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소중한 봉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문진순
원룸 3층 현관문 손잡이에 막걸리
두 병이 담긴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노크를 해도 응답이 없었다. 키로 문을 열고 도시락과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서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양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나오셨다.
이제 일어나셨느냐고 물으니 기운이
없어 누워계셨단다. 가지고 온 도시락과 막걸리 봉지를 내려놓으며 지난 금요일에 배달한 도시락 통을 집어 드니 열어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 식사는 안하시고
막걸리만 드세요?”
막걸리는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넘어가서, 가끔 이웃집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마신다고 대답하셨다. 혼자 계시기에 불안해 보여 요양원으로 가시면 편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먼 산만 바라보셨다.
마지막 배달 집 할머니도 누워
계셨다.
“안녕하셔요?”
약간 크게 인사하며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은 혼자 떠들고 있다. 할머니가 목까지 이불을 덮은 채 눈을 감고 계시면 가슴이 덜컥할 때도 있다. 머리맡에 수북이
쌓여 있는 베지밀 상자를 보며 금요일에 배달된 도시락을 열고 주말에 드셨어야 할 부식을 챙겨 내어놓으며, 이렇게 식사를 안 드셔서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어느 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몇 모금 마시려고 귀찮게 한다며 미안해하셨다.
“괜찮아요. 한 모금이라도 필요할
때 마실 수 있다면 배달은 해야지요.”
밥이 그대로 들어있는 도시락을
답답한 마음으로 들고 나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털이 길어 눈까지 덮은 강아지가 깽깽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본다. 그래! 너도 목이 마르지,
사료와 물을 밥통에 부어주며
“강아지야, 너도 마음에 걸리니
어떡하지?”
다음에 올 때는 가위를 가져와
눈을 가리는 머리털이라도 잘라주어야지 생각하지만 다시 올 때는 깜박 잊어버린다. 어쩌면 잊어버린다는 건 핑계이고 강아지가 너무 심란하여 미리
포기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노인복지관에서 재능 나눔
봉사활동이 있으니 참여해달라는 권유가 인연이 되어 월요일 오전 독거노인 도시락배달을 하게 되었다. 복지관식당 주방에서 만들어준 음식을 공익요원과
같이 도시락을 싸서 직원이나 봉사자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오른다. 무릎에 올려놓은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나와 현관문을 두드리며 ‘도시락
왔습니다.’ 하며 손잡이를 돌리면 미리 문을 열어 놓고 계시는 집이 많다.
들고 간 도시락을 내려놓고 빈
도시락을 챙기며 따뜻할 때 맛있게 잡수시라며 인사를 한다.
고마워하시는 분, 골목까지 따라
나오며 인사를 하시는 분, 걸음이 불편하여 현관문 안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기다리는 분,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며 배려해 주신다.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표정도 밝으시다.
주택 안에 메어있는 흰 개도
처음엔 목줄 끝까지 뛰어오르며 동네가 떠나가라 짖었다. 3일째 되는 날부터 내 발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골목에서부터 백구가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서 뛰어오르지만 짖지는 않는다. 빈 집을 지키는 덩치 큰 진돗개를 만나면, 반가워하니
기분이 좋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
손녀들이 방학하여 데리고 있느라 2주 동안 배달을 쉬다가 복지관으로 갔더니 열쇠가 3개 중 하나가 줄었다. 담당자에게 성씨 할아버지 집 열쇠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다리가 풀렸다. 그럴 수 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다.
올해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새끼발가락에 금이 가서 2개월, 두 발등에 화상을 입어 2개월, 4개월 남짓 회복이 늦어 꼼짝 못하고 집에 갇혀있었던 분이다.
따뜻한 밥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도시락을 들고 찾아가는 일을 이 나이에 내가 한다는 것은 이웃을 돕는다는 조그만 자부심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그
작은 일이 다리가 불편하여 쉬고 있으니 마음도 같이 불편해진다. 작은 일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아쉬움이
크다.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 찾아갈 수
있는 그 작은 시간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가을쯤엔 다시 도시락배달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2017.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