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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4부: 참된 안식을 경험해야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
첫째 천사의 복음 시작 부분에 “영원한 복음”이 언급되었듯이, 셋째 천사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세 천사의 복음을 연구할 때에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관점이 있다. 그것은 짐승의 표만 강조하다가 놓치기 쉬운 관점으로서, 셋째 천사의 복음에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과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곧 그 두 무리의 차이와 특징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 구원의 관건이 달린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연구해 보자.
1)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의 특징: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밤낮 쉼을 얻지 못”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왜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이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가?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4:9~11).
성경은 악인들,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을 쉼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신 28:66, 67).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잠 28:1).
왜 악인은 밤낮 쉼이 없는가? 쉼이 없다는 말은 영적인 의미로 마음과 영혼에 평안함이 없다는 것이다. 쉼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왜 그런가? 교회를 오래 다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즉 새 언약의 경험인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안식이 없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굴복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과 법도대로 살고 싶은 소망과 하늘의 평안이 충만하게 차고 넘친다. 그러나 거듭남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포기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거나 굴복한 적이 없는 사람,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늘 자아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욕심을 좇아 살기 때문에 만족이 없고 평안함이 없다. 아무리 가져도 충분함이 없고, 아무리 보아도 마음이 차지 않고, 불행하고 불안하며, 평안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물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의 최후 형벌, 즉 천년기 이후에 있을 악인을 태울 형벌의 불에 들어갈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의미로 짐승의 표를 받는 악인의 마음 상태는 쉼과 안식의 경험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신앙할 때에 곧잘 율법주의, 곧 자신의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에 빠지게 된다.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 중에서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욕망,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자신의 평판과 인정을 교회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욕망, 못 누린 명예를 더 얻고 싶어하는 욕망, 인간의 칭찬을 갈구하는 욕망을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감춘 채,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을 펼치며 다른 신자들에게 시험거리가 되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다.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아무리 교회에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처해있다 해도,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욕망과 품성이 하나님 안에서 굴복되고 순화되지 않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고 이기적인 기복신앙을 추구하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속에서 신앙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사람은 결국 앞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 밤낮 쉼이 없는 악인의 삶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 짐승의 표는 인간이 만든 표와 제도이다
진리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좁은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래서 인간의 인정과 인간적인 평판과 인간적인 제도와 관계를 늘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짐승의 표를 받기가 매우 쉽다. 짐승의 표는 인간이 만든 표이며 인간이 만든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이 언급되면서, 첫째 천사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왜 제일 처음에 외치겠는가?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 올바로 경배하는 일이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는 것만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니엘서에 나타난 예언을 보면, 사단은 작은 뿔의 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경하는 일을 감행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단 7:25).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명 대신 인간이 만든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인간의 제도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경에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이 세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이 언급하지 않은 주일 중 첫째 날을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로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복 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을 지키며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의 표징이 되도록 고안하신(겔 20:20)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처럼 안식일 날짜만 지키는 것은 소용이 없다. 참된 안식의 경험, 거룩함의 경험을 하는 사람이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참고로, 천주교의 교리문답에는 다음의 사항이 있다.
< 가톨릭교의 교리문답서 >
*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 대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 대답: “우리는 천주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에서 (A. D. 336)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Peter Geiermann,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1957 ed.], p. 50)
교황권은 공공연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안식일을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금 현재 진실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하나님의 안식일로 알고 지키고 있다. 지금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계명이 온전히 회복되어야 할 때가 이르면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그것에게 경배하라는 강요와 핍박이 이를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편, 아니면 사단의 편 중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을 지키는 일이 강요될 때가 이르면, 그것은 짐승의 표가 될 것이며, 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든 날인 일요일을 지킬 것을 강요당하고, 하나님의 표인 안식일을 부인하라는 강압적인 조치가 취해질 때, 일요일에 쉬라는 강제령이 내릴 때, 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이 세운 안식일을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인과 표가 들어있는 넷째 계명이 가리키는 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제도가 만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될 것이다.
3) 참된 안식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인과 안식의 경험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밤낮 쉬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은 참된 안식일을 지킬 뿐만 아니라, 안식의 경험 속에서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나타내어 짐승의 표 핍박 속에서도 승리하고 환난을 이기며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 때에 구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참된 안식의 경험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4장에서 우리는 그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특별한 안식의 경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9, 10).
이 말씀은 날짜만의 안식일이 아닌, 참된 안식의 경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져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1.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4장 앞부분에 보면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먼저 언급되어 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 4:1, 2).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참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첫째로 믿음이 들음과 화합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로 순종치 않았다는 것(6절)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 진리의 순수한 복음이 요구하는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 곧 영혼을 구원하는 데 이르게 하는 믿음, 행함이 따르는 믿음, 주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 그래서 생애에 죄를 다스리는 증거가 나타나는 믿음을 가리킨다. 또한,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머리로는 믿지만, 실생활에서 변화가 없고 진리의 복음의 능력이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식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설사 이들이 성경이 말하는 참 안식일의 날짜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 없다.
2. 참된 안식, 쉼의 경험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10).
참된 안식을 경험하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는 사람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쉬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잘 운행되도록 모든 자연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순환되고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이 잘 운행되는데 필요한 모든 법칙과 모든 준비를 다 이루어놓으시고 쉬신 것이다. 구속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 놓으셨다. 인간이 그 바른 복음의 진리를 듣고 그것에 그의 믿음을 합하기만 하면 넉넉히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편을 다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순종할 힘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복음에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는데,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자기 일을 쉰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인간의 일을 쉰다. 인간의 일, 즉 육체의 일은 쉰다는 말이다. 육체의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 20).
육체의 일은 이와 같은 악한 일들임을 성경은 열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자기 일, 인간의 일, 즉 육체의 일을 쉰다는 것은 앞의 성경 절에 열거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 즉 죄를 그치는 것을 말한다. 마음과 의도 속에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직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육신이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그래서 타고난 성향과 유전자 때문에 죄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이 자꾸 나타나 실수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의도적인 고범죄를 짓는다든가, 육체의 일, 죄의 일을 하기를 즐거워하며 따르는 일은 우리 생애에서 근절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성령의 임재 속에 살므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사람,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기를 너무나 소원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주 습관이 돼버린 사람,
세상에 대한 욕심도, 죄지을 욕망도 없이 생애의 방향이 하나님을 위해서 완전히 바뀐 사람의 마음속에는 없어지지 않는 하늘의 평안함이 깃들며, 그 사람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이 참된 안식의 경험이며,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세 명의 천사를 통해 복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세 천사가 전하는 현대진리인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참된 안식일을 지키며,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속히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온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환하게 비치는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 예언된 영광스러운 성령의 운동과 바벨론을 향한 큰 소리 외침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외치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자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이 일에 함께 하게 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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