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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1장 17-19절 하나님을 알아가는 삷
처음에 남남인 남녀가 만나 사랑의 마음이 생기면 그들은 우선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상대방을 더 잘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함깨 사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곧 결혼을 합니다. 그 행복을 지속시키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부부는 평생을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부부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기만 하고 자기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하여 통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부는 사랑이 결여된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오랫동안 같이 살아도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냥 의무로 일할 뿐입니다. 물론 의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의무 이상의 사랑이 없는 부부는 갈라져 가는 얇은 시냇가의 얼음 같아서 그 위로 시내를 건너려고 하는 자녀들에게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그런 부부에게서 자녀들이 진정한 사랑을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없는 자녀들이 자기들에게 나왔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부모들이 알지 못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해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참으로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 같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이 크고 깊어질수록 그 위에 탱크가 지나가도 깨지지 않는 그런 강하고 든든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진리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심으로 인해 든든한 교회로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교회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성도 역시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이 이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교 계시는 지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자라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자기 생각 정도의 하나님 밖에 모릅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란 존재에서 계속해서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기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육의 사람이지 결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무엇으로 알수 있습니까? 영적인 갈망의 상태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몸이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듯이 살아있는 영혼 만이 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을 압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찌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겠습니까? 이처럼 죽은 영혼 역시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갈망하지 않으며 성령충만을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영혼이 깊이 병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간구하는 것을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 간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으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실 만큼 자신을 사랑하시는 지에 대하여 확신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이 기도하고 간구하는 소리에 사랑으로 귀를 기울이십니다. 들어주시고 응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러분이 방금 읽으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았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모든 인간은 성령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셔야 영혼의 눈이 떠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놀라운 표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가 성령을 자신의 내면에 모시지 않는 한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께서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도록 가르쳐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금은 안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하나님을 조금은 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벌벌 떱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던 귀신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을 무저갱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귀신들의 지식이나 다른 종교인들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영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며 가르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점점 자라갑니다. 그가 처음 거듭났을 때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 정도로 압니다. 자신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자신의 죄를 씻어주시고 죄를 사해주신 사랑의 하나님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을 묵상할 때 성령은 하나님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렇게 성령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순종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1절을 통하여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본 것을 말씀하시고 아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여주셨고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8절에서도 예수님은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이 말씀은 “너희는 너희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행하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들려주시는 것을 들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주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역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수록 하나님을 알아가는 양도 더 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교회를 몸만 다니기 때문에, 그리고 신앙생활을 몸만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그래서 좀처럼 그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셨고,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께 관심이 없이 오직 자기가 바라는 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기에 영적인 진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거듭났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루는 니고데모라고 하는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인 한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대하여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거듭나야만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얼마나 오래 했느냐는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듭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셔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온전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인해 온전해지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서도 떨어져 있고 진리에서도 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배입니다. 둘째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은 단연코 사랑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지만 현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에게 사랑이 있는 지 없는지를 전혀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사랑이 없어도 전혀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만 사랑을 받으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냉냉해졌습니까? 남을 가르지는 선생은 많아도 자기를 사랑으로 내어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만이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배우셨다면 상대방이 잘못한 것만 바로 잡으려고 야단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실례로 여러분들은 다른 성도가 한 주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한 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다른 성도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엇인가 좋은 것이 생겼을 때 성도가 먼저 생각이 나서 가져다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은 다른 성도님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배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다른 성도의 삶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도 하고 기도도 해줍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인들은 전화를 하면 누군가를 헐뜯기 바쁩니다. 사랑을 잃고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그가 진실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인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는 아직도 거듭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기쁨과 섬김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성도 안에는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고, 섬김이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 교회가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하지만 더 정확한 것은 여러분 안에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진리로써 여러분들에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비추십니다. 마치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비춰주시는 말씀은 점과 티가 하나도 없이 깨끗한 거울과 같아서 여러분들의 지극히 작은 죄하나도 정확하게 비춰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성경을 수십 번 수백 번 읽어도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지식만 쌓여갈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여러분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며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 마음을 알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아버지, 그리고 영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면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 안에 감취어진 것을 보고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렸던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자신을 알게 하셨을 때 여러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는 여러분의 마음 눈이 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 전에는 세상 것들이 귀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이 귀하게 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하게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육신의 눈으로만 보던 것이 그의 영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는 한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영적인 상태와 똑같기 때문에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와 연관된 육제적인 것들만 사랑하다가 죽게 될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형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렸을 때 여러분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 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처럼 그들 역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렇게 눈이 열리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왜 여러분들을 구원하셨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왜 구원하셨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인품이 훌륭해서입니까? 아니면 성격이 좋아서입니까? 아니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아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그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보호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피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사는 꿈을 꾸게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주신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도 안에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주시려고 하는 그 기업의 영광말입니다. 여기서 기업의 영광은 개인적인 삶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성도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기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결코 작은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받게 되는 기업의 풍성한 영광을 성경을 읽어가면서 묵상해보십시오. 그러면 다른 성도들에게 대하여 그렇게 무관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생각만 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섬김으로 세워주실 때 그 상이 작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상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도 안에서 주시는 기업의 영광은 엄청난 풍성함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제석교회가 그 눈이 열리길 축복합니다.
넷째는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힘을 작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힘을 매우 작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고 방식을 바꿔주시기 위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믿고 기도하면 이 산더러 들리어 저 바다에 옮기우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믿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너무나 크셔서 그 크심을 표현할 때 광대하시며 위대하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하나님을 믿지 마십시오, 크고 광대하며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 제석교회가 지금 작다고 해서 계속해서 작게만 쓰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작다고 해서 하나님도 작아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께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그 역사하심의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크신지를 알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았고 그리고 그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알기 전에 자신이 깨뜨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친숙한 소아시아만을 전도하려고 했고 교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발걸음의 방향을 바꾸셔서 유럽까지 확대시키셨습니다. 그로인해 유럽이 복음화되었고 그 광대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라는 큰 나라의 길을 타고 복음은 온 셰계를 뒤덮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면서 그의 생각을 깨뜨리시고 그를 세계 복음화의 초석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그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신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되었고 교회들 역시도 그것을 알고 하나님 나라 복음의 대형 차를 타고, 대형 배를 타고, 또 대형 비행기를 타고 온 세계를 정복해나가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은혜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소형이 아니고 대형입니까?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서 그 차와 배와 비행기에 태우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