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고향 김천에서 밭농사를 시작했다.
꽤 많은 양이라 혼자 하긴 벅차다.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노욕(?)이 발동한다.
심어놓은 작물들이 갑작스러운 더위에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달음에 가고자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행은 누구나 설렌다.
그런데 노년의 여행은 좀 다르다.
제시간에 맞춰서 움직이기가 쉽지만은 않다.
약이나 물 등 챙겨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젊을 때에 비하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집을 나서면 자가용을 이용할 때가 많다. 비용이 좀 들지만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거리는 핸들을 잡기가 망설여진다.
네댓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고향길이다 보니 한 번 갔다 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차를 택했다.
김포 고촌 집에서 서울역까지 김포골드라인과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3,40분 정도 걸린다. 얼마 걸리지 않지만 복잡한 시간대에는 서서 가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한다.
이번에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오후 시간대 KTX 차표를 예매했다.
중간에 점심시간이 끼여있는 지라 식사가 애매하다.
이때 서울역에서 파는 김밥집을 늘 이용한다.
생수 한 통에 꼬마김밥을 사서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먹는 맛이 너무 좋다.
가끔 비둘기가 찾아와서 같이 먹자고 한다.
한쪽을 곁에 놓아두면 쏜살같이 날아와 챙겨간다.
가끔 서열다툼을 하는지 자기네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KTX를 타면 빠르기도 하지만 실내 소음이나 울림이 적어 책을 읽기가 좋다.
이번에 정추위(대만의 언어학자)가 쓴
[아주 느린 작별]을 의미 있게 읽었다. 수학교수인 남편 푸보가 치매에 걸려 돌보는 얘기이다.
암보다 무섭다는 치매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남의 일 같지 않다.
고향 집에 도착하자마자 열흘 전에 심었던 고구마밭을 향했다.
처음에 심고 난 후 3~4일간 물을 정성껏 주었는데도 가뭄 탓에 죽은 것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김천시장에 나가 고구마순을 사고 간 김에 모자란 호스도 장만했다.
빈 공간에 심을 상추와 쑥갓을 사서 감나무 옆에 심었다.
고구마는 웬만한 가뭄에도 잘 견디고 일단 뿌리를 내리면 끝까지 열매를 맺는 강인한 식물이다.
그래서 좋아한다.
잎이 말라 고사한 자리에 싱싱한 고구마순을 정성스레 꽂아 심는다.
"이번에는 잘 살아다오"라는 부탁과 함께.
물도 듬뿍 주었다.
사이사이 비집고 나오는 잡풀도 미리 뽑았다.
가생이에 심은 감나무도 잘 자라고 있다.
역시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 같아도 하늘이 같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오늘 새벽부터 단비가 내린다.
때아닌 폭서로 인해 작물도 사람도 견디기 힘들었다.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빗소리가 너무 좋다.
적당한 기온이 농막에서 보내는 여유를 알차게 한다.
일본어 공부, 독서, 오카리나와 기타 그리고 색소폰 연주가 곁들여진다.
아울러 요즘 내가 좋아하는 민요와 장구가 기다리고 있다.
비가 내리니 산천초목이 좋아한다.
농부가 되어보니 나도 너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고향길은 행복이 두 배이다.
이런 기쁨을 안고 오후에 다시 KTX를 타고 또 다른 안식처 고촌으로 떠난다.
그곳에서도 행복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서울역에서 ~KTX를 기다리며
짧은 대기시간을 이용하여 먹는 김밥은 꿀맛이다.
첫댓글 자연과 함께 하는 고향 밭농사를 올해도 즐깁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 많은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은 나이에 비해 무리라고 합니다.
그래도 오기로 다시 시작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숨을 쉬고 얘기하면서 지내니 너무 좋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어린 자녀를 키울 때의 기쁨과 똑같습니다.
풀을 뽑고 물을 듬뿍 주고 싶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려 한결 수고를 덜어주네요.
비를 맞으며 제 세상인양 좋아하는 온갖 식물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업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