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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지정문화재명 : 조종암 ¤ 지정번호 : 기념물 제 28호 ¤ 지정일 : '75.9.5 ¤ 관리인 : 왕종락 ¤ 전화번호 :585-1281 ¤ 소재지 : 하면 대보리 17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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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의 차욕을 씻고 자주 독립의 의지를 다지기 위하여 조성된 제단으로 일제하에서도 은밀히 유림들이 모여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제향을 빌미로 하여 모임을 가진 곳이다. 조종암은 조선 숙종 10년(1684)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당시 가평군수인 충담 이제두 공에게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1627~1644)의 어필인 "思無邪"를 직접 模本하고, 또 효종(1649~1659)의 "日暮途遠 至痛在心"이라는 문구를 써서 보내며, 이를 근엄한 장소를 골라 새기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이제두, 허격, 백해명 등이 힘을 합하여 위 글귀와 선조의 어필인 "萬折必東 再造藩邦" 등 암각문을 새기고 제사를 지낸데서 비롯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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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 정면 좌측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글자의 크기는 대략 31*47㎝정도로 명나라 의종 어필이라고하며 김상헌이 심양에 인질로 가 있을때 가지고 온 것이라 함.
思無邪 (사무사) :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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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각자가 있는 하단 우측에 새겨져 있으며 "萬折必東" 부분은 대략 22×44㎝, "再造藩邦" 부분은 대략 62×79㎝ 정도로 선조의 어필이라고 함.
萬折必東再造藩邦 (만절필동재조번방) : 일만번 꺾이어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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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折必"가 각자되어 있는 하단에 새겨져 있음.
日暮途遠至痛在心 (일모도원지통재심) : 효종8년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죽음을 앞두고 차자(간단한 형식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효종이 비답한 글 중 " 진실로 가슴에 심한 한(삼전도의 치욕)이 서려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길이 먼 것(북벌계획) 같은 생각이 든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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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折必東 각자 우측상단에 자로 새겨져 있으며 선조의 친손인 랑선군 이오가 새겼다고 함.
朝宗岩 (조종암) : 조종이란 말은 여러 강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모인다는 뜻이며, 또다른 의미로 제후가 천자를 알현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또는 崇明排淸의 장소로 조성된 바위라고도 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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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으로 올라가는 맨 아래쪽 우측에 전자로 새겨져 있으며 1824년 화서 이항로가 비 아래 정자를 지을 계획으로 그 건너편에 집을 짓고 기거하였으나 끝내 정자를 짓지 못함.
고종 11년(1874)에 유중교, 이희식, 유기은, 이광규 등이 참배한 후 화서선생이 정자를 지으려고 하였던 바위에 "見心亭 (견심정)"이라 새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