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삼청동 청와대 앞길에 위치한 3곳의 갤러리 프롬나드를 했다. 공근혜갤러리, DOS(도스) 갤러리, PKM갤러리이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산책하듯 15분 정도 경복궁 옆길을 따라 오르면 청와대 춘추관(청와대 기자들이 상주하는 곳)이 나온다. 사복 경호원들과 초소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그래서 올라가도 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 문제없다. 가다보면 아래 사진의 건물이 나온다. 사진 왼쪽의 기와 담장이 춘추관이고, 오른쪽 흰색 건물이 공근혜 갤러리이다.
공근혜갤러리에서는 젠 박 작가의 '레고스케이프트(Legoscaped)' 전시회(2020.5.26~6.21)가 진행 중이다. 작가 스스로 밝힌 바, 현실세계가 아닌 만들어진 조립식 세계인 '레고(ldgo)'에 '도시경관(citysape)'와 '도피(esape)'의 합성어이다.
현대예술 작품은 고상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모던한 인테리어에 유용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레고스케이프 작품들은 깔끔하고 기하학적이라서 상쾌하다. 작가 왈, "처음엔 레고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제작을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또 다른 탈출구를 생각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라고 전했다.
갤러리 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바깥 세상과 미술관 내부과 아래의 사진처럼 연결되어 있다. 개방형 갤러리이다. 젠 박의 작품은 사각형 캔버스 그림도 있지만, 집의 형태 및 지붕의 형태에 따라서 잘라놓기도 했다. 전형적인 스퀘어에서 탈피해 자유스러운 멋이 풍겼다.
위의 사진의 층계로 내려가면 보이는 광경이다. 아래 사진에서 뒤로 돌아 정면을 보면 위의 사진의 광경이다.
실내가 넓지는 않지만, 파티션으로 지루하지 않고 곳곳에 작품을 설치하여 놓았다.
작가 젠박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그렸다. 현대 미술은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이 아크릴 사용이 많은데, 화려하고 상쾌한 여름 분위기를 산출하기도 한다.
<legoscape(-ing) III>(2020) acrylic on canvas, 194x650cm - 집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어 보이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색깔과 각도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조화롭다. 아래의 작품은 본래 3개의 캔버스가 다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명에 '-ing' 있어서 자세히 보니, 계속하여 캔버스가 추가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계속 이어 붙여나갈 수 있다는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집인데, 토대인 아래쪽이 불안불안하다. 작가 왈, "오래된 빌딩은 허물고 새로운 빌딩을 만들어 나만의 질서로 재편된 가상의 도시를 만든다"고 언급했다. 낱개로 존재하는 레고 블록 각각 무의미할 수 있지만, 서로 맞물리고 쌓아가면서 점점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파괴하여 낱개로 만들어, 이번엔 다른 질서를 만들어 재편하여 다양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레고이다. 현대철학의 '해체와 종합'이다.
두 번째, 도스(DOS) 갤러리를 방문한다. 작가 조재형의 '선의 조율' 전시회(2020.06.03~09)가 진행 중이었다.
전시장 방문을 위해서는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계단 오른쪽 벽면에 책장을 붙박이도 만들어 공간 활용을 도모한 것이 맘에 들었다.
위의 사진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전시장으로 연결된다. 조재형 작가의 작품은 가로와 세로, 막힘과 뚫림의 조화로운 배치감이 느껴졌다. 쇠를 두들겨 가공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도시의 이미지를 담아 내었다고 한다.
<스크린 (screen>(2018), 철단조, 파티나 1100x200x30mm
위의 작품을 단독샷으로 찍은 것인데, 그림자까지 작품의 일부로 보였다.
<공간을 위한 오브제>(2020) 철단조, 열착색 1270x2430x25mm
좌: <공간을 위한 오브제_창2>(2020) 철단조, 640x2490x180mm, 우: <공간을 위한 오브제_창1>(2020) 철단조, 730x2500x160mm
<공간을 위한 오브제_의자>(2020) 철단조, 오일착색
위의 의자 작품을 다른 각도로 본 것이다. 그의 작업은 철을 압력으로 눌러 재료의 형태를 변형하는 단조 기법이다. 이 의자는 앉는 용도로 사용 가능한 것인가? 우스운 질문이다^^
벽에 붙어 있는 작품인데, 처음엔 지나칠 뻔했다. 작품명도 없었다. 작품명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형태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세 번째 프롬나드 장소는 PKM갤러리이다. 기존 건물 앞에 철옹성처럼 벽을 한 겹 덧칠해 놓은 듯한 출입구이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화가의 거목, 윤형근(1928~2007)의 작품전(2020.04.23~06.20)이다.
윤형근 작가는 현재까지 한국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 <우주>의 김환기(1913~1974)의 제자이자 장인과 사위라는 긴밀한 관계였다. 이번에 PKM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윤형근 작가의 작품들은 1989~1999년 시기의 단색화, 색면화가 주를 이룬다.
<Burnt Umber & Ultramarine>(1987~1989) 린넨에 유채. 그의 작품은 유화로 그렸음에도 수묵화 같은 느낌이다. 마직물인 린넨의 재료 위에 번짐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가공하지 않은 누런색의 마직물인 린넨 위에 올려 놓은 태운 갈색인 암갈색의 Umber이다. '엄버'는 암갈색 천연 안료인데, 그냥 사용하면 raw umber이고, '번트 엄버(Burnt Umber)'는 엄버를 태워서 밤색으로 만들어 안료로 사용한 것이다.
윤형근 작가의 현재 전시에서의 작품들 제목은 모두 동일한 <Burnt Umber & Ultramarine>이다. 다만 제작연도만 조금씩 다르다. 아래 작품은 1991~1993년 제작이다.
위 작품의 세부도이다.
PKM갤러리는 두 군데로 나뉘어 있다. 건축구조상 건물은 앞 뒤로 있는데, 관람자들은 본관을 보고 난 이후, 정문으로 나가서 골목을 올라 아래와 같이 다른 출입구를 통해 별관으로 향해야 한다.
별관으로 출입구로 입장한다. 여기에는 갤러리와 더불어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정원과 흰 건물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위의 사진에서 건물 앞에서 촬영한 입구를 포함한 반대 쪽이다. 주변에 옛 된 삼청동 건물들이 주변의 청취를 알려준다. 입구에서 현관까지만 타일 바닥을 깔고 잔디와의 구분을 불규칙하게 해 놓은 것 또한 멋스럽다.
두 번째 관람을 시작한다. 추사 김정희 글씨가 왜 있나 했는데, 윤형근 작가의 예술 정신이 추사 김정희의 '졸박청고(拙樸淸高: 서투른 듯 맑고 고아하다)'에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아래 <목지필화 화지필실, 나무는 반드시 꽃을 피우고 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가 별관에서의 윤작가의 작품을 알린다.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왼쪽은 <Burnt Umber & Ultramarine>(1996)과 삼청동 배경이다.
<Burnt Umber & Ultramarine>(1994), 멀리서 보면 정갈한 직선이지만 가까이 보면 부르르 선들이 떨리는 번짐 효과를 볼 수 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색면화가 마크 로스코가 생각나기도 했다.
<Burnt Umber & Ultramarine>(1990), 지하로 내려가면 계속하여 전시장이 이어진다.
<Burnt Umber & Ultramarine>(1977~1989), 번짐이 특히나 더 많은데, 제작연도를 보니 12년동안 작업했다. 12년간 완성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리고 암갈색(burnt umber)은 알겠는데, 왜 울트라마린(Ultramarine) 푸른 색이 작품명인가 궁금해 살펴보니 검게 푸르둥둥한, 검푸른색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검푸른색과 대지를 뜻하는 검은 갈색인 암갈색으로 그래서 '천지문(天地門)'시리즈라고 부른다.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있어 보니, 미니멀아트 조각의 선구자인 미국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9~1994)의 <무제>(1983~1985)이다. 조각의 밑그림으로 보였다. 윤형근과 도널드 저드는 1991년 저드가 한국에서 전시를 했을 때 처음 만나고, 1993년 미국에서 다시 조우했다. 저드가 다음 해인 1994년 사망했으니, 그들의 만남이 더욱 특별해 보인다.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와의 조우는 윤형근 작가가 형태와 색채의 극단적인 간결함을 추구하는데 영향을 받았다. 자신의 기존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해 준 것이다.
<Burnt Umber & Ulramarine>(1997)
<Burnt Umber & Ulramarine>(1989)
전시 관람을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단순한 형태와 색감의 작품들을 관람하니, 나의 삶도 더 단순해 질 가능성을 보이는 것 같다. Hopefully! What happens, happens!
공근혜갤러리, 도스갤러리, PKM갤러리는 청와대 춘추관 옆길에 쭉 늘어서 있어서 한 번에 스트롤링하기 편리하다. 동네도 한적하여 조용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기 적절한 곳으로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