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 양에게 호통을 쳤다. “이 어린놈아! 내가 마실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어린 양은 자기가 물을 마시던 위치와 늑대가 선 곳을 찬찬히 살펴본 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는 하류에 있는데 어떻게 제가 늑대님이 마실 물을 흐릴 수 있나요?”
늑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쳤다. “네 이놈, 어디서 봤다 했더니, 작년에 날 욕하고 도망갔던 그 녀석이로구나!” 어린 양은 기가 막혔다.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또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잠시 고민 후 외쳤다. “그렇다면 네 형이 날 욕했구나. 그 대가로 널 잡아먹을 테니 원망하지 마라!”
프랑스의 우화 작가 장 드 라퐁텐이 쓴 ‘늑대와 어린 양’의 내용이다. 늑대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폭력을 정당화하려 든다. 어린 양은 논리적으로 대응하여 상대방 말문을 막는다. 하지만 늑대가 한 말이 거짓임을 폭로해도 소용이 없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늑대는 또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어린 양을 위협한다. 이런 식의 말하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개소리가 우화 속에만 있다면, 남의 나라 일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현실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그로테스크하다. 지난 6일 국회 대정부 질문 현장을 떠올려 보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불러놓고 야당 의원들이 호통을 치고, 빈정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째려보았다. 어린 양을 잡아먹을 핑계를 대고 싶은 늑대처럼 안달이 나 있던 그들은 바야흐로 개소리의 향연을 펼친 것이다.
그중 백미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말. “장관은 들기름, 참기름 안 먹고 아주까리기름 먹어요?” 여기서 정청래라는 사람은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아주까리기름을 식용유로 쓴다’고 거짓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뒤이어지는 문답을 보면 분명하다. 당황한 한 장관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라고 되묻자, 정 의원은 다시 한 번 쏘아붙였다. “아주까리기름. 왜 이렇게 깐족대요?” 상대방에 대한 본인의 비호감을 드러내기 위해 얼토당토않은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교과서적 개소리인 셈이다.
민주당 박성준 의원도 그에 질세라 국회의 품격을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왕’ 자 쓴 거 알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 장관이 “나에게 물어볼 일이냐”고 답하자, 마치 준비했다는 듯 박 의원이 하는 말. “그럼 왕세자가 도대체 누구냐? 세자 책봉했다. 그것은 바로 한동훈 장관 아니겠느냐?” 이런 장면을 보며 라퐁텐의 우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작년에 나를 욕했던 양의 동생 아니냐’고 개소리를 하던 늑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으니 말이다.》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2.18. 03:00, 업데이트 2023.02.19. 12:40
개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양해를 먼저 구한다. ‘개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 ‘개소리’는 비속어가 아니다. 컹컹 짖는 그 개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반려견들한테는 좀 미안하다.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인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1986년 논문을 썼다. 제목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짧은 철학적 논고가 책으로 발간된 것이 2005년. 당시 미국 정치권의 언어도 멀쩡한 사람들 속을 어지간히 뒤집었던 듯하다. 책은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제목으로 국내에도 책이 나와 읽히고 있다. ‘개소리’라는 번역은 신의 한 수라 생각한다. 발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게다. 개○○(지면의 품위를 위해 지금부터는 이렇게 표현한다)는 거짓말과 차원이 다르다.
프랭크퍼트의 정의에 따르면 거짓말은 최소한 진실을 의식하는 말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 상대방을 믿게 하려고 속이는 것이 거짓말이다. 개○○는 자기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는 공들여 언어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오는 대로 뱉으면 된다. 거짓말은 들통 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오래된 논문이 지금 우리 정치권에 잘 들어맞는다. 더불어민주당 방식의 정치언어에는 정확히 적용된다. 공연한 ‘헛소리’는 무의미하게 마무리되면 그만이다. 의도적으로 현실 정치에 끌어오면 효용이 엉뚱한 쪽으로 극대화한다. 이것이 정치권 개○○의 심각한 문제다. 민주당에는 견본 사례들이 넘친다.
장경태 의원을 보자. 프랭크퍼트 정의의 가장 생생한 버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공항에 나온 화동의 볼에 입 맞춘 것을 “성적 학대”라 공격했다. 이전 사례를 잠시만 찾아봤어도 팩트가 아님을 알았을 게다.
개○○는 공격 대상의 지위와 발언의 수위가 높을수록 효용이 크다. 이 원리를 당 내부의 무수한 선례들을 통해 학습했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심장병 어린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렸던 것도 그다. 그 일로 검찰에 송치되고서도 비슷한 소동을 또 일으켰다.
사실이 아니든 말든 그는 또 성공했다. 묻지마 지지층의 환호는 더 커졌다. 나도 작심하고 그의 프로필을 챙겨 봤다.
개○○는 덮어 놓고 힘이 세다. 그 효용에 취하면 들고 나야 할 ‘타이밍’에도 둔감해진다.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의혹에 정국이 발칵 뒤집혀도 김민석 의원은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고 두둔했다. 그 자신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전력이 있다. 딴 건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나서지 않아야 상식이다.
586 용퇴론 속에 자숙해도 모자란데 ‘대통령 배우자법’을 만들겠다고도 나섰다. 대통령 부인의 대외 활동을 법으로 묶어 단속하겠다니 대번에 화살은 김정숙 여사에게 쏟아진다. 대통령 전용기는 왜 띄웠는지, 옷값은 왜 국가기밀인지 먼저 따지자는 것이다. 자책골을 넣었다 한들 민주당의 김 의원은 끄떡없다. 누워서 침을 뱉어도 40%의 골수 지지층이 웃어 주고 있으므로.
집권당에는 개○○가 없냐고 따질 수 있다. 왜 없나. 물론 있다. 김재원, 태영호 의원의 막말이 윤리위원회의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그쪽은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고 최소한 자정 장치를 가동하는 시늉은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민주당과 한 묶음 처리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다.
사상이 언어를 부패시키고 언어 또한 사상을 부패시킨다. 조지 오웰의 말이다. 그러니 정치언어의 타락은 시민의식의 타락일 수 있다.
일 년에 서너 번 나와도 놀랐을 개○○가 사흘이 멀다 하고 나온다. 아무 소리나 발화하는 이들도 따로 만나면 의식 수준이 선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콘크리트 지지에 취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하는 사람들. 이제는 민주당에 퍼진 ‘악의 평범성’을 주목해 볼 단계다.
총선이 가까울수록 증상은 심해질 것이다. ‘묻지마 지지’가 있는 한 처방약이 없다. 갑갑할 뿐이다.>서울신문.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출처 : 서울신문. 황수정 칼럼 '개 ㅇㅇ'에 대하여, 민주당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전에도 “개소리”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않은 말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의미는 ‘개가 짖는 소리’가 맞습니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개소리를 하는 자들은 ‘개(犬, dog)’에 가깝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의 뜻을 사전에서 보면 물론 짐승인 ‘개’가 첫째로 나와 있지만 두 번째가 ‘성질이 나쁘고, 행실이 좋지 않은 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 세 번째가 ‘권력자나 부정한 사람의 앞잡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결국 개는 개입니다.
우리나라 좋은땅출판사에서 『개소리란 무엇인가』(김병규 지음)라는 책도 나왔는데, 이 책에서는 정치적 개소리의 네 가지 특징을 동문서답, 책임 전가, 아시타비, 허장성세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문서답은 개소리의 모호성과 기만성을 포괄하면서도 뻔뻔함을 잘 드러내는 것이고, 책임 전가는 개소리에 내포된 기만적 의도를 특징짓는 가장 두드러진 요인이라고 합니다. 아시타비는 자신은 명언으로 생각하지만 남들은 망언으로 여길 만한 개소리를 가리키는 데 적절하고, 허장성세는 호언장담과 호가호위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여기에 딱 맞는 개들이 여럿 떠오르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