많이 했다.
지위를 이용해 남의 재산을 빼앗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아들 경대승은 의협심이 남달랐다.
어린나이인 15세에 음보로 군에 투신해 교위(초급장교)가 되었다.
17세의 나이에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그의 부가 무신정권의 핵심인물이었으므로 초고속 승진하여 장군직에 오를수 있었다.
경대승은 집안의 후광에 힘입어 장군에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고속 승진은 본인의 성격과 관계가 깊다. 경대승은 아버지와 달리 청렴결백했다. 아버지가 빼앗았던 토지를 돌려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무신들의 전횡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의협심이 남달라 무인들의 불법적인 행동에 곧잘 분개했다. 그는 아버지 경진이 죽자 강탈했던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노비들을 모두 풀어주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군부에 바쳤다.
그러한 일을 계기로 조정에서 청렴결백한 그의 이름이 크게 떨치게 되었고 말딴 병사에 이르끼까지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일을 계기로 경대승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균이었다.
정균이 말하길 "경진의 아들 경대승이란 어린놈이 사사건건 불만이 많다지? 이놈을 가만히 두어선 곤란하겠어" 이렇게 결심하였다.
이러던 찰라 경대승은 1178년(명종8년) 고향인 청주의 사심관을 역임하고 있었다. 본시 지방관은 문신들이 대대로 취임했으나 이의방이 법제를 바꾸어 버려 무신들도 지방관을 할수 있는 시기였다.
1178년에 서울에 올라와 있던 청주인들과 청주 본토 사람들 간에 벌어진 싸움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주의 사심관이던 그는 관직에서 파면됐다. 실상은 평상시 무신들의 횡포에 대놓고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 그의 태도에 정균등이 나서 괘씸죄로 파면시킨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일을 계기로 경대승은 정균에게 불만을 가지게 된다. 또한 당시는 정균과 송유인의 횡포가 극에 달하던 시기여서 많은 젊은 무신들이 불만을 품게 된것이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들었다. 정균이 공주에게 장가들려 하자 황제는 이를 매우 꺼렸다. 누군가 이들 세력을 꺾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또한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이 문극겸과 한문준을 탄핵해 내쫒자 문신들은 물론이고 무신들까지 반발하였다.
때가 이르렀다고 느낀 경대승은 명종9년(1179년) 행동을 개시한다.
26세의 경대승은 관직에서 파직되자 전국을 유랑하며 30여명의 장사패를 끌어 모았다. 이들 모두 일당백의 용사들로 죽기로 경대승을 보필하기로 맹세하였다.
어느날 허승이 길을 가다 문뜩 한무리의 장사들이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느꼈다. 허승은 견룡군(경호부대) 대장으로 힘이 천하장사라 정균이 총애하여 그에게 경호를 맡기고 있었다.
"허허~ 웬놈들이냐? 감히 내가 누군질 알고 이러는 게냐?"
"허승장군이 아니시옵니까? 잠시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 겠습니다. 장군을 뵙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놈들 바라! 감히 누굴보고 가라마라 한단 말이냐? 죽고싶은게냐?"
이렇게 해서 허승과 장사패들이 한판 크게 붙게 되었는데, 싸움이 만만치 않았다.
"허 요놈들 대단하구나 힘깨나 쓰는 자들이야! 하지만 사람을 잘못보았다. 에잇!"
허승이 힘을 쓰자 장사패들이 하나둘 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사패들이 허승에게 쩔쩔매자 이를 지켜보던 경대승이 크게 웃으며 나타났다.
"으하하! 역시 견룡군 대장답소이다. 허명이 아니었소이다. 대단하오!"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 허승이 답했다.
"보아하니 그대가 이들의 우두머리인 모양인데 대체 누구길래 나를 오라가라하는 것이오?"
"사내끼리 무슨 할말이 있겠소이까! 평소 그대의 힘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한번 겨루어 보고자 함이오"하며 겨루기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허승과 경대승이 맞짱을 떴는데 용호쌍박 오랫동안 승부가 나지않았다.
허승이 말하길 "내가 태어나서 수많은 싸움을 해보았지만 그대같은 이는 처음이오. 그대의 존함을 알려주시오"
"소생은 경대승이라 하오! 본시 무인으로 군부에서 일을 잠시 맡은 적이 있소이다"
허승은 놀라며"아니 경이 바로 경대승장군이란 말이오? 그대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이다. 고려천지 무인치고 그대의 존명을 모르는 이가 있겠소이까? 반갑소이다. 반가워"
곧바로 의기투합한 그들은 술자리를 같이하며 의형제를 맺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경대승이 내심을 털어놓았다.
"이보시오! 허형, 형님은 지금의 시국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떻게 생각하냐니? 아우님 무엇을 말하는 겐가?"
"지금 조정엔 간신들이 득실거리고 성상은 유약하여 노심초사 근심하지 않는 날이 없다 하오이다. 또한 정균이란 자는 감히 궁에 기거하면서 밤마다 음탕한짓을 하면서 심지어는 공주마마까지 욕을 보이게 하고 있소이다. 어찌 지금 조정이 제대로 된 조정이겠소이까?"
"낸들 어쩌겠나! 지금은 정씨부자의 세상일세. 그런말은 함부로 하지말게나 누구들으이!"
경대승이 크게 웃으며 말하길
"사나이 태어나서 못할말이 뭐가 있겠소이까? 나 경대승 세상에 두려운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오"
"이보시오 허형,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이다. 내가 보다 못해 흉적들을 쓸어버리려 하오. 허형이 조금만 협조해 준다면 일이 성사되거나 진배없소이다. 나를 도와주시오."하며 무릎을 꿇었다.
허승은 잠시 생각하다 혼쾌히 이를 수락했다.
거사는 9월16일 장경회가 열리는 날 벌이기로 했다.
그날은 궁에서 불경을 꺼내 읽고 다시 장경각에 보관하는 날이다. 온종일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엔 으레 뒷풀이가 따랐다. 피로와 술이 겹치면 잠이 깊이 들게 마련이다. 정균도 뒷풀이를 하고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궁에서 궁녀와 요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경비를 맡았던 군사들도 이날만큼은 허승이 내온 술을 먹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경대승은 결사대원 30명을 이끌고 승려로 위장해 화의문 밖에 숨어들었다.
허승은 모두 잠이 든 틈을 타서 정균의 처소에 갔다.
"나으리! 나으리! 소인 허승이옵니다. 지금 역적들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어서 일어나시지요."
궁녀와 요상한짓을 벌이던 정균은 "이게 무슨말이냐? 난이라니?"
허둥지둥 옷을 차려입은 정균이 문을 열자 갑자기 허승이 말하길
"이 역적놈아! 이칼을 받아라!"하면 단칼에 정균을 베었다.
정균의 목을 베자 허승은 정균의 목을 들고 휘파람으로 밖에 있는 경대승에게 신호를 보냈다.
허승의 신호가 오자 경대승은 30여명의 결사대원들과 함께 황궁담을 넘어
들어가 숙직 대장 이경백, 지유 문공려를 죽였다. 그제야 군사들이 잠에서 깨어나 경대승의 결사대와 싸움을 벌였으나, 경대승의 결사대원들은 천하에 당할자가 없는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 황궁에서 정중부일당을 도륙한후 경대승은 황제의 침전으로 향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명종은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침전 밖에서 경대승이 부복하며 말하길
"신등이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정균을 죽였으니, 곧 역적의 무리를 모조리 처단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영을 내려 주시옵소소."
정균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 황제는 경대승에게 친히불러 술을 내리며 위로했다. 경대승은 즉시 황명을 받아 2천여의 금군을 이끌고 가서 정중부의 사위인 송유인을 죽이고, 정중부를 찾았다. 정중부는 난을 알아차리고
황도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정중부가 성을 빠져나갈때 하급군졸들이 그를 알아보고
"저자가 역적 정중부다. 저자는 무인이면서도 옜날 문신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와 같은 말단 군졸들을 못살게 굴었다. 저자를 죽여라"
이에 정중부는 집단 린치를 당하고 74세에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다음날, 경대승은 정중부,송유인,정균 등의 머리를 거리에 매달고 역적을 죽였다고 천하에 공표하였다. 황제는 매우 흡족해 하여 경대승을 불러 칭찬을 하길
"경이 아니면 누가 사직을 구하겠소? 승선 정균을 죽였으니, 그대에게 승선의 직책을 하사하겠노라."
"신은 일자 무식이옵니다. 학문을 못하는 소신이 어찌 폐하를 보필하는 승선의 직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마땅한 사람을 경이 천거하시오. 이부시랑 오광척은 어떻소?"
"오광척은 비록 학문이 있다하나, 승선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황제는 아무 말없이 경대승을 바라보았다. 경대승이 처소로 돌아오자 무신 손석이 찾아와 말하길 "오광척이란 간신이 황제에게 승선 자리를 달라고 애원했다는 것이다"이에 격분한 경대승은 오광척을 불려들여 참수해버렸다. 본시 정중부정권시 손석의 아버지가 오광척에 의해 탄핵받아 파직되자 원한을 품고 경대승에게 밀고하여 오광척을 제거한것이었다
경대승은 또한 이기회에 정중부의 무리들을 싹쓸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중부 가신 5인방인 김광영,석화,습련,송득수,기세정등을 모조리 조정에 불러들여 죽였다. 이처럼 경대승이 기분 내키는 대로 무신들을 죽이자 고위 무신들의 불평은 대단했다.
"정중부장군은 큰 뜻을 위하여 문신을 누르고 무신들의 울분을 풀어 주었음으로 그 공은 마땅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대승이 하루 아침에 장군을 죽였으니 누가 이 원한을 풀어 줄 것인가?"
하며 호시탐탐 경대승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기운을 눈치챈 경대승은 내심 불안했다.
"비록 내가 역적을 멸하고 정권을 차지하였으나 도처에 정중부일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을 모조리 도륙하자니 그들의 세가 만만치 않다. 이들이 연합하여 나를 공격한다면 어찌 당하겠는가!"
하여 측근들을 불러모았다.
측근들은 경대승 경호부대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경대승은 30명의 장사패들을 전국각지로 보내어 천하에 힘깨나 쓰고 의협심이 남다른 이들을 찾아오게 하였다. 전국각지에서 수천명의 장정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경대승의 집에서 이들중 가려뽑은 일천여명의 장정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였다.
"너희들은 들으라! 본시 나는 무를 사랑하고 의를 숭상하여 천하의 역적들을 단칼에 쓸어 버렸다. 그러나 도처에 아직도 역적의 무리들의 발호가 끊이지 않으니 천하의 장사들이 어찌 이를 두고 볼수 있으랴! 하여
오늘 천하에 사내다운 사내는 모두 모아 의형제를 맺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때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날을 같게 해달라고 빌미 어떠하냐?" 하자
일천여 장사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 환호했다.
이로써 경대승 경호부대가 창설되었는데 이름은 도방이라 하였다. 도방은 정부에 소속된 군인들이 아니라 순수한 경죽모(경대승과 죽기를 같이하는 모임)회원들이 주축이된 사병집단이었다. 이들의 힘은 막강하여 감히 누가 건드는 자가 없었다. 이들의 무소불위는 대단하였는데 관리의 집을 영장없이 쳐들어가 쑥대밭으로 만들고 출동한 관군을 욕보이며 조롱했다. 어쩌다 술집같은데서 싸움이 벌어져 도방소속 장사패가 관에 하옥되면 무리를 이루어 관아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동료를 꺼내기도 하였다.
이들중 100여명의 최정예 도방소속 장사들은 경대승의 숙소인 도방에서 침식을 같이했다. 도방은 말 그대로 여러 개의 방을 터서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든 것이다. 모든 행동과 죽음을 같이하기로 맹세한 동지들만이 도방에 들어올수 있었다. 그러한 의미로 긴 베개와 큰 이불 을 만들어 같이 썼다. 경대승 자신도 때때로 결사대원들과 숙식을 같이 했다. 그들은 경대승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고인물은 썩기 마련인법, 무를 사랑하고 의를 숭상한다는 도방의 이념은 점차로 퇴색되고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어 횡포가 자자해졌다.
도방은 정부기관이 아닌데도 사정기관처럼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차원에서 다치는 대로 관리를 납치해다가 족치고 죽이기를 밥먹듯이 하였다.
한편 허승은 쿠테타가 성공하자 장군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요직인 태자부의 지유를 맡았다. 그의 수하 김광립은 어건룡의 행수가 되었다.
그들은 요직에 있게 되자 기고만장해졌다.
또한 은밀히 고위무신들과 접촉하며 세를 규합하고 있었다.
도방에서 이러한 낌새를 눈치챈것 얼마 안가서였다. 경대승이 생각하길
"허승 이놈이 날로 방자해지는 구나! 게다가 정중부의 잔당등과 은밀히 접촉하고 있다지! 이는 용서치 못할자로다"
하여 허승에 연락하여 술자리를 같이 하자고 꾀였다.
허승은 찜찜했으나 김광립을 비롯한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 도방에 들어섰다. 도방에 인적이 드물었다. 인적이 없는걸 보고 안심함 허승은 당당하게 도방에 들어섰다. 정자에서 경대승과 허승은 술자리를 같이 하였다.
"이보게 아우님 오랜만일세! 내가 맡은 직책이 직책인지라 요사이 좀 바빴네 그려!"
"바쁘시겠지! 역적의 무리들과 몰려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하였소? 허형"
눈치를 챈 허승이 벌떡 일어서며 칼을 뽑아들었다.
경대승이 말하길 "네이놈 허승아! 어찌하여 조그마한 공이 있어 분에 넘치는 포상을 받았으면 그만이지,어찌 자중하지 않고 방자하게 역적도당들과 내통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오늘이 바로 내놈이 죽을날이렸다!"
허승과 김광립이 칼을 빼어들었으나 갑자기 도부수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정자를 호위했다. 본시 인기척을 숨기고 도방 정자주위에 숨어있다 경대승의 신호로 나타난 것이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허승은 칼을 버리고
"아우님 살려주시게! 나는 역적들과 내통한 일이 없네! 어찌하여 무고하게 나를 죽이려 하는가? 옛정을 보아 나를 살려주게"하며 빌었다.
그러나 냉정한 경대승이 들어줄리 만무했다. 그길로 허승과 김광립은 그날을 제삿날로 삼게 되었다.
경대승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황제는 또다시 불안해졌다. 언제 저자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황제는 겉으로 경대승을 위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멀리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챈 경대승도 역시 불안감에 쌓이게 되었다.
황제마저 자기에게서 등을 돌렸으니 언제 신료들이 변심하여 자기에게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일이었다.
청년장군 경대승도 매일매일 불안한 날을 보내다. 30세가 되던해 경대승은 우연히 병을 얻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청년 무사였으나, 병 앞에는 약하디 약했다. 경대승의 몸은 병명을 모른채 자꾸만 몸이 야위어 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178년 7월 어느 날, 경대승은 꿈을 꾸었다.
"이놈 일어나거라!" 눈을 뜬 경대승의 눈앞에 7척장신의 정중부가 호랑이눈을 뜨고 칼을 빼어들며 서있는게 아닌가?
"네이놈 정중부야 네놈은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는게냐? 어서 썩 물렀거라" "나는 본시 간신들의 횡포를 참지못해 거병하여 무신들의 원한을 갚아주었는데 어찌하여 무신인 너는 나를 죽였느냐? 그러고도 네가 살아남길 바라였더냐?"하며 큰칼로 경대승을 내려치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대승은 눈을 떴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몸에는 심한 열이 났다. 그 이후로 경대승은 자리에 누웠다.
몇일후 도방소속 장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30세의 젊은 생을 마감했다.
경대승은 고려사에서 기록되어지길 충신열전에 기록되어있다.
거의 모든 무신시대 100년동안 집권했던 무신들이 반역자로 몰렸으나
오직 경대승만이 충신으로 분류돼 추앙을 받았다.
조선건국할시의 이성계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큰 칼을 품은 경대승이 나타나
"나의 자손 시중 경복흥은 청덕이 있으나 너무 늙었고, 장군 최영은 직명이 있으나 너무 고지식하나, 반면 그대는 문무겸전하고 덕망이 있는 왕재(王材)로서 백성이 따르는 바이므로 이 금척을 주는 것이니 상서로운 명을 받아 제위에 오르라"하는 것이었다.
훗날 조선을 건국한후 이성계가 말하길 "경대승장군의 자손에게는 천만 세까지도 천역을 맡기지 말라"고 하여 경씨 가문은 부역이나 군역이 면제되었다.
경대승이 죽고 나자 지휘자를 잃은 도방은 갈팡질팡했다. 신료들이 황제를 부추겨 영을 내려 도방을 해산케 하였다. 도방이 해산할 때 도방소속 장사패들이 도방에서 쌓아놓은 재물들을 서로 약탈해 가니라 내분지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틈을 보아 관군을 내려 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죄과를 논해 100여명의 핵심 인물들은 참형에 처했으며 나머지 장사패들은 모조리 잡아 섬에다 유배를 보냄으로써 5년간의 짧은 경대승 천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정중부와 경대승은 다같이 무인이었지만 서로 생각이 달랐다. 정중부는 무신정변에 동의했으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볼 뜻이 별로 없었다.
이미 고위직에 올랐을 뿐 아니라 나이도 많이 먹어서다.
경대승은 달랐다. 정변이 일어났으나 달라진 건 없고 오히려 더 어지럽고 지저분 한 세상이 됐다.
젊은 혈기에 불탔던 그는 정중부 일당을 제거하고 달라진 세상을 만들려 애썼다. 하지만 실패했다. 너무 젊었고 지지기반도 넓지 않았다.
목적만큼 수단과 방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여하튼 경대승이 죽어 공백이 된 틈새를 노려 황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군소 무신들의 힘이 만만치 않아 이가 쉽지 않았다.
이에 명종은 경주로 숨어들어간 이의민을 불러들여 이들을 제어코자 하였으니 여우굴에 호랑이를 청한격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