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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멀리는 가리왕산
봄 그늘 찌푸려도 새들은 지저귀고 春陰欲雨鳥相語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 홀로 슬퍼하네 老樹無情風自哀
만사는 한 번 웃음거리도 못되나니 萬事不堪供一笑
청산서 세상 보니 허공에 뜬 먼지일세 靑山閱世只浮埃
―― 읍취헌 박은(挹翠軒 朴誾, 1479~1504), 「복령사에서(福靈寺)」에서
▶ 산행일시 : 2019. 4. 13.(토), 맑음, 미세먼지 보통
▶ 산행인원 : 13명
▶ 산행시간 : 8시간 49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3.6㎞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4 -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
08 : 47 -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 만두말 근처, 산행시작
09 : 35 - 지능선 진입
09 : 49 - 682고지, 첫 휴식
10 : 45 - 등용봉(△1,044.8m)
11 : 40 - 덫재, 묵은 임도
12 : 30 ~ 12 : 34 - 외솔배기, 점심
13 : 22 - 830m봉, 구생동 근처
14 : 26 - 암릉, 1,162.7m봉
14 : 54 - 거문산(巨文山, 1,173.1m)
15 : 24 - 1,070m봉
15 : 55 - 금당산(錦塘산, △1,174.1m)
16 : 50 - 너덜 골짜기 진입
17 : 04 - 주등로 진입
17 : 23 - 금당동
17 : 36 - 평창군 봉평면 유포리 등매지, 버들개마을 체험학교, 산행종료
17 : 47 ~ 19 : 20 - 장평, 목욕, 저녁
20 : 07 - 제2영동고속도로 양평휴게소
21 : 05 -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일부 해산
1-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부 산행
1-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부 산행
2. 산행 고도표
▶ 등용봉(△1,044.8m)
평창강을 따라 조금 더 간 만두말에서 산행을 시작했더라면 나았을 뻔했다. 우리 차로는 들
어가기 어려운 농로가 나오고 차에서 내려 농로를 걷다가 수확을 마친 파슬리밭을 만난다.
상고대 님이 당근인가 하고 버려진 한 뿌리를 뽑아보았는데 당근이 아닌 실뿌리다. 그 정체
가 무얼까 여러 일행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해피 님이 대뜸 파세리(파슬리 parsley가 일본말
로 파세리 パセリ이다)라고 한다. 수대로 냄새를 맡아보니 그렇다. 노지 재배하는 파슬리를
여기에서 처음 본다.
파슬리밭 오른쪽의 가파른 생사면을 덮은 가시덤불을 헤친다. 이런 식의 산행시작은 일상이
다. 적진의 고지를 점령이라도 하려는 듯 납작 엎드려 저마다 신속히 오른다. 다만, 산개한
것은 혹시 앞사람이 건드릴지도 모를 낙석에 다칠 것을 염려해서다. 숨 가쁘게 한 피치 올라
공제선을 잡았는가 했는데 고랭지밭이 나오고 그 주위로 짐승들의 내습을 막기 위해 그물과
전선을 길게 둘렀다.
그물을 따라 얼마쯤 가자, 얼래! 고랭지밭과 그물은 아래쪽으로 방향을 튼다. 냅다 그물을 넘
고 밭을 가로질러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까도 했으나, 개가 짖어대고 그 주인인 장년 남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얌전하게 뚝 떨어져 농로로 내린다. 이곳 주민인 장년 남자는 그 무슨
생고생을 하시느냐며 등로는 저기라고 건너편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농로는 이내 끝나고 아울러 인적도 끊긴다. 산골짜기 너덜을 간다. 계류를 건너가고 건너온
다. 무리지은 산괭이눈을 지난다. 일제히 목을 빼고 계류 쪽으로 얼굴을 향한 그들의 모습이
마치 계류가 연주하는 ‘봄의 교향악’을 경청하는 듯하다. 이런 곳에도 깡통이며 페트병, 소주
병이며 생활쓰레기가 난잡하게 버려졌다. 만두말 마을 근처다. 다시 가파른 생사면을 올려치
고 도로에 올라선다. 만두말에서 소개동으로 가는 도로다. 헛웃음이 나온다. 여태 우리의 애
썼던 발걸음이 도로(徒勞)다.
이제 산을 간다. 새삼 지도를 들여다본다. 줄곧 대찬 오르막이다. 현란하다. 사면을 고도 120
m 오르면 능선이고 이어 고도 450m를 더 오르면 1부 산행의 정점인 △1,044.8m봉이다. 더
덕대형 펼쳐 오른다. 대기는 차다. 그러나 가파른 발걸음에는 금세 땀이 줄줄 밴다. 속에 입
은 셔츠 벗고도 팔 걷는다. 능선에 올라서니 여기저기서 진달래가 방싯방싯 반긴다. 인적은
흐릿하다.
가파름이 잠시 주춤한 틈에 첫 휴식한다. 바야흐로 냉탁주 입산주가 입맛 나는 계절이다. 초
장끗발 개끗발이다. 초장에 잠시 코끝이 맵도록 향기롭던 덕순이 분내를 맡은 지 오래다. 등
로 주변의 사면에는 풀숲이 드물뿐더러 모처럼 오지산행에 강림하신 더산 님이 조용하니 더
말할 것이 없다. 하여 길고 가파른 오르막 발걸음이 더욱 팍팍하다.
△1,044.8m봉이 시야에 잡히고 그 전위봉인 1,022m봉을 인적 쫓아 왼쪽 사면의 우회 길로
돌아 넘으려는데 직등한 상고대 님이 조망이 아주 좋다며 어서 올라오시라 유혹한다. 아무렴
직등한다. 1,022m봉 정상은 조망이 수렴에 가렸지만 동쪽 사면을 잡목 헤치고 약간 내려 절
벽에 바짝 다가가서 수렴을 걷으면 대화 건너로 웅장무비한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3. 제2영동고속도로 차창 밖의 추읍산, 오늘 미세먼지는 보통이다
4. 바위틈에서 계류가 연주하는 ‘봄의 교향악’을 듣는 산괭이눈
5. 남병산
6. 등용봉 정상에서
7. 왼쪽은 잠두산, 가운데는 백석산
8. 백석산 연릉
9. 대미산
10. 등용봉 내리는 도중 조망처에서
남병산에서 왼쪽으로 청옥산, 육백마지기, 벽파령, 중왕산, 가리왕산, 백석산, 잠두산, 모릿
재, 백적산으로 이어지는 장릉을 한 눈에 다 볼 수가 없다. 단박에 TV 방송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흔히 보던 만년설이 덮인 천산산맥을 떠올리게 한다. 1,022m봉을 잠깐 내
렸다가 느긋이 한 피치 오르면 △1,044.8m봉 정상이다.
‘등용봉’이라는 세운 지 얼마 안 되는 정상 표지석과 오래된 삼각점이 있다. 304 재설, 77.8
건설부. 이 봉우리가 근년에 불쑥 솟은 것이 아닐 진데 그간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하니 절구봉을 개명하였다. 14년 전 봄에 왔었다. 백적산을 올라 괴밭산, 금당산, 거문
산, 절구봉을 넘어 대화 배골로 진행했었다. 도상 24km. 오늘 일행 중 그때 함께 갔던 이는
대간거사 님과 나뿐이다. 망각은 때론 좋은 일이다. 이렇듯 새로운 산처럼 가니.
등용봉 정상이 빼어난 경점이다. 방금 전에 1,022m봉에서 수렴 걷어 조망하려고 잡목 헤치
며 사면을 내려간 게 괜한 일이었다. 등용봉을 북진하여 내리는 중에도 잠두산 연릉은 눈부
신 설경이다. 이곳 북사면도 눈길이다. 능선에 바람이 쓸어 모아놓은 눈은 제법 깊다.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고 눈길 앞사람의 발자국만을 쫓은 게 잘못이다. 1,007.3m봉을 넘고 그 앞의
첨봉에 다가가려는데 눈길이 깨끗하다.
뒤돌아간다. 선두는 1,007.3m봉에서 서진하여 내렸다. 한 차례 뚝 떨어지고 왼쪽으로 지능
선이 나오기에 또 길을 헤맨다. 그쪽의 응답하는 연호를 쫓아갔더니 후미보다 먼저 향상 님
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수적 따라 엉뚱하게 소개동으로 내려갈 뻔하다 뒤돌아 오르고 선두
의 발자취를 찾는다. 뜻밖에 헛걸음질 연속하여 입은 데미지가 크다.
상개수로 내리는 안부께에서 학수고대했던 산중 진객을 만난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노루
귀다. 떼로 길을 헤맨 후미 6명 저마다 엎드려 카메라 앵글 들이대며 눈맞춤한다. 심술부리
는 봄바람을 내 숨을 멈추면서 달랜다. 안부는 덫재다. 오른쪽 상개수 가는 길은 임도이자 고
랭지밭 농로다. 농로 옆 산비탈도 화원이다. 처녀치마, 현호색 등등이 우리 바쁜 발걸음을 붙
든다.
농로 따라 산굽이 돌고 돌며 외솔배기로 내린다. 명품인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500년,
보호수 지정일자 1982.11.13. 외솔배기라는 마을 이름이 이 소나무에서 비롯되었다. ‘~배
기’는 ‘~꼭대기’ 또는 ‘몹시 비탈진 곳’을 뜻한다. 한편 개수리(介水里)는 외솔배기 밑 갯가
(개울가)에 소(沼)가 있다 하여 개소라 불리다 변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소나무 그늘에서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소나무가 워낙 고고한 기품을 풍기다
보니 그 기상에 전염되어 우리의 식사와 음주자세가 반듯하고 언행 또한 전례 없이 점잖다.
11. 왼쪽은 백적산, 가운데는 모릿재, 오른쪽은 잠두산
12. 올괴불나무
13. 노루귀
14. 노루귀
15. 노루귀
16. 노루귀
17. 노루귀
18. 노루귀
19. 노루귀
▶ 거문산(巨文山, 1,173.1m)
거문산 남릉을 가기는 처음이다. 외솔배기에서 개울 옆 대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가 Y자 계곡
가운데에서 뻗어 오른 능선을 겨냥한다. 개울을 징검다리 만들어 건너고 덤불숲 뚫어 생사면
에 달라붙는다. 되게 가파르다. 앞사람이 내는 발자국계단을 오른다. 어렵사리 능선에 올라
서도 가파름은 계속된다. 라면 곁들인 점심으로 한껏 부른 배라 금방 숨이 차고 옆구리가 결
린다.
이때는 완연한 봄날이다. 이마 구슬땀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발걸음으로 갈지자 그린
다. 얼추 올라 하늘 가린 숲속을 벗어나는 했더니 개활지가 나온다. 옛날에 화전으로 일구었
던 구생동 묵밭이다. 쑥대밭으로 변했다. 곧바로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고 넙데데한 화전
터 지나서 엷은 능선을 추려 오르는 중에 앞장 선 모닥불 님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한다. 커
다란 독사를 밟을 뻔했다.
오지산행의 악우애는 어디서나 각별하다. 이런 독사를 보아도 소싯적에 한때 이를 상식했다
는 수담 님을 생각한다. 그의 무용담이 또 듣고 싶어진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잔디가
자라지 않는 벌건 흙투성이인 무덤이 나오고 그래도 명당이라 둘러앉아 휴식한다. 거문산 남
릉이 점차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돌길은 수적이 끊기고 바윗길로 이어지더니 가파른
암릉으로 발전한다. 직등하여 짜릿한 손맛 본다.
수직절벽과 맞닥뜨린다. 이 암봉의 반대편은 혹시 오도 가도 못하는 절벽이 아닐까 불안하
다. 대간거사 님이 선등하고 뒤따라 오른다. 한 피치 오른 대간거사 님이 10m 슬링을 내렸으
나 외줄이라서인지 힘을 주면 낭창거려 그만두고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고 오른다. 수직절
벽 위에 올라서고 험로는 끝났다. 아울러 오늘 산행 최고의 조망처를 만난다.
백덕산에서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이며 그 앞 승두봉에서 청태산으로 이어지는 장릉이
장쾌하다. 큰 기복이 없이 1,162.7m봉에 올라 일행을 점호한다. 모두 무사하다. 내가 남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나만 무사하면 다 무사하리라. 거문산까지 0.8km. 비교적 평탄한 능
선길이다. 북쪽 내리막은 완만한 슬로프다. 줄달음하다 발바닥 간지럽게 눈길 지친다.
고대동 법장사에서 오는 잘난 길과 만나고 사팔뜨기 직전으로 사면 쓸던 눈길을 거둔다. 거
문산 정상. 예나 변함없이 키 큰 나무로 둘러싸여 아무런 조망이 없다. 탁주 한 사발로 얼른
목 추기고 금당산을 향한다.
20. 거문산 남릉의 1,162.7m봉
21. 처녀치마, 상개수 임도 주변에서
22. 현호색
23. 외솔배기의 명품 소나무
24. 앞 왼쪽은 등용봉 후위봉, 가운데는 승두봉
25. 멀리는 백덕산, 그 앞은 덕수산
26. 멀리는 백덕산, 그 앞 왼쪽부터 승두봉, 장미산, 덕수산
27. 멀리 가운데는 대미산, 청태산(오른쪽)
▶ 금당산(錦塘山, △1,174.1m)
“길엔 언제나 새로움이 있다. 아무리 오래된 길도 사실은 새로운 길이다. 달 따라 계절 따라
변하며 그 안의 흙 한 줌, 풀 한 포기, 바람 한 줄기까지 어제와 오늘은 다르기 때문이다. 묵
은 것 같되 새롭고, 아는 것 같되 모르는 것이 길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길을 떠난다는 건
그러므로 끊임없이 새 것을 찾아 배우려는 여정일 수밖에 없다.”(민병욱의 『들꽃 길 달빛에
젖어』에서)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말이다. 금당산 가는 길이 낯이 익을 만도 한데 여전히 새롭다. 이랬
던가 싶은 무딘 나이프 릿지 닮은 암릉을 지난다. 빙설이 덮여 있어 조심스럽다. 금당산 가는
이 길이 나뭇가지 수렴에 가렸어도 사실 멋진 능선길이다. 오른쪽은 백적산에서 남병산까지
1,000m가 넘는 준봉들이 만년설인 듯 이고 있고, 왼쪽 역시 청태산에서 승두봉까지 그러하
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기웃거리며 간다.
암릉을 벗어나면 부드러운 능선이다. 1,096.0m봉 오르기 전 암봉인 1,070m은 듬직한 금당
산을 바라볼 수 있고 가리왕산과 백덕산을 아우르는 경점이다. 1,096.0m봉은 약간 가파르
다. 우회로가 없어 숨차게 꼬박 올라야 한다. 오늘은 상고대 님이 고맙게도 나를 살린다. 이
런 날이 다 있다. 연일 격무에 시달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말수가
적어지고 자청하여 후미를 맡는다.
야트막한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났다. 직진은 금당산 0.4km이다. 그 절반은 완만한 사면을
누비며 오르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빈눈 빈손이다. 헬기장 지나고 곧 너른 공터의 금당산 정
상이다. 아담한 정상 표지석 옆에 2등 삼각점이 있다. 봉평 27, 1989 복구. 사방 조망은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이제는 1시간 30분 남짓한 하산이라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우리는 금당산을 비틀어 내린다. 상고대 님은 해마 님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주등로 따라 금
당골로 내리고,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다수는 백암동 가는 잘난 길로 들어 몇 미터 가다 서릉
을 잡는다. 절벽이 수시로 출몰하여 정교한 독도가 요구되는 하산길이다. 절벽이 나오면 여
기저기 기웃거려 비교계량하고 그중 완만한 사면을 더듬어 살금살금 트래버스 한다.
970고지에 이르러서는 아무래도 능선마루를 계속 유지가 어렵다. 오른쪽 수직사면을 오금저
리며 트래버스 하느니 아예 내린다.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너덜지대를 만나고 곧장 골로 간
다. 인적이 없는 이끼 낀 너덜이 계속된다. 계류 물소리가 들리고 금당골이다. 얼마 안 가 계
류 건너 금당산 오르는 주등로와 만나고 포말 이는 층층 와폭을 들여다보며 꽃길을 간다.
금당동 길옆 산자락 비탈진 무덤가에서 할미꽃을 본다. 망자인 부부가 환생한 듯 두 포기 꽃
송이가 다소곳이 합장한다. 그림 같은 양풍의 주택을 지나 평창강 강변길을 돌아가면 등매교
가 나오고, 다리 건너 버들개마을 체험학교에 우리 버스가 와 있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
하는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눈다.
28. 멀리 가운데는 태기산, 앞은 금당산
29. 백석산
30. 백석산 연릉
31. 가리왕산
32. 금당산 정상에서
33. 현호색
34. 비탈진 무덤가에 핀 할미꽃
35. 비탈진 무덤가에 핀 할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