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살피며,
공동체(교회) 내부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지식이나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개인적인 기대'입니다.
교인 중에 한 명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해서 왜 떠나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교회가 자신이 생각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가 생각하는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형제는 긴 시간 자신이 생각하는 공동체에 대해 말했습니다. 일리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제가 생각한 진정한 공동체는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를 다른 교우들이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한 것을 따라오는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형제가 공동체를 만나려면 자기 소원을 모두 내려놓아야만 할 것입니다.
본회퍼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소원의 형상', '특정한 형상'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공동체에 대한 '선입견'이고, 좋게 말하면 '기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이든, 기대이든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진 자들 때문에 공동체는 시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본회퍼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이 같은 꿈들을 즉시 깨뜨려 버린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자신이 그린 그림, 소원의 형상, 특정한 형상을 이미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꿈을 깨뜨리십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깨지는 것이 은혜이고 공동체가 되는 길의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본회퍼는 개인적인 소원을 버려야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그때서야 공동체는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본회퍼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몽상을 싫어하신다. 몽상이 사람을 교만하고 수다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공동체 형상을 꿈꾸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요구자(하나님?)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속에 들어가 자신의 법을 세우고 그 법에 따라 형제와 하나님을 심판한다. 그는 완고하며, 형제자매 사이에서 다른 모든 사람(자기편까지)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경우 '경계선 장애'에서나 볼 수 있는 즉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본회퍼는 말합니다. 자신이 그려온 그림을 내려놓고,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가라고... 하나님께서 공동체 식구들을 통해 그리신 그림만이 그 공동체에 필요한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예배당에서 드리는 ‘공적예배(모임)’ 뿐 아니라, 일상에서 행해지는 매일의 삶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한부분임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백이 ‘공적예배’와 ‘일상의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일예배와 같은 공적예배 이외에 ‘매일의 삶’을 가리켜 이 또한 ‘예배’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공적예배만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매일의 삶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라는 의미에서 일상의 예배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예배’가 세상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우리 자신의 몸부림이라면, ‘공적예배’는 세상 가운데 세우신 ‘교회공동체 안’에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임재를 펼치시고 하나님의 통치와 주되심을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누리는 시간과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일예배와 같은 공적예배는 우리 자신의 수고와 노력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것을 그저 받아 누리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 혹은 봉헌을 대가로 받을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모함만 지니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맛볼 수 있는 ‘공적예배’의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많은 사람도 아니며, 능력 있는 설교도 아니며, 잘 짜여진 예배순서도 아닙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외적인 조건들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일까? 없습니다. 그러나 ‘사모하는 마음’만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가치와 능력을 진정으로 아는 성도라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적예배를 준비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입술로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집중하여 예배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으로 드리는 공적(주일)예배 현장이 없이 일상의 삶이 예배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뿌리가 잘린 나무에게서 열매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적(주일)예배에서 맛보는 은혜가 없이는 아무리 일상의 예배를 세우고 싶어도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날마다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어느덧 올 한 해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실 은혜의 가치를 아는 성도는 그에 걸맞는 마음으로 주일을 준비합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 전에 예배당을 방문하여 자신이 섬길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내서 감당합니다. 이러한 준비와 섬김은 은밀히 행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드러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결코 비워 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개혁교회,
종교행위 자체에 갇혀 버리는 신앙생활을 지양하며,
‘성경본문’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고백을 기반으로
삶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날마다 씨름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지역교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지역’을 품고 섬깁니다.
이를 위해 ‘예배당’을 무리하게 건축하지 않고, ‘사람’을 세우며,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과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기 위해
지속적으로 세상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교회'와 '교회'를 잇는 공교회
단일교회 성장이 아닌 복수적 교회개척과 분립을 지향하는
연합(공)교회의 가치를 우선함으로,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의 갱신에 동참하며, 국내외 사역자들을 섬깁니다.
(이 글은 부천의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님의 글을 옮겨와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