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성춘 목사님을 추모하며 .....!
그리웁고 보고싶은 강(剛)하시고, 긍휼(矜恤)이 많으시며, 해학(諧謔)이 넘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너무 좋아하셨던, 독거도교회 25년 목회 하시고
은퇴 후에 조도중앙교회에서 9년을 함께 신앙 생활하셨던,
끝이 너무도 행복(幸福)하고 아름다우셨던 고 김성춘 목사님 !
우리 조도중앙교회에서 함께 하셨던 9년의 세월(歲月)들을 돌아보니
다음과 같은 감동적(感動的)이고, 깜짝 놀라고, 소스라치고, 대단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記憶)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갑니다.
첫 번째의 감동적(感動的)인 기억(記憶)은,
아들 같은 목사를 주의 종으로 깍듯하게 예(禮)를 갖추어 대하시고
너무나 사랑해 주시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도중앙교회 성도들을 한 가족같이 아끼시고 사랑과 관심을 가지시고
무엇이나 아낌없이 베풀어주시고, 칭찬과 격려의 말씀들이
큰 힘이 되고 벅찬 감동(感動)의 기억입니다.
두 번째의 깜짝 놀랄 기억(記憶)은,
조도 육동 마을에 거처(居處)를 마련하여 살면서
육동구역을 맡아서 구역인도를 하여 주신 사실입니다.
목사로 은퇴는 하셨지만 그래도 목사의 신분인데도
그 신분을 내려놓으시고 평신도로 돌아가셔서
구역인도를 충실(忠實)하게 하시는
그 겸손(謙遜)함에 고마움과 함께 깜짝 놀라는 기억입니다.
세 번째 소스라치는 기억(記憶)은,
사랑하는 아내이신 정순영 사모님을 끔찍이 잘 챙기셔서
당신만의 언어(言語)로 사랑을 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여보!”라는 말씀을 하시기 쑥스러워 “어이 이봐!”하시는 단어로
처음대하는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하시지만,
“어이 이봐”하는 단어(單語)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의 표현(表現)이었다는 사실,
당신만의 아내를 최고(最高)로 사랑하였다는
그 언어의 상징(象徵)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은 기억입니다.
네 번째로 대단한 기억(記憶)은,
하늘나라에 가시기 전까지 육체(肉體)는 거동(擧動)이 불편(不便) 하셨으나
강인(强忍)한 정신력(精神力)으로 전날까지 자녀들과 영상통화 하시고
정신이 맑으신 가운데 주님 품에 안겨서 영원(永遠)한 안식(安息)을 얻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갈 무렵,어린 시절 시절 북한 흥남부두에서 아버지 손을 붙잡으시고,
막 배를 타고 남한 논산 항에 빈 손으로 오셔서,
강인(强忍)한 육체의 단련(鍛鍊)된 힘과 정신력(精神力)으로
어려운 고난(苦難)의 시절들을 이겨내고, 결혼하셔서 1남3녀의 자녀를 두고,
다 예수님을 잘 믿는 자녀들로 결혼시키고 목사 아들과 사위까지 두시고,
세 개의 암을 수술하여 극복(克服)하고 88세까지 팔팔하게 총명(聰明)한 정신력으로
삶을 영위하신 것은 당신의 주님을 향한
큰 신앙과 강인한 정신력이 대단하시다는 것을 증명(證明)하신 기억입니다.
다섯 번째로 가장 아름다운 기억(記憶)은,
하나님께 드린 예배(禮拜)를 귀중하게 여기셔서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하체(下體)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시는 지경(地鏡)까지 이르러서도
몸을 이리저리 앞뒤 좌우로 뒤척이시듯이 돌려가며
사모님과 따님들의 힘을 빌어 가시며, 양복(洋服)에 넥타이까지 메시고
휠체어를 타시고, 담임목사의 품에 안겨서
주일(主日)이면 예배의 장소에 나오셔서
하나님께 예배를 정성(精誠)스럽게 드린 일은 정말 잊지 못할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아름다운기억(記憶)입니다.
이제 졸필(拙筆) 하고자 합니다.
고 김성춘 목사님, 이 세상보다 천배나
더 좋은 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천국에서 같이 만납시다. 할렐루야 아멘 !
- 2022년 1월 22일 토요일 하관예배시에 낭독함 조도중앙교회 이경만 담임목사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