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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로 자른 듯 깎아지른 코요좀 북벽.
브로길과 와칸 지역 주민은 길기트 바자르에서 생필품을 구입하여 야크에 짐을 싣고 다르콧 고개를 넘어온다. 그 길손들이 하룻밤 묵어 갈 주막과 시끄러움이 있을 것 같은데 너무나 조용하다. 햇볕 내리는 지붕 위에서 아낙네들이 막대기로 두드려 양털을 고르고 있다. 기름 때 낀 에나멜 컵에 시원한 막걸리 대신 따뜻한 우유차를 받아 마시고 야르쿤 강으로 곧 내려선다.
경이롭고 신비로운 치티코이 빙하 풍광
발 디딤마다 먼지가 폭폭 피어오르는 벼랑길 중간쯤에서 이시카르와즈(Ishikarwaz)로 바로 올라붙는 길이 갈라진다. 강물과 세월이 깎아 놓은 바위 조각품을 지나서 돌, 통나무기둥, 그리고 나무못으로 만든 옛 다리로 다가선다. 아쉽게도 절반이 끊어져 버렸다.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얼음벽을 뒤로하고 격류 위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했다. <The Mountain World> (1968 /69판)에서 보았던 그 사진의 풍경을 기대했건만, 옆에는 팽팽한 쇠줄다리만 매달려 있다.
▲ 1.단풍이 든 히말라얀 포플러와 카롤좀. 힌두라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이다. 2.강물의 유량이 줄어드는 가을부터는 양 사면으로 난 길을 이용하지 않고 강바닥이 길이 된다. 당나귀에 땔감을 싣고 가는 칸쿤 마을 주민들. 3.하늘에서 하얀 색 얼음 기둥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차티보이 빙하는 야르쿤 강물에 이르러 무너진다.
비딘콧(Vidinkot)은 치코르(3,570m)에 비해 불과 50m 정도 낮은데도, 여러 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맞은편 페추스(Pechus) 마을의 온천은 수온도 낮을 뿐더러 바가지로 바닥을 긁어야할 정도로 수량도 적었다.
다르콧 고개에서 투이2봉(Thui Ⅱ·6,523m)까지 동서로 연결된 산군에는 힌두라지에서도 고봉들이 밀집해 있고, 그 북면으로 8개 빙하들이 야르쿤 강으로 흘러든다. 빙하침식에 의해 형성된 표고차 1,500~2,000m의 3개 북벽-코요좀, 카롤좀(Karol Zom, 또는 Thui Ⅰ·6,660m), 투이2봉은 앞으로 새로운 선을 추구하는 등반가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높이가 낮고 접근이 조금 어려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정상에 깃발을 꽂으려고 각국에서 우르르 달려들던 초등반 역사 이후에는 전혀 시도가 없는 상태다.
힌두라지 능선은 계속해서 남서쪽으로 뻗어 산두르 고개(Shandur An·3,734m)를 지나고 부니힌두라지(Buni Hindu Raj)에서 부니좀(Buni Zom·6,551m)을 솟구쳤다가 쿠나르, 카불, 스와트 강이 아우르는 곳에서 300km의 여정을 마친다.
강▲ 라와르크에서 바라본 야르쿤 강줄기와 흰색 스크리 사면 밑에 자리잡은 쇼스트.
초등반은 1968년 슈탐(A. Stamm)대장이 이끄는 오스트리아대가 차티보이 빙하로 접근하여 봉우리 남쪽으로 돌아서 정상에 올랐다. 다음 해에 경쟁을 벌이던 일본팀이 두번째로 올랐고, 74년 영국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는 등산가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근래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쉬었다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바닥에 배낭을 멘 채로 주저앉아 누워 버렸다. 습기 찬 안경을 벗으려 팔을 드는 것도 힘들다. 하늘엔 구름이 쉼 없이 흘러간다. 눈꺼풀도 내려앉았다. 등골을 타고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거미줄에 감겨 체액이 다 빨려진 메뚜기처럼 빈껍데기만 남았다.
이시코만 계곡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지 열하루, 하루도 쉬지 않고 걸었고 배낭에 눌린 지 6개월째다. 이제 샤흐지날리 고개 넘어 부니로 가야한다. 그리고, 다시 길기트까지 되돌아가려면 스무 날은 더 걸어야한다. 기다리고 있을 하나 하나의 고통에 몸서리와 두려움이 가득해진다. 이제 돌아가서 쉬고 싶다. 원래 계획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지역을 다녔고, 중간에 그만둔 것에 대한 위로는 병원에 가야할 오른쪽 다리를 핑계 삼으면 되지 않는가.
지친 몸으로 하룻밤 보낸 이상한 마을
어두워졌다. 걷고 또 걷는데 키시만자(Kishmanja) 마을은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지나친 것일까? 모르겠다. 그냥 쓰러져 자고 싶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함성을 질러 마음을 다잡아 보려하지만 말라비틀어진 목구멍에게는 가혹한 학대였다.
스크리(scree·퇴석지대) 지대의 사면을 돌아섰다. 아, 불빛도 없는 집들의 윤곽이 보이고 연기냄새가 풍겨온다. 이제는 쉴 수 있겠구나. 세찬 냇물을 건너뛰어 어느 집 앞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어깨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어지럽다. 통나무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숙인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 리치 계곡의 가을. 파키스탄 북부에서 처음으로 경작지에 거름을 내고 겨울 보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았다.
열 살 정도의 딸과 젖먹이가 있는 네 식구의 가족이다. 그의 안내로 조금 떨어진 집의 작은 방에 들었다. 머리가 닿을 높이의 천장과 문 옆에 사람 머리 크기의 창이 하나 있는 방이었다. 바닥에는 밀짚이 푹신하게 깔려 있고, 양쪽 벽에 붙여진 두 개의 차르포이 침대와 중간에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가 있었다. 촛불을 켜 놓고 짐을 한쪽 침대에 풀어 헤쳤다.
이제 편안히 쉬려는가 싶더니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에 이어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 집 주인인 듯싶다. 숙박비를 물었다. ‘인샬라(Inshallah)’처럼 이들의 ‘No Problem’이라는 대답에는 너무나 많은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짐들을 만지고 심지어는 노트까지 한 장씩 넘기며 살핀다. 이제 그만 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카메라 가방까지 열고 뒤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등을 밀어 쫓아내고 문을 걸어 잠갔다.
주위는 다시 조용해지고 가스스토브에 찻물을 올렸다. 불안하다. 아무래도 방안의 느낌이 이상했다. 뒤돌아 바로 랜턴으로 조그만 창을 비추었다. 시커먼 얼굴에 번들거리는 눈과 마주쳤다. 순간 공포감이 발끝까지 타고 내린다. 모르는 사이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두려움에 숨이 턱 막혔다. 순간 그 얼굴이 사라졌다. 죄 없는 문에 발길질을 해대고는 구멍을 벼개로 틀어막았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이상하지 않은 곳에 있고 싶다.
▲ 아프가니스탄의 와칸 지방과 연결되는 칸쿤 고개로 오르는 계곡.
2000년 10월16일 오전 5시55분, 땀이 흥건한 침낭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각각의 주민들이 몇 번을 찾아와 파이사(Paisa·파키스탄 화폐 단위)를 반복하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비빈다. 돈 달라는 얘기다.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원래 주고자 했던 액수는 그만 두고 가장 소액권 지폐를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
강가에 자란 히말라얀 포플러 숲길을 지난다. 모래바닥에 당나귀와 말똥이 점점이 박혀 있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잎들이 모래바람에 날린다. 코탈카시 빙하(Kotalkash Gl) 속에 완벽한 형태를 갖춘 카롤좀 봉우리가 허공을 찌르고 있다. 좌측의 북동면은 빙하 표면에서 정상까지 치닫는 빙벽이 환상적이었다. 여기 골짜기에서 바로 보는 저 산은 아름답다. 그러나 폭풍설과 굶주린 산정 위에서 그 산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지인에게 잘 대해야 하는데 쉽게 되지 않는다.
코탈카시 빙하 입구의 검은 암벽을 지나면서 야르쿤 강은 칸쿤(Kan Khun) 마을 앞까지 넓게 펼쳐진다. 강물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모인다. 길은 여름철 증수기에는 사면을 오르내리고 가을부터는 강바닥을 따라 걷는다. 땔감을 당나귀에 싣고 칸쿤으로 가는 일행을 쫓아갔다. 모래폭퐁이 불어닥치고 가끔 무릎까지 차는 물을 건넜다.
지르츠(Zirch) 앞의 잡석지대에서 카람바르 고개를 함께 넘어 온 키 작은 할아버지를 재회했다. 두 명의 아들은 아프간으로 넘어갔고 그는 치트랄에 간다고 했다. 반가움도 잠시 담배를 달라고 장난을 걸어온다. 또 서로를 괴롭힌다. 나는 나무지팡이로 말 엉덩이를 때려 놀라게 하고, 그는 안장에 앉아 채찍을 휘둘렀다. 그가 먼저 앞질러 가버렸다. 키시만자에서부터는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도 없이 5시간을 내리달려 라시트(Rasht)로 들어간다. 물레방앗간 밑의 냇물에 작은 송어가 그득하다. 손으로 한 마리를 잡아 물병에 담았다.
▲ 라시트 마을의 물레방앗간과 초원. 맑은 물과 훌륭한 캠프장을 제공하며 냇물에는 송어가 가득하다.
격렬한 전쟁터 연상시키는 폴로 경기장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라시트에서부터 서쪽으로 흐르던 강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치티사르(Chhitisar)와 루쿳(Rukut) 마을 간에 폴로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공을 치고 달리는 격렬한 전투처럼 보인다. 후려치는 채에 대비하기 위해 말의 정강이에는 보호대가 묶여 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질문에 “한국”이라고 대답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니(중국인)?”라고 되묻는다. 경기 끝나고 뒤풀이하자는 제안을 뒤로하고 쇼스트(Shost)에 도착했다.
다행히 동네에서 잠자리 걱정을 하지 않고 인삽 호텔(Insap Hotel)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간판이 달린 숙소에 들었다. 현지인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었다. 주인과 얘기 도중에 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그 할아버지였다. 몸이 많이 아픈 듯했다. 그런데도 담배를 달라고 한다. 꺼내 주려고 하는데 그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담배갑을 내밀었다.
▲ 샤흐지날리 고개 직전의 치티사르 마을에서 폴로 경기를 즐기는 현지인들. 이 고개는 힌두쿠시와 힌두라지 산맥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는 중앙에 위치한다. 고개 이름은 왕의 폴로 경기장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밖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걱정이다. 잠자리에 누웠다. 마스튜즈로 가서 며칠 쉴 것인지, 고개를 넘을 것인지 이제 선택해야한다. 옆에 누운 할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고갯마루에 빙하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위안을 삼고 일단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할아버지와 동병상련의 밤을 보냈다.
▲ 1.매 사냥을 나가는 시카리(사냥꾼). 투리코 계곡에서는 흔한 광경이다. 2.온천이 있는 페추스 마을의 촌로.
야시키스트 마을로 오르고 시루 계곡(Siru Gol)으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어섰다. 벌써 땀이 흐른다. 협곡 아래에 걸린 현수교가 보였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샤흐지날리 고개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야시키스트 마을로 연결되는 용수로가 절벽으로 깎여져 있다. 물이 흐르지 않고 말라 있다. 이 턱을 따르면 쉽게 고개 입구로 들어갈 것 같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중간쯤에서 산사태로 200m 끊어져 있었고, 위험한 사면을 미끄러져 내리고 다리도 없는 곳에 물을 건너느라 고생만 더했다. 시루와 샤흐지날리 냇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통나무다리를 건너 좁은 협곡 사이로 들어갔다. 위에서 떨어지는 낙석을 살피며 위험지대를 벗어났다. 길은 대여섯 번 냇물을 이쪽 저쪽으로 건너며 고도를 꾸준히 상승시킨다. 목표물을 정하고 걷고 잠깐 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목표물은 힘겨워지고 100보 헤아리고 쉬고, 50보 헤아리고 쉰다. 뒤쪽으로 카마로좀(Kamaro Zom·6,250m)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다.
▲ 1.리치, 우즈누 계곡 사이에 서 있는 미등봉 사라리치(6,225m). 파키스탄 등산 규정의 변경으로 2003년과 2004년에는 입산료가 면제된다. 2.샤흐지날리 고개는 여름 시즌에 가축들의 방목지로 이용된다. 눈 덮인 고개로 오르며 뒤돌아본 동쪽 산군.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넘어 반대편 강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배낭을 메자 쓰라림의 통증이 심하다. 이시페루독에서부터는 설선이 시작되고 모레인 흔적이 남은 잡석지대다. 바지자락을 신발 모가지에 대고 단단히 조여 맸다. 나무다리로 냇물을 건너 예전의 흔적으로 옳은 길을 더듬었다. 차팍가르(Chapakhgar ·5,804m) 남면에 붙은 모레인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눈은 깊어져 발목 이상이다. 2시간을 올라 고개인 듯한 넓은 언덕에 섰다. 장딴지까지 차는 눈을 헤치고 나아간다. 뿌연 구름에 가린 하이 힌두쿠시(High Hindukush) 연봉에 노을이 지고 있다.
모리치 주민들, “우리는 몽골리안 형제”
고개 자락은 공동묘지에 눈이 내린 모양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다. 여름에는 야생화와 풀밭이 가득하고 양떼들이 뛰어 노는 곳이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백색 벌판이다. 해가 넘어가면서 찬 바람이 계곡에서 쳐 올라온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눈밭에 천막을 쳐야하는 두려움에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1시간을 더 나아간 곳에서 물이 반대편으로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왕의 폴로 경기장’, 샤흐지날리 고개(Shah Jinali An·4,259m)를 넘은 것이다. 아래로 뛰었다. 기압차로 고막이 아프다. 다이빙을 할 때처럼 코를 잡고 불었다.
▲ 샤흐가리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힌두쿠시 연봉의 일몰.
절벽에서 가늘게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고 굴러 떨어진 바위가 만든 다리를 건넜다. 네 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모글랑(Moghlang)으로 빠져나왔다. 샤흐가리를 출발한 지 9시간만에 루아(Rua)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들 우르르 몰려왔다. 마을 뒷구멍으로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에 아이들은 신났다. 루아는 투리코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마을로 강 양편에 경작지와 집들이 있다. 밭에는 겨울보리가 파릇하게 자라고 있고 거름을 낸 더미가 보였다. 파키스탄의 북부지역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배낭을 벗어두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돈을 달라며 졸졸 따르던 사내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다닌다. 공교롭게도 그 중 하나가 다리에 맞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돌을 던진 놈을 잡아 강물에 던졌다. 그 날 2시간동안 동네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방에 둘러앉아 서로의 용서를 빌었다.
루아에서 비를 맞으며 출발한다. 몬순의 영향을 더 받아서인지 길기트나 스카르두보다 초목이 많다. 1878년 서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치트랄에 방문한 비듈프(John Biddulph)의 저서 <Tribes of The Hindoo Koosh(힌두쿠시의 종족들)>에서 ‘치트랄의 사람들을 코(Kho)족이라 부르며, 투리코(Toorikho), 물코(Moolkho), 룻코(Ludkho)의 각기 다른 지역으로 나뉜다. 그들의 언어는 코와르(Khowar)다’고 설명하고 있다. 힌두쿠시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다. 투리코, 물코, 룻코는 코족이 사는 상부지방, 중부지방, 큰 지방이라는 뜻이다. 지금 내려가는 루아에서 티리치 계곡이 만나기 전의 샤그람(Shagram) 마을까지가 투리코이다.
붙잡고 늘어지는 모리치(Morich) 마을 주민들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 들었다. 자신들은 모굴제국의 후예들인 몽골리안이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 동네 이름도 그래서 모리치이고, 너와 같은 형제라고 핏대를 세운다.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말 중에 밤골, 샘골 하는 골이라는 단어가 이곳에서도 똑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발음도 정확히 같았다. 용골(Yong Gol), 차온골(Chaon Gol) 등 골짜기에 골 투성이다. 연관성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던 1년 후에 치트랄 대학 강사 라흐맛 카림 벡(Rahmat Karim Baig)의 책 <Hindu Kush study series vol 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코와르 말에 골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몽골어로 계곡, 골짜기에 쓰인다.’ 하지만 지금의 몽골에도 이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우즈누골(Uzhnu Gol), 지와르골(Ziwar Gol), 티리치골(Tirich Gol) 안쪽에는 힌두쿠시의 최고봉인 티리치미르(Tirich Mir·7,706m)를 비롯해 유명한 봉우리가 밀집해 있지만, 다음 기회에 찾기로 했다. 한 달이면 족하다.
라인(Rain) 마을에 있다던 스투파가 각인된 바위는 찾으려던 노력을 포기한 상태였는데, 주민의 홍차 대접을 받고 나오다가 그 집 대문 앞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이스토르(Istor)에서 지프를 타고 치트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부니(Buni)에 도착했다. 숙소도 정하지 않고 배낭을 지고 좋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날 저녁식사는 세 번 연이어졌다.<계속>
트레킹 가이드
힌두쿠시와 힌두라지 유명봉 조망 일품
다르콧 고개~샤흐지날리 고개 횡단 코스
힌두쿠시, 힌두라지의 유명봉을 대부분 조망할 수 있으며 차티보이 빙하의 웅장함을 맛볼 수 있으나, 일정이 긴 것이 흠이다.
□트레킹 규정
다르콧 고개는 개방 지역인데 반해 투리코와 리치 계곡은 파키스탄 관광국에서 미화 50달러를 지불하고 트레킹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 규제지역이다.
□트레킹 시즌
6~9월까지 가능하나 다르콧 고개의 빙하 상에 크레바스가 드러나는 7~8월이 가장 좋다.
□포터 고용
다르콧에서 치코르까지는 행정(stage)으로, 그 외의 치트랄 대부분의 지역이 실제 운행한 일정으로 임금 계약을 하고 있다. 소규모 팀은 야크나 당나귀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교통편
치트랄에서 투리코 계곡으로 진입해 전세지프로 루아까지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거나, 길기트에서 다르콧으로 가는 대중교통이나 전세지프를 이용한다.
□일정(길기트 출발 기준)
제1일 다르콧~라왓~하이캠프. 6~7시간 소요. 2001년에 라왓까지 지프도로가 신설되어 2시간 단축됐다. 고소적응을 위해 라왓에서 하루 쉬고 단 번에 넘는 방법도 있지만, 하이캠프에서 일박한다. 캠프지가 좁으며 식수 사정도 좋지 않다.
제2일 하이캠프~다르콧고개~치코르. 7~8시간 소요. 고소적응과 날씨에 따라 운행시간의 유동이 크다. 치코르 마을 옆 초원에 캠프장이 있다. 텐트 1동당 20루피의 사용료를 지불한다. 여기서 하루 쉬면서 브로길 고개를 다녀오는 것도 좋다. 포터 교체 요.
제3일 치코르~비딘콧~키시만자. 5~6시간 소요. 캠프장과 식수사정이 좋다. 캠프료를 지불한다.
제4일 키시만자~칸쿤~라시트. 6~7시간 소요. 강물이 불어나는 여름시즌에는 사면으로 난 길을 여러 번 오르내려야 한다. 라시트에서 기본적인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
제5일 라시트~쇼스트~야시키스트~이시페르독. 7~8시간 소요. 캠프장도 넓고 식수도 좋다. 목동들로부터 고기와 우유을 구입할 수 있다. 쇼스트에서 마스튜즈로 빠지면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
제6일 이시페르독~샤흐지날리 고개~샤흐가리. 5~6시간 소요. 고개는 야생화가 가득한 광활한 평원이다. 소규모 팀은 고개 위에서 천막을 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제7일 샤흐가리~데르샬. 4시간 소요. 루아 마을까지 하루에 갈 수 있으나 9시간 이상 소요된다. 데르샬 맞은편에 주니퍼 캠프장도 괜찮다.
제8일 데르샬~모글랑~루아. 4~5시간 소요. 뜨거운 사막길이다. 차양막으로 우산이 좋다 .
제9일 루아~우즈누. 7~8시간 소요. 루아까지 지프도로가 나 있다. 전세지프가 예약되어 있지 않거나 길이 유실됐을 경우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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