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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산
간밤에 시골에서부터 따라오던 둥근달은 새벽이 되었는데도 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미련 때문일까? 아님 내게 무슨 할 말이 남아서일까? 휴대폰 알람을 두 군데나 설정해 두었어도 신경이 쓰여 통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믿으면 되는데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싶어 자다가 깨기를 여러 번 되풀이 끝에 베낭을 챙겨 출발지인 법원 앞으로 향할 수 있었다. 새벽 5시 반의 도심은 아직도 캄캄했다.
오늘은 대구의사산악회의 180회 산행이며 한 해 동안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있는 날이었다. 산악회 맴버는 아니었지만 시산제 행사에 회장님을 비롯한 6명이 특별히 초대를 받았다. 연일 겹치는 일정에 하루쯤 집에서 푹 쉬고 싶었으나 사람들은 나를 그냥 두려하지 않았다. 산행의 목적지는 경남 고성의 동해면에 있는 구절산이라는 곳이었다. 대절한 버스는 빈 좌석 하나 없이 45명의 정원을 꽉 채우고도 한 좌석이 모자랐다. 도심을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 부족한 잠을 잠깐 청하고 눈을 뜨자 영산휴게소였다. 차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김밥 한 줄로 아침을 대신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으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심 또한 많은가보다.
혹독하리만치 춥고 매서웠던 지난겨울의 추위도 우수를 맞아 서리 맞은 고춧대 처럼 맥없이 주저앉아 오늘은 완연한 봄날이었다. 산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잔뜩 움추리고 감싸기만 했던 자킷도 벗고 기지개를 켜며 봄기운을 맞았다. 오늘은 조용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홀로 하는 산행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함께 하는 왁자지껄 산행이었다. 두 시간여를 달리고 나서야 야산처럼 엎드린 구절산 자락이 올려다보였다. 들머리를 찾지 못해 한참이나 헤매기를 거듭한 끝에 겨우 구절폭포로 이어지는 산행의 기점에 들었다.
시골은 어디를 가나 구제역으로 초비상이었다. 외곡리 마을을 통과할 즈음 할머니 한분이 나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우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자식처럼 키우는 소가 구제역에 걸릴까봐 조바심을 하는 모습에서 미안한 마음에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 싶었다. 우리는 휴일을 맞아 산이 좋아 찾아간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는 축산농가의 걱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시골에서는 구제역 때문에 외지민이 마을로 들어서도 우사를 바라보아서도 소와 눈을 마주쳐서도 안되었다.
오늘 산행은 구절폭포 길로 올랐다가 정상에서 봉화산을 거쳐 북촌으로 이어지는 산행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포장길을 조금 돌아오르자 맑은 물이 가득한 용문저수지가 나오고 계곡을 따라 한참을 더 오르자 흰 얼음을 이고 있는 구절폭포가 보였다. 여름에는 더위를 앗아갈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졌을 10여미터의 폭포는 아직도 꽁꽁 얼어 있었다. 구절폭포의 왼편에는 암벽 아래로 폭포암이라는 절이 자리하고 있었고, 바위 협곡에 위치한 절은 과거 서경보 스님이 수행정진 하던 곳이라고 한다. 맑은 약수로 목을 축이고 108계단을 올랐다. 나홀로 산행이었으면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았을텐데 일행들과 함께 하느라 아쉬웠지만 바삐 서둘러야 했다.
등산로는 폭포사 앞으로 이어졌다. 폭포사 옆에는 흔들바위가 있었고 아낙네들이 진짜인지 바위를 시험하고 있었다. 흔들바위는 폭포에 살던 용이 수행 끝에 도를 이루어 승천을 하다가 마침 정남마을 아낙네들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바람에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에 꼬리가 잘려 떨어진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무 세게 밀면 행여나 바위가 굴러 떨어질까 싶어 나도 바위를 밀어보았더니 진짜로 바위가 흔들렸다. 흔들바위가 맞기는 맞나보다. 이 흔들바위는‘소원을 빌고 난 후에 밀어서 한 번에 흔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흔들바위는 구절폭포와 폭포암과 함께하는 구절산의 명물이었다.
흔들바위를 돌아오르는 길모퉁이에서 바라보는 단애절벽과 어우러지는 암자와 폭포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앞만 보며 가는 세상살이는 인생의 참 멋을 모르듯이 뒤돌아보지 않고는 산의 멋진 풍경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없다. 흔들바위에서 잠시 지체를 했던터라 앞선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급히 바위틈을 돌아오르는데 몇 사람이 바위쪽을 바라보며 쑤군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멋진 바위 위에 만년송이 엎드려 있었다. 생명의 경이였다. 어떻게 물 한방울 없는 저 암석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모진 것이 생명이었다.
나뭇잎으로 덮인 평탄한 숲길이 잠시 이어지는가 싶더니 폭포 위쪽에서부터는 곧장 가파르게 올려치는 길이었다. 본격적인 산행은 이곳에서부터였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정상에 이르게 된다. 참고 견디며 옮겨놓는 발걸음은 나를 믿기지 않는 곳에 서 있게 한다.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구절산에는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인간이 먹는 음식은 먹지 않고 오직 산에서 나는 산삼만 캐어먹고 사는 구절도사가 있었다고 한다. 구절도사는 아홉 구비에서 폭포에서 아홉 번 목욕을 하고, 아홉 번 절을 하고, 아홉 번을 불러야 만나볼 수 있었다고 하니 꾀나 꼬탈스럽고 깐깐했나보다. 구절도사는 심술이 많아 구절산의 구절령 줄기에 있는 사람이 출세를 못하게 했으나 정성으로 빌면 징용이나 전쟁터로 나간 동해면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했다니까 구절도사는 비록 심술쟁이였으나 의리 하나는 있었나 보다.
'해발 559미터쯤의 산이야'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가파르게 계속해서 올려치는 산은 제법 이름값을 했다. 한 동안 산을 찾지 않아서인지 숨이 차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두둑하게 잡히는 뱃살은 장난이 아니었다. 열심히 자기관리를 하는 경북의 박처장도 이제는 산행에 노숙해 졌고 신협의 박부장은 프로급 산꾼이었다. 오늘 산행을 위해 파카까지 구입한 총무부장은 산행을 하지 않고 땡땡이를 치겠다고 하더니 그런대로 잘 따라왔다.
바위들은 이곳이 백악기시대 공룡의 놀이터였음을 말하는지 바닷속 진흙이 굳어진 모습이었다. 오르다가 쉬고 쉬다가 오르기를 거듭하며 한 시간여를 올려치자 마침내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건너편으로는 소뿔을 닮은 거류산과 멀리 벽방산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발걸음에 여유가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내려다보이는 당항포 바다가 못내 궁금했다.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폭포가 있는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서 임도를 건너고 암벽지대를 다시 올려쳐야 했다.
출발한지 두 시간여 만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가슴이 뻥 뚫어지는 기분이었다. 파아란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봄바람이 살랑이는 정상에서의 기분은 지깄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상쾌함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유서 깊은 당항포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바다는 언제보아도 시원함이 있어서 좋다. 오늘 산행은 날씨도 바람도 조망도 최고였다.
거류산으로 이어지는 서편의 들녘을 제외하면 구절산은 3면이 바다였다. 지형으로 보아 오래전에는 이곳도 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구절산의 정상에 선 기분은 하늘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남녘의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살랑대는 봄바람과 가슴 후련함이 있었다. 아늑하고 포근해 보이는 바다를 넋 놓고 내려다보고 있는 마음은 편안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낭만적이었다. 당항포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였다. 내가 서 있는 구절산은 바다 위의 섬 같았다. 구절산의 팻말 앞에서 인증 샷을 하고 바다의 정취에 취해 있는 동안에 지고 온 물건들이 차려지고 시산제가 시작되었다. 빙긋이 웃고 있는 돼지머리의 귀와 콧구녕에는 돈이 끼워지고 무사산행의 기원을 비는 제를 올렸다. “유세차~~”인간은 연약하기에 신에게 의지하고 빌어야 마음이 놓이는가 보다. 시산제에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의사산악회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우리도 절을 했다. 절이 거듭될수록 봉투는 두둑이 쌓여갔다.
그렇게 돌아가며 절을 하는 시산제를 마치고 준비해온 고기와 떡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갖고 온 막걸리 한잔까지 걸치고 나자 발아래의 남해바다가 모두 내 것 같았다. 바람마저 잠든 따스한 봄 날씨를 만끽하며 시원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나누는 막걸리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치 맛이 기똥찼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오늘만은 나도 구절산의 도사였다. 면경지수 같은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마음에도 한껏 여유가 있었다. 세상살이란 가끔씩 이런 여유를 즐기면서 살아야하는데도 사는 것이 뭔지 그게 잘 되지를 않는 것 같다. 올해는 숨가쁘게 살아온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도 갖고 건강도 챙기면서 산도 가끔씩 찾아 오르고 싶다. 보고 또 보아도 다도해는 아름다웠다. 한 시간여를 멋진 전경에 취해 있다가 일어섰다.
하산 길은 골프장이 빤히 바라보이는 북촌지역의 긴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이었다. 포근한 날씨라지만 응달진 북쪽 산기슭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움이 있었다. 한 동안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은 얼어 있어서 각별히 조심을 해야 했다. 봄의 산길은 여인의 마음 같아서 겉은 녹고 속은 얼어 있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크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꼭 챙겨야 할 것이 피켓도 장갑도 아닌 베낭이 아닐까 싶다. 능선을 따라 봉수대로 이어지는 길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은 산책길이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듯이 내려서는 길은 너무 지루했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다리가 휘청댈 즈음 주유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섰다. 바다는 썰물 중이었다. 남해바다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이처럼 크게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일행들이 모두 오기를 기다려 차에 오르자 피곤이 밀려와 금세 잠이 들었다. 예정된 저녁시간까지는 시간이 일러 바닷길을 따라 한 바퀴 드라이브를 하고 간다고 했으나 눈을 뜨자 건너편이었다. 멋진 바다풍경을 보지 못하고 잠든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산위에서 내려다볼 때 섬처럼 보이던 곳이 횟집이었다. 회는 막썰이 회였으나 청정 남해바다의 싱싱함 때문인지 맛이 있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차에 오른 잠깐 사이에 창밖은 이내 어둠이 찾아들었다.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이따금씩 시골마을의 불빛들이 스쳐갔다. 마산을 거쳐 대구로 향하며 어떻게 알았는지 총무가 0000 받은 것을 얘기하는 바람에 인사를 해야 하는 당황스러움도 있었다. 요즘 세상은 ppyp가 유행이란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를 영어로 한자씩 딴 신종약어란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 흥얼대는 노래가사의 한 구절쯤으로 생각을 했으나 구경도 산행도 맛난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나이가 들면 다 소용이 없는가보다. 세상살이에서 자식은 귀여운 도둑놈인줄 알았더니 누군가가 우리네 인생살이의 마지막 적이라고 했다. 나도 오늘부터 자식 놈을 경계하며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겠다.ㅋ
오늘은 의사산악회의 모임답게 음주가무가 아닌 한마디씩 돌아가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러는 사이에 차는 어둠속에서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산행의 노고를 위로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 한 산행이었지만 오늘은 모처럼 편안한 산행을 즐기며 남녘의 봄기운이랑 푸른 바다랑 봄바람을 듬뿍 쐬고 온 멋진 산행이었다. <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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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월 시산제를 겸한 산행을 다녀온 내용인데 돌아보니 벌써 보름 정도 지나 글도 숙성이 된것 같네.ㅎ~~ 카페가 썰렁한 것 같아 그냥 올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