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Bicycle Thieves, 1948)
2023년 4월에 재개봉하여 극장에 걸린 고전 영화가 있다. 1948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이다. 이 영화는 전설이 되고 교과서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로마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이 영화는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와 다를 바 없이 사실적으로 현실을 포착했고, ‘네오 리얼리즘’(Neo-Realism)이라는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현실적이다’라는 표현이 모자라게 느껴질 만큼 철저하게 세상을 그대로 비춘 거울과 같은 스토리도 인상적인 특징이지만, 배우가 아닌 실제 노동자들을 출연시킨 것과 세트장이 아닌 진짜 길거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가감 없이 찍어낸 것도 이전의 다른 영화들과 큰 차이를 갖게 하는 주요한 특징이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자전거 도둑>이 그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고전 흑백 영화 정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처절하고 뛰어나다. 그리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 ‘안토니오’는 벽에 벽보를 붙이는 일을 겨우 얻어낸다. 오랜만에 얻은 일거리에 기뻐하던 그에게 냉혹한 소식이 추가로 전해진다. ‘자전거가 없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가 없는 상황에서 ‘안토니오’는 일거리를 다른 노동자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자전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장담한다.
집으로 돌아간 ‘안토니오’는 아내 ‘마리아’에게 상황을 토로하고, 두 사람은 옥신각신하면서도 방법을 강구한다. 강단 있고 생활력 강한 아내 ‘마리아’는 집에 있는 침대 시트를 모조리 챙겨 전당포로 가져가고, 두 사람은 그렇게 얻은 돈으로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한다. 희망이 보이는 상황 앞에서 부부는 밝고 다정하게 웃는다.
다음 날 아침. 의욕 넘치게 출근하여 열심히 일을 배워 한창 벽보를 붙이는 일에 집중하던 안토니오는, 옆에 세워둔 자신의 자전거를 누군가 훔쳐 가는 것을 목격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 타고 쫓아가지만 결국 도둑을 놓쳐버리고 만 안토니오. 좌절하며 경찰을 찾지만, 경찰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도난 신고나 해두라 할 뿐이다. 그다음 날부터 ‘안토니오’는 잃어버린 자전거와 도둑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갖은 노력을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다.
학교도 가지 않고 주유소에서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어린 아들 ‘브루노’, 그리고 온갖 일감을 얻어와 돈을 벌고 끊임없이 일하는 아내 ‘마리아’까지. ‘안토니오’의 상황과 그의 가정을 보면 애달프다. <자전거 도둑>에 담긴 ‘현실’은 그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고, 또 온종일 노동한다. 모두가 하루를 열렬히 불태워 내일을 얻어 살고 있다. 자전거와 도둑을 찾아다니는 ‘안토니오’와 ‘브루노’의 여정에서 여러 사람이 조건 없는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또 그들 각자가 전부 고단한 현실을 견뎌내고 있었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영화란 참으로 매섭다. 작정한 카메라가 현실을 그대로 포착하는 순간, 과장 없이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인간이 알지 못한 채 이 지구에서 중력을 견디며 살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때로 망각하면서 각자의 무거운 삶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로마에서 견뎠던 <자전거 도둑>에 찍힌 노동자들의 현실을 우리가 봐야 하는 이유고 또 오늘의 현실을, 오늘의 이웃들을 우리가 봐야 하는 이유다. 서로 연대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함을 상기하기가 참 어려운 2023년에 말이다.
이 처절하게 현실적인 <자전거 도둑>의 결말부는 감히 한두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없이 연약한 인간이 있고, 눈물과 땀이 있고, 또 그럼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흉내내 전하게 되는 따뜻함과 사랑이 있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엔딩 장면이 오묘한 위로가 되길, 또 서로를 위해 함께 울어주라는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 (사 25:4)
※ 영화 <자전거 도둑>은 현재 필름포럼 영화관에서 절찬리 상영 중입니다.
첫댓글 오늘도 우리는 가난하고 힘들고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연대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