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한국SGI*불교회
 
 
 
카페 게시글
자유(自由)게시판 마이웨이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다양성의 시대에 십여시와의 관계는?
흐름 추천 0 조회 216 10.09.11 23:00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0.09.11 23:29

    첫댓글 마음으로 좋은글 읽고 갑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0.09.12 14:38

    정중한 반론은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저 의식 하지 마시고 반론글 쓰십시오....

  • 작성자 10.09.12 16:49

    맞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각오하고 올린것 아닐까요. 그러나 감정은 다 좋은 데 부탁이 있다면 저는 좀 색다릅니다. 급진적이지 말것, 천편일률적이지 않을 것 등입니다. 그리고 무슨말인지 알수 있게 올려주시면 저도 그렇게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 10.09.12 22:45

    “인을 중심으로 동일구조만을 강조하는, 시대에 뒤쳐진 저급한 코드....” 이게 창가학회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문 문제도, 한국 불교회 문제도 근본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게 개선되지 않으면 창가학회는 보편적인 세계종교가 될 수도 없고, 니치렌 불법을 신봉하는 단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 10.09.12 23:03

    조금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고 해서 다른 회원들이 안부를 걱정해야 하는 종교는 보편적인 종교라고 할 수는 없지요.
    옛날에 일본에서는 창가학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크레믈린’이라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 작성자 10.09.13 00:25

    토라님! 제글에 댓글을 올려주셨으니까 저도 토라님께 답을 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제가 쓰는 글들은 저는 정말 32년이라는 세월을 죽기 살기로 수행을 하여 온 사람입니다. 입신초기 3달동안은 대학휴학중이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매일 불교교리에 매달리다 시피하여 불교의 근본원리를 깨치고나서 거의 수도승 처럼 수행을 해왔습니다. 토라님이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냥 학회원(폄하하는 것이 아님 오해하지 마시기 바람)들 처럼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수도승들이 도닦는 것처럼 아마도 장년부들중애서 저만큼 제목을 많이 부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보고 활동도 저처럼 한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 작성자 10.09.13 00:37

    그리고 사회적위치(중앙일간지 인사동정란에 항상 게재)나 경제적으로나 별로 꿀릴게 없습니다. 동양의 불교선배천재들이 저에게 물려준 불교를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몸으로 실천해보고 그것이 어떻게 생활적으로 맞아떨어지나 그리고 어떻게 정신이 고양되어 가는 지 그리고 마음에서 어떤 깨달음이 어떤 "니르바나"가 어떤 청정함이 오는 지 항상 확인 해오고 있는 사람 입니다. 이 불교철학을 가지고 종교쟁이로써가 아니라 불교수행자로써 저는 좀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삶속에서의 글입니다. 토라님의 댓글에 대하여 초기에는 진진하게 대하다가 어느 순간 토라님이 불교의 초입에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라는

  • 작성자 10.09.13 08:45

    것을 알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 자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 싸이트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오시는 것을 보면 불교에 인연이 많은 분 같으신데 이 불교와 창가학회가 등식관계로써가 아니라 법화경자체를 원리적으로 공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가학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학회만을 바라보는 것에 가려 불교의 깊은 철리를 보지 못하고 "수행"성이 없는 가운데 학회를 보니 서로 이견이 큰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가치적이지도 않고요. 이것은 제가 잘났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제 경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토라님 정도이면 불교수행을 순수히 잘 하실것이라고 보입니다. 아침과 저녁에 근행요전을 펼치고

  • 10.09.15 18:50

    법화경 자체를 원리적으로 공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참 공감.......저 또한 공부를 하고 있고 흐름님 말씀대로 학회만 바라보다 불교의 깊은 철리를 보지 못하고,,

    수행성 없는,,,

    불도"수행" 저포함 회원들 대다수가 그 과정인 수행이라 인식하는 것보다 그 결과인 공덕만 오로지,,저또한 이런 말 하면서 사실,,,수행하는 것 자체가 공덕이라 머리속으로 생각하지만

    내공, 경애라고 해야 되나 여기 댓글 다신분들 경애가 높으신 듯

    공자께서 세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이 까페에는 참고할 만한 스승이 아니라 훌륭한 스승, 선지식인 분들이 많네요,

  • 작성자 10.09.13 01:18

    수천년의 불교역사속에서 선배들이 하였던 대로 한번 독경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독경책의 의미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원래의 뜻과 보다 더 깊은 뜻(문저) 원래 대성인님의 원래의 깊은 뜻은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정평이 나있습니다. 한국의 천태종에서도 대성인님의 해석방법을 끌어다가 쓰고 있습니다. 법화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제까지 주변에서 귀따갑게 들려주던 "남묘호렌게교"를 한번 새로운 시각에서, 관점에서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렇게 하시고나면 분명히 몸에서 무언가 달라지는 게 느껴 질 것입니다. 분명 불교는 "외도"가 아니라 "내도"이기때문에

  • 작성자 10.09.13 01:21

    추상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감하게 되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실감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창가학회만 이런 것이 아니라 불교 3000년의 역사가 다 이래왔습니다. 토라님께서 이것을 해보시고 불교단체인 창가학회를 이야기하면 저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이런 불도수행위에서의 창가학회이야기라면 무엇이든지 서로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인중심의 학회도 언제인가는 법의 혈맥을 쫏아서 바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인프라(infrastructure)가 너무나 아깝고 회원들이 너무나 불쌍 합니다.

  • 10.09.13 17:37

    흐름님께서 종교적으로 30여 년간 수행하고 공부해 온 불교에 대한 깊은 조예(造詣)나, 사회적으로 이루신 위치를 제가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또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런 깊은 지식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이른바 “그냥 학회원이 아닌 그런 사람들”의 견해도 중요하겠지만, 평범한 필부의 입장에서 보는 ‘그냥 그런 사람들’의 견해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얘기 한 것입니다.

  • 10.09.13 17:37

    흐름님께서 30여 년간 학회내에서 수도승처럼 수행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학회 밖에서 수십년간 학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수행성이 없이 학회를 본다”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저는 신앙적인 체험으로 학회나 불교의 교리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 10.09.13 17:38

    그것은 종교연구가가 모든 종교를 믿어보고 신앙적인 체험을 해야만 종교를 연구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종교적인 체험을 온몸으로 느껴서 알려는 태도와 그런 사람들 또는 그런 조직에 대해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살피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요.

  • 10.09.13 17:38

    따라서 몸으로 실감하지 않고 얘기한다고 해서 가치가 없고 추상성에 그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문가(거대담론)의 말도 중요하지만, 비전문가(소담론)의 말도 흘려 듣지 않는 것이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10.09.13 21:01

    <인중심의 학회도 언제인가는 법의 혈맥을 쫏아서 바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인프라(infrastructure)가 너무나 아깝고 회원들이 너무나 불쌍 합니다>>>

    글쎄요. 그렇게 되어야 겠지만, 저는 회의적인 생각이 강합니다. 지금의 학회는 회원들을 위한 인프라 보다는 ‘인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인프라가 훨씬 더 견고하고, 점점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10.09.13 22:11

    세계불교사에 있어서 인중심체제가 오래 간적을 듯도 보도 못했습니다. 이 정상적이지 못한 도에 지나친 시스템은 언젠가는 법중심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 10.09.14 02:13

    먼저 흐름님께 감사 드립니다. 시간도 흘러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긴 답변의 글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습니다.
    물고기가 자신이 살아가기 알맞은 수온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듯 저도 그랬어야 하거늘 뭐한말로 번지수 잘못 짚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불쑥 던져는 놓고 답변에 답을 못하는 어리석음에 이틀밤을 보낸 뒤에야 용기를 내어 드릴수 있는 말이
    "답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 와 한편으론 "어려워서 혼이 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벌써 세번째 넘게 읽고 있는중인데 오리무중 이 솔직한 흐름님의 답변 에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군요?

  • 10.09.14 02:48

    두고 두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중 "거대담론 소담론 "생소했지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소담론들은 10여년전의 거대담론의 모습을 마음속에서 지울 것 왜냐 하면 “변화”하는 것이니까! )이 말씀도!
    大와 小는 항상 존재 하겠지만 담론에 입각해서는 대.소를 배제시킨 담론이 가치있겠군요?
    가장 최소의 집단 이랄수 있는 저의 가정사 애기 간단히 할께요!
    아내와 아들딸 며느리 손 7~8명중 제가 거대담론 이되고 각자가 소담론으로 볼때 다양성 시대의 개별은 흐름님께서 말씀하신 일원성에 복종내지는 따라만 하는 세간은 아니다고 보면 맞는 말이되나요? 개인적으로 동의 합니다.

  • 작성자 10.09.14 02:59

    그렇습니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사실 제글은 쉽게 쓸려고 부던히 애썻지만 철학이 가미되어서 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것을 심도있게 건드리려면 어쩔수 없이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이웨이님께서 힘들게 읽으셨지만 정확히 이해를 하셨다니 매우 반갑습니다. 언제 기회있을때 님께서 질문하신 남묘호렌게교는 발견인가 발명인가 재발견인 가도 다른 것과 함께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10.09.14 03:45

    스모그 품어댈려구 밖에나가 바람좀 쐬고 왔는데 !!!
    흐름님 다녀가셨군요! 에~구 바쁘실 터인데 또... 네 ! 감사드리며 천천히 기다겠습니다 .

  • 10.09.14 17:51

    흐름님 글 무척 잘 읽었습니다. 깊이 공감하고 많이 와 닿는데 뭔가 전 한가지...글쎄 일부러 표현하시지 않으셨는지는 몰라도 그 다양성 개개의 다양성을 언급하시면서 그 다양성이 다양성으로서 본질인 동일성과 대등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생명속의 불계의 발견과 현현이 아니겠습니까...급히 흐름님의 글을 읽고 일순 드는 생각임더 혹시 결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시고 담에 시간있을때 깊이 숙독하고 이글 정정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경솔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흐름님의 글에 너무도 공감하기에 그 말씀을 꼭 전하고자 한 것이 본지인데 그에 저 개인적으로 좀 아ㅜ쉬운 부분이 생각나서...암튼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0.09.14 20:24

    맞습니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그부분이 현시대의 흐름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제법실상이 맞나는 부분입니다. 포스트모더님즘 관점에서 보면 거대담론인 동일성과 소담론인 개별성이 서로 동등하게 협력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제국주의 관점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인류가 이것을 깨닫기 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희생이 있었지만 불법은 3000년전에 이미 직관한 것입니다. 전체인 나의 몸도 실상이고 내몸속의 하나의 세포도 실상이다라고 그 석가불의 천재적인 직관으로 그 대등성을 알게된 것입니다. 개별도 실상이고 본질도 실상이라고 개별도 불성이 있고 전체도 불성이 있다는 것 역할만 달랐지 모두가 대등 함.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