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전격 사퇴는 사실 뜻밖의 일입니다. 그가 장관후보자로 지명되고 이중국적문제와 CIA 연루설, 국내부동산투기 의혹(疑惑) 등 각종 문제가 불거졌지만 언론에서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결국 청문회(聽聞會)의 벽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기때문입니다. 4일 국회에서 자청한 회견에서 야당을 비롯한 현 정치권의 난맥상을 사퇴의 명분으로 삼은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채 표표(飄飄)히 사라졌습니다. 이튿날에는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는군요.
▲ ⓒ photo by 뉴시스 박동욱기자
2월 17일 내정발표가 있고 3월 4일 사퇴했으니 꼭 보름만의 일입니다. 박근혜정부의 핵심부처로 화려하게 부각된 장관후보자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저의 꿈이 산산조각조각났다”는 비감한 소회(所懷)를 드러내며 사퇴하는지 요령부득입니다.
그의 사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야가 사뭇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적합한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내건 사퇴의 명분은 뜬금없습니다. 취임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각 구성조차 못하는 대통령의 실망어린 표현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그 밑에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야 할 공복(公僕)의 자세는 아니기때문입니다.
역대로 많은 후보자들이 들이대는 검증(檢證)의 칼날에 고통스러워 했지만 이는 국민을 위한 공직자로서 견뎌야 할 어쩔수 없는 통과의례입니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의혹에 시달릴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혹 수준이라면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하기나름이라는 것입니다.
김종훈 후보자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됐지만 야당이 말하는 이른바 ‘결정적인 한방’은 없었습니다. 이중국적문제, CIA커넥션, 부동산투기설 등은 그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진심만 발휘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격 사퇴는 미스테리입니다. 오죽하면 “의혹이 고구마줄거리인 김병관도 사퇴안하는데 김종훈이 왜 사퇴하냐?”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혹자(或者)는 재산이 재벌급인 그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경우 1천억원에 달하는 국적포기세를 물어야 하는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청담동에 경매로 낙찰한 빌딩에 유흥주점이 불법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미확인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청문회에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합니다.
진짜 이유는 그만이 알겠지만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유추(類推)는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대한민국의 장관 자리를, 그것도 박근혜내각의 꽃이라 할 미래부 장관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쉽게 생각했다는 의미는 쉽게 장관자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정하기까지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있었다고하니 필경 처음엔 고사(苦辭)를 했을 것이고 최종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심(苦心)을 했을 것입니다. 포기해야 하는 기득권이 컸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잃는것만큼 얻는 명예도 크고 무엇보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해 모국에 헌신(獻身)할 수 있다는 달콤한 명분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모국을 위한 헌신의 마음은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아닙니다. 조건이 달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의 ‘굳은 결심’ 은 설익은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의혹에 시달리며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여기 왔는데’ 하는 섭섭함과 억울함이 들었을 것입니다. 언필칭, ‘모국을 위한 헌신’이라는 고결한 가치를 내세웠지만 알고보니 그것은 너무나 허약한 기반에 있었습니다.
그의 허무한 사퇴는 모국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자세가 아니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뚫고 갈 자신도 없었고 과연 그럴 가치가 있나 하는 회의가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모국 헌신론’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은 사퇴의 변(辯)입니다.
▲ ⓒ photo by 뉴시스 박동욱기자
“저는 미국에서 일궈온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는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다. 그 길을 선택한 것은 한국 미래는 박이 말하는 창조경제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 걸린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상황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 났다.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논란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 지켜내기 어려웠다.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낳아준 조국을 위해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한 그가 '고작' 정부조직개편안의 혼란상에 ‘꿈이 산산조각 났다’ 고 절망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조국을 위해 바치려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는건 대체 무슨 말인가요.
그는 오직 미래부장관 자리를 보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한 것일까요. 아니할 말로 그는 해외동포사회를 배려(配慮)하는 차원에서라도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마치 하늘이 무너진듯,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사퇴한다는 말입니까.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한다’는 표현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영수회담(領袖會談) 제안을 그는 명령으로 인식한걸까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야당에게 명령을 내린 적이 있든가요? 아니면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공무원들이 거부했다는 말입니까? 설마하니 2013년 대한민국을 그가 이민온 시기인 1975년 서슬퍼런 유신체제하의 박정희정권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정말 참기 힘든 것은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 는 대목입니다. 조국을 위한 헌신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한단 말입니까? 조국을 위한 헌신은 상황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 photo by 뉴시스 박동욱기자
김종훈님,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진정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었다면 미래부 장관이 아니라 미래부 문지기를 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어야 합니다. 조국에 대한 헌신은 철지난 유행가 가사도 아니요, 필요한때만 주머니에서 꺼내 쓰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진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다면 당당하게 청문회에 임해 진정성(眞正性)을 입증하면 될 일입니다. 만일 야당이 설득력없는 흠집내기를 가한다면 되레 국민여론의 역풍(逆風)을 맞을테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궤변(詭辯)에 가까운 사퇴문을 남기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조국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접겠다고 했으니 한국국적도 다시 포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주한인사회에서는 씁쓸함과 아쉬움이 교차(交叉)합니다. 유능한 1.5세와 2세 인재들이 모국에 돌아가 재능을 꽃피우는 하나의 본보기가 좌절(挫折)됐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동포2세들이 조국에 대한 헌신을 어떤 각오로 다져야 하는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는 점은 불행중 다행입니다.
일부 한인단체 지도자들은 김종훈의 낙마(落馬)를 두고 한국의 정치권이 해외동포사회에 대해 홀대한 것처럼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는 야권의 반대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입니다. 일부 언론을 포함, 섣부른 단견으로 해외동포사회와 본국 국민의 오해와 갈등을 조장(助長)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애당초 준비되지 않은 후보를 무리하게 끌어들인 박근혜정부의 실책입니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진정 헌신할 수 있는 양심적이고 능력있는 인재들이 해외동포사회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런 인물들을 감별(鑑別)하는 안목(眼目)이 없거나, 볼 생각이 없다면 문제는 또 달라지겠지요. 끝으로 ‘김종훈 사태’에 대한 네티즌의 뼈있는 한마디를 소개합니다.
“다 버린 사람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노창현
글로벌웹진 뉴스로 www,newsroh.com 대표기자 88년 스포츠서울 기자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함께 공동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