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앞 무릎 꿇은 여성들.. 탈레반도 당황”
지난달 8월 18일 저녁 뉴스를 보신 분들은 세기의 기이한 장면을 보셨을것입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기 직전, 해외로 도망치려고 전용기에 급히 오르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모습과 검은색 가방 2개를 든 수행원의 행동을
설명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탄식섞인 한숨을 지으셨을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무책임할 수 있을까? 오늘날에 어떻게 저런 위인(僞人)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선택했을까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생각있는 분들은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한반도와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다시 한달이 조금 덜 된 9월 14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한 기사를 보며
인생살이의 기본 교훈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됩니다.
“빵집 앞 무릎 꿇은 여성들.. 탈레반도 당황”식량난 이 정도일줄“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가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 보도한 기사를 읽으며
아픔과 실소가 뒤섞이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이대로라면 아프간에서 올 겨울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수백만에 이를 것이라는 국제 구호단체의 경고를 보도하며 아프간의
극심한 식량난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식량난은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부터 심각했었답니다.
오랜 전쟁과 가뭄으로 농작물 40%가량이 피해를 입었고, 밀 가격은 25%이상 치솟았습니다.
그동안은 부족한 식량을 국제 원조로 채웠지만 탈레반 점령 후 그마저 끊겼기에
비축해 둔 식량마저 곧 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합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녀(사진 중앙일보 기사)
미국이 발을 빼자 아프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그로 인해 일자리도 사라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나아가 해외 구호단체의 지원 중단은 의료서비스까지 멈춰 세웠다 하니,
결국 그 폐혜는 고스란히 사회적 취약 계층이 제일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를 합니다.
과거 역사를 통하여 전쟁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제일 큰 피해를 입는 부류는 역시 서민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성과 노약자 그리고 어린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함을 지나간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경우 기사를 보며 실소하게 되는 것은“아프간 전 정부가 이렇게 쉽게 정권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국가를 넘길줄 몰랐다. 우리도 완전히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위기를 관리하려고 노력중”이라는 지비훌라 마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의 말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빵집 앞 무릎 꿇은 여성들.. 탈레반도 당황”식량난 이 정도일줄“
중앙일보 21년 9월14일자 이민정 기자의 기사 일부 인용)
탈레반의 침공으로 해외로 도망가는 대통령이나 대책과 준비없이 아프간을 점령한
탈레반이나 무책임하기는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결국 무책임한 그들로 인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발생했고,
그들은 생존이라는 치열한 전쟁터로 내몰리는 극한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프간 사태는 분단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한가지 교훈을 던져줍니다.
자주(自主), 자립(自立), 자치(自治)의 기반에 서지 않는 개인이나 국가의 신세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이며, 타인이나 타국이 우리를 보호해 줄것이라는 생각은
환상과 망상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자유는 권리 주장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자유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력을 가질 때만이 주어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애굽에서 노예살이 하던 것을
기억하라 말씀합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신명기 8:14)
아픈 과거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조상들이 겪었던
그 아픔과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