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중세 스페인 정치인 돈 후안 마누엘은 이런 물음에 답하고자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란 책을 썼다. 책에서 루카노르 백작은 조언자 파트로니오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덕목이 무엇이오?”라고 묻는다.
파트로니오는 우화 속 늙은 기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덕목, 모든 덕목의 근원이자 으뜸은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움이 있기에 사람은 죽음을 감수할 수 있으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일입니다. 또한 부끄러움으로 인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올바르지 않은 일은 피하게 되지요. 이렇게 부끄러움 속에서 모든 덕목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모든 악행의 근원입니다.”
책을 읽다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그렇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나쁜 짓을 멈추거나 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끄러움은 양심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파트로니오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부끄러움은 사람을 강하게 하고, 너그럽고 충성스럽게 하며, 품위 있고 좋은 습관을 가지게 만듭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부끄러움 때문에 더 많은 선행을 하며 부당한 행동을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부끄러움을 잃는 것은 얼마나 사악하고 해로우며 추한 일입니까? 만약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멈추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을 아시는 신께서 그에게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일찍이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의(義)가 나온다고 단언했다. 수오(羞惡)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남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것이 정의의 시작이다.
그러나 요즘 일부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자기 잘못엔 고개를 돌린다. 도대체 부끄러움이란 것을 모른다. 온갖 흠결이 있어도 의로운 사람인 양 행동하는 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왜곡되고 불의가 갈수록 활개치는 이유이다.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은 부끄러운 짓을 하면 마음에 죄책감이 생겨 귀부터 붉어지는 까닭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혈관이 확장되면서 얼굴과 귀가 빨개진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
만약 어떤 이가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나쁜 짓을 계속한다면 그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선 이런 변종이 마치 우성인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세상이다.
-배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