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년의 긴 허상
유옹 송창재
오늘도 소년은 학교에 갑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학교에 가기가 싫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매일 만나는 여학생을 보기가 창피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소풍가는 날입니다.
왜 소풍가는 날엔 등교를 해서 출석을 확인 받아야하는지?
그렇게 하자는 엄마도 싫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지도 않을 것을......
어차피 바로 돌아와야 할 건데, 힘들게 가지 않아도 될 걸.... 6년 개근상을 못타면 어때서...
그렇지만 소년은 엄마 등에 업혔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언덕위에서, 힘들어 쉬시는 엄마와 함께 저 멀리 보이는 학교운동장에 출발하기 위해서 모여 있는 친구들을 봅니다.
“엄마, 빨리 집에 가자” 소년은 말끝이 촉촉이 젖어 옵니다.
그렇게 6년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6년 우등상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6년 우등상도 훌륭한 것이지만, 6년 개근상은 더 훌륭한 거야!”
소년은 우쭐했습니다.
중학교 입학시험 둘째 날, 체력장 날입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꼭 체력장에 참석을 해야만, 기본점수라도 받으니 힘이 들어도 빠지면 안 된다.“
턱걸이, 던지기....., 다음 멀리뛰기, 달리기.
소년은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울타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달리기를 구경하는 남의 부모들이 가득합니다.
소년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아득한 꿈속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도 섞였습니다. “나가라, 나가야 한다.”
소년은 울면서, 그 무서운 숲을 헤치며 나아갔습니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가마니길 위를 달리는 아이들 곁으로 가마니도 밟지도 못한 질척이는 길을 걸어서.,
소년의 언 몸은 창피해서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너무 추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선생님, 17번 왔습니다.”
“ 야, 임마! 지금이 몇 번인데....., 돌아 보시더니
“알았다. 싸인만하고 가거라.” 소년은 울면서 나왔습니다.
교문 앞에 엄마와, 선생님과 다른 너무 무서운 엄마, 아빠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정말~ 잘 했다.” 선생님이 번쩍 안아 올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 갔습니다.
한 문제 틀린 전교 차석이었습니다.
수석은 한 문제 틀린 재수생 체력장 만점을 받은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또 3년을 업었고, 그리고 또 3년을 업었습니다.
그러면서 소년과 함께 남자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 아들 공부 잘 한다고, 판,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집 좀 일으켜세워야 한다고...
그리도 흔했던 과외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물어 볼 사람도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싫습니다.
그래도 성적은 항상 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성적이 예전만 못합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지망대학을 법대에서 약대로 바꾸라 하십니다. 고 2입니다.
약대만 나오면 편하고 먹고 살기 쉬우니까....
그리고 약국은 제약회사에서 다 차려주니까.... .
그래서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를 시켜버렸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난생처음 서울로 올라와 당시 타칭 3류쯤되는 약대에 응시합니다.
일차 필기시험 합격.
학교에 연락하였습니다.
교무실 복도에 “약대 합격”으로 붙었습니다.
이차 면접 불합격...최종 불합격.
엄마는 “네가 예비 합격자였나 보다. 내년에 더 보자.”
학원에 다니면서, 도서관침실에서 자며 공부했습니다.
그곳이 광화문이었습니다.
서울이라고는 시험보러 처음왔던 촌놈이
서울놈이 되었습니다.
서울서 잠자고 서울서 놀았습니다.
광화문 골목에서.
그리고 1년 후 같은 학교, 같은 과 ... 또 낙방.
작년에 함께 시험을 본,
그 학교 약대에 재학 중 인 친구 왈
“학교에서 안 받아주는가 보더라.
학교에 가니깐 약대에 장애인이 한명도 없더라.”
그리고 맥없이 돌아온 소년은 완전히 촌잡놈 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힘도, 빽도, 돈도....어떻게 하여야 알아 볼 수 있는지도 모르는 부모님은 슬프기만 하고.
그렇게 매일 밤낮을
술과 노름질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름방과 술집에서 세우는 날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사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소년은 그 때에야 사춘기를 앓았습니다.
혹독하게, 아주 철저하게 앓았습니다.
할 것이 없었습니다.
5급 공무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격사유랍니다.
원시우림 우범지대를 헤매었습니다.
놀다 지쳐 지방의 어느 농대에 지망하였습니다.
우수한 성적이면 합격시켜줄 것이라 믿고.. 농대 전체 수석이었습니다.
꽃을 기르고 싶었던 소년은, 농장실습에 지장이 있다고 다시 떨어졌습니다.
합격만 시켜주면 한문교육과에서 전과받아주기로 했다고 사정했지만.,
소년은 자연을 좋아했습니다.
소년은 꽃과 새들을 좋아 합니다.
이제 소년은 술만 좋아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국민학교에 다니지도 않았을 때...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한꺼번에 모여서 밥을 먹고 살기가 힘이 들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시골에 사시는 이모할머니댁에서 밥숟가락을 덜며 2년여를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살며 학교에 가기 위해서 시내로 나왔습니다.
푸른 들판과 하얀 구름과 메뚜기, 풀무치, 때까치, 나비, 왕치, 송사리, 올챙이, 풍뎅이, 소금쟁이, 장구애비, 장수하늘소...이 모든 것이 소년의 친구였습니다.
이 정서가 그에게서 평생을, 누구와 경쟁하며 욕심 부리며 사는 방법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속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의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소원했었던 ...그러나 중간에 포기했었던....
그렇지만 소년에게는, 그것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꿈은, 남들처럼 어느 직장에서 땀 흘려 일을 하고 월급날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고기를 먹으러 가는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평범하고자 꿈꾸었습니다.
어려서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고기를 자식들과 함께 즐겁게 먹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소년은 허깨비를 쫓으며 밤새 메깥을 절뚝였던 것입니다.
이젠,
동트는 아침인데,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그 작은 꿈의 자락마저도 소년은 놓은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는 꿈꾸는 사춘기를 벗어난건가요?
하지만 평생을 안고 늙은 차별과 위선과 이기에 대한 거부는
지금도 자기의 안일을 위해서 남의 평생을 버리게 하는 힘에의한 부정과, 위선에 가득찬 힘에의한 이기적 불평등과
약한 남의 소중함을 짓밟는 권력에 의한 거짓에 대하여는 용납하기가 싫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내게는 힘이 없답니다.
너무 긴 잠이었나 봅니다.
너무 지쳤고, 힘이 듭니다.
이제 그 소년은 쇠락한 늙은 소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꿈을 악몽인양 떨치지 못하는 헐랭이 글쟁이 낭인입니다.
잠도 못자고 자다가 지쳐 일어나는 늘 혼자인 오춘기 늙은 소년입니다.
풀꽃도 진실로 아름다운 세상이 그립습니다.
첫댓글
다 털어내고 나면 후련하겠지요
그래도 변한건 없을테고요
이제 다 비웠으니 새로움으로 채워보세요
새로운 인생은 칠십부터라 하더군요
ㅎㅎ
6년 우등상은 소년의 것이고
6년 개근상은 어머니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의 수고는 어디로 가고
늙은 소년이 되고 말았네요. 감사합니다.
늘 죄인의 심정으로 그리워 한답니다.
곧 뵐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가슴이 멍합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편견과 차별도 많았지요,
자식을 위해 자식을 업고 등교한 어머니, 약대도, 법대도, 농대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참으로 어둠의 세월이었지요, 그러나, 그 시절, 돈 없고, 여건이 안되어 주저앉은 사람들도 많았지요.
저 역시 몸은 온전했지만, 중학교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가 군대에 제대하고,
그럭저럭 직장잡아 결혼하고, 새끼낳고 기르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70이 넘었네요.
아직도 몸은 고단하지만, 이래 저래 한 세상, 그러니라 하면서 남은 세월 채워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