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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5월 달에는 특별히 뭘 기념하는 날들이 참 많아요. 그렇죠 우리가 우리가 둘째 주에는 어린이날 어린이 주일과 어버이 주일을 이제 겸해서 가족 초청 주일로 예배를 드렸고 지난 주일은 스승의 주일이기도 했고요. 부부의 주일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 또 우리 성결교단의 성결교회 주일이라고 하는 주일로 예배를 드리는데 먼저 성령 강림 주일에 대한 내용으로 오늘 설교를 할 거니까 성결교회 주일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 제가 좀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성결교회 주일인데요. 우리 한번 큰 글씨 읽어볼까요? 시작
네 119년 차 성결교단의 큰 표어입니다.
여러분 성결교회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 이름이 뭐예요?
네 하늘 소망교회 근데 앞에 생략된 거 있어요 뭐예요?
네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하늘 소망교회 이게 이제 원래 풀네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기성이라고 해요. 기성 기장 예장 합동 이런 것처럼 우리 성결교회에도 기성 예성 이렇게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기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선교교회의 특징 여러분들 알고 계신 거 혹시?
네 사중 복음으로 말씀을 증거한 자생적인 교단입니다. 자생적인 교단이 뭐예요?
그러니까 보통 장로교 감리교는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이 땅 가운데 교단을 세운 거거든요. 근데 우리 성결교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가서 신학을 배워가지고 들어와가지고 처음에 성결교단이라는 걸 세우려고 한 게 아니라 중생 제가 이 표시를 해놨는데 이게 교단 마크입니다. 교단 마크 가시밭에 떨 백합화 저게 이제 교단 마크인데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고 하는 4개를 큰 사중 복음이라고 해가지고 이 4개의 단어를 중심 이 4개의 단어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처음에는 전도로 시작을 한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전도할 때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 이게 막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이제 하나의 소그룹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 소그룹 안에서 이제 교회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교회들이 이렇게 여러 개 생기다 보니까 하나의 교단이 만들어진 그게 바로 우리 기독교에 대한 성결 교회입니다.
여기에 보면 글씨가 보이시죠. 한번 저 위에서부터 이 밑에까지 쭉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랑하는 성결교회 사랑하는 영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결 가족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 전도관으로 시작된 성결교회는 한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고 성결하게 살면서 치유받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모든 성도가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여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전통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성결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이제 이번 주간에 교단 총회가 있습니다. 교단 총회를 이제 하고 나면 120주년 이제 총회 이제 시작이 돼요. 우리 교단이 몇 년 된 교단이에요?
120주년 이제 119년이고 이제 120주년을 곧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아마 이제 청소년 청년 집회도 120주년으로 해가지고 전국적인 단위로 아마 이렇게 집회가 지금 계획이 되어 있고 아마 이 지방회나 교단 적으로도 뭔가 큰 행사들이 내년에는 좀 계획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러분들 기도해 주시고 또 다음 이번 주 간에 있을 교단 총회도 은혜 가운데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성결교회 가족이라고 하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또한 무슨 주일이라고요?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여러분 성령 강림은 너무나도 우리 교회에게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이 땅에 임하심으로 그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가 시작되었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는 놀라운 원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여전히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오늘 대표 기도하신 권사님이 아주 성령에 대하여 이렇게 요약 정리를 잘해주셨어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 말씀은 이제 그 성령의 강림 역사 오순절 사건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 베드로가 변화된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는 내용으로 시작을 합니다.
베드로는 아주 세련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요. 사람들 앞에서 요즘 정치하는 분들처럼 막 강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죠. 베드로의 설교의 내용을 이렇게 살펴봐도요. 그 설교 안에 어떤 화려한 문장이나 감동적인 문구나 그런 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처럼 뭔가 이렇게 환한 장소도 아니고 또 스피커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워포인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짤막한 설교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가슴이 찔려 마음이 찔려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회심한 사람이 3천 명이 되었습니다. 어떤 마케팅을 한 게 아니에요 어떤 전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돌아간 것도 아니에요. 오로지 말씀과 성령으로 이 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오늘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첫 번째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두 번째 세 번째
아멘 이런 내용을 함께 나눌 텐데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또 우리가 함께하는 이 교회 공동체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영국의 아주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아주 유명한 설교자였는데요. 처음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한 나이가 16살입니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말씀을 전했죠. 근데 그 당시에는 신학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뭔가 뛰어난 언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막 더듬어요. 정식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 말씀 사건처럼 수천 명이 회심하는 역사를 또다시 이 역사 가운데 반복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가 훗날 이렇게 고백합니다.
설교의 힘은 설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나는 단지 성령의 사자일 뿐입니다.
여기서 이 사자라는 말을 우리 청소년 청년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어응하는 사자로 이해할까 봐 좀 설명을 드리면 사자는 부림을 받아서 심부름하는 사람 또는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어떤 목적을 띠는 파견된 사람 그런 걸 사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설교자인 자기는 단지 성령의 사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찰스 스퍼전의 설교 내용을 보면 대부분 성경을 인용하여서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전파하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그러했듯 능력은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가만히 살펴보면요. 구약 성경을 직접 인용한 내용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짤막한 구절인데 짤막한 설교인데 그 성경 안에 세 번이나 구약 성경을 인용해요. 요엘서 2장 시편 16편, 시편 110편, 그러니까 베드로가 자기의 어떤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건데요. 성령은 성경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한번 말씀을 같이 볼게요.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시작
어떤 것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 여기서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하는 말의 원어를 보니까 에너지의 어원이 되는 단어가 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걸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거나 또 이렇게 말씀을 듣는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먼저 우리가 인도하심을 구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 전에 또 말씀을 듣기 전에 여러분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에너지, 성령의 역사하심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루터와 칼빈도요. 말씀과 성령의 불가 분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거예요. 에베소서 6장 17절 말씀에도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도 보면요.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이런 신앙의 역사를 보면 한때는 막 어떤 은사에 막 우리가 포커스가 맞춰져서 은사 그래서 방언 치유 이쪽에만 계속 몰두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하다 보니까 막 뭔가 혼란스럽고 질서가 잡히지 않는 그런 현상도 있었어요. 연약한 가운데 그런데 또 이러한 과정 속에 지나고 나니까 막 말씀을 강조해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막 이렇게 제재합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하면서 말씀의 강해가 더 중요시되고 말씀으로만 모든 걸 하려고 합니다.
근데 여러분 말씀 없는 성령 운동은 위험하고요. 그리고 성령 없는 말씀 강에는 죽은 것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한 정의에요. 한번 따라 해볼까요?
말씀 없는 성령 운동은 위험하다.
성령 없는 말씀은 죽은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이 떨어질 수가 없는 불가분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 설교 말씀이 능력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전했지만 그 말씀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하는 젊은 목회자의 이야기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말씀으로 정말 단순한 말씀을 증거해요. 화려한 제스처도 없고 말씀을 증거하면서도 저도 원고 중심으로 설교를 하지만 원고를 이렇게 들고 이 원고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노센프턴 전체가 뒤흔드는 그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말을 해요. 이 사람이 기록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무리 훌륭해도 돌 같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만 마음이 변합니다.
예 저도 기도해요. 저도 언변이 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닌 사람 중에 하나고 저도 여러 가지 좀 부족한 면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어 말씀을 증거하는 자리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 역사해 주시기를 늘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요.
목회자는 말씀을 최대한 충실하게 준비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 마음 각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역사하시는 일은 성령님이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큐티를 읽고 말씀을 듣고 이런 건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심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심어도 성령님이 자라나게 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평가자 판단자가 되지 않기를 원해요. 여러분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평가자 판단자가 되지 마십시오. 말씀은요. 사모하는 심령으로 들어야 내 안에 은혜가 있어요.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의 말씀에 밭이 심겨지고 성령님께서 그 마음 밭에 심겨진 말씀을 자라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드로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까 37절에 마음이 듣고 마음이 찔려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이 찔린다는 말도 그냥 우리가 이렇게 이해하는 저 단어에 이걸 다 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원어적인 의미를 보니까 날카로운 것에 꿰뚫리는 느낌, 깊은 내면까지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자각이 저들에게 일어났다는 겁니다. 구약의 7인 번역을 보면 이 단어를 깊은 상처를 입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듣고 막 뭔가 확 찔린 느낌을 받은 거예요. 아주 깊이 심각하게 제가 여러분 이 단어를 지금 여러 의미로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중요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회심이라고 하는 것, 회심이라고 하는 것을 실제로는 마음의 어떤 감동, 진한 어떤 느낌 이런 것에 머무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회심하셨습니까라고 말을 여쭈면 대부분 예 회심한 적 있습니다고 표현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여러분은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면서 막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고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이 뭉클해지고 때론 눈물이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그런 일들도 아주 좋은 겁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계속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 자체가 반드시 회심이라고 하는 말은 틀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찔림입니다. 성령의 진정한 역사는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거예요. 내 삶의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치게 되는 것 이게 진정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이렇게 말을 해요.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책망을 받은 사람들 그 반응은 바로 37절의 말씀처럼 그러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찌할꼬 여러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는 이 말은 절망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령에 찔린 사람은 단지 울고 감동하고 그냥 잠깐 어떤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는 그런 감정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가 살아가던 방향을 바꾸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자세로 바뀐다는 거예요.
이 어찌할꼬라고 하는 이 말에 진정한 회심의 출발점이 있는 겁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책망하심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도 이 사람들의 반응처럼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는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존 웨슬리가 그랬어요. 존 웨슬리가 오랫동안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좀 방황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1738년 5월 24일 날짜로 따지면 지금하고 큰 차이가 없네요.
오늘하고 같은 날이네요. 런던의 올더 스케이트 한 거리에서 한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 모임에서 아주 단순한 로마서 서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용도 이래요.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제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그리스도께서 네 죄를 사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
여러분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이 존 웨슬리는 그날의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나는 그 선문을 읽는 가운데 내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고, 나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러분 웨슬리가 그날 저녁 경험한 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말씀이 낭독될 때 성령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찔림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그날 이후에 이 회심의 이 경험을 한 웨슬리는 영국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영국 역사상 가장 큰 부흥의 주역이 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드릴 때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이유가 있는 거예요. 단순히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적인 걸 점검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직면하고 그 찔림이 무거울수록 내 안에 응답도 깊어지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점검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는 이 질문에 베드로는 답변을 합니다.
38절 말씀을 보면 이제 38절 이후에 세 가지로 답변을 하는데요.
첫 번째가 바로 회개해라. 그리고 두 번째가 세례를 받으라. 그리고 41절 말씀을 보니까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음에 이 날의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집니다.
이 세 가지의 응답을 한번 점검해 봅니다. 먼저 회개 제가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감정적인 게 아니에요. 미안한 마음, 후회하는 마음이 회개가 아닙니다. 생각을 전환하는 것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았던 것에서 하나님이 주인 된 삶으로 180도 전환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감정적인 결단이 아니라 내 삶의 전체의 방향을 전환하는 거예요.
회개하라 두 번째 세례를 받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공동체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하는 공적인 선언을 하는 시간이에요. 개인적인 신앙을 공동체 앞에서 고백하고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젖붙임을 받는 시간이 바로 세례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인 신앙으로 우리가 초대교회의 신앙을 온전히 구현해낼 수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요. 지금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라고 하는 이름으로 자기는 예수님을 믿는대요.
그런데 나는 교회는 안 나간다는 거예요. 그건 올바른 신앙인이 아니라고 분명히 확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관이 가정이라는 것과 교회라고 하는 기관이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주신 감동을 소그룹이나 공동체에게 나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내 은혜를 나만 가지고 있으면 그건 나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나만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주신 거예요.
설교 전에도 지금 간증과 특송 시간이 늘 가로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 개인으로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간증할 이유들도 있고 또 특송할 이유들도 있는 분들이 계신데 용기를 좀 안 내시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니까요. 한번 기도하시면서 얼마든지 그 시간을 활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이 말은 단순히 엄청난 인원이 늘어났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심한 사람들이 공동체에 더해졌다고 하는 것이죠.
이어지는 말씀에 42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아멘 회심한 이후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단순히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모으신 은혜를 붙들고 서로 교제하고 또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지는 그 장소가 바로 교회이고, 뿐만 아니라 신앙의 확장을 함께 힘쓰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 세 가지 이 응답은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세례는 의식적인 것에 불과하겠죠.
세례가 없는 신앙은 개인주의에 머물게 할 겁니다. 공동체 없는 신앙은 뿌리가 얇아서 메말라버리기 쉽습니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온전히 뒤집어 엎을 수 있었던 그 세 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요. 회개와 세례와 공동체 이 세 가지의 응답이 분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사도행전 2장 말씀을 통해서 이것은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오순절 사건 바로 이후의 이야기지만 오늘 우리 교회의 이 강단 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줄 믿습니다.
2천 년 전에 성령님이나 지금 현재의 성령님이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렇죠. 그 하나님은 그대로 우리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이렇게 나누고 있지만 성령님이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쩌면 그 모여 있던 3천 명의 회심한 사람들처럼 이 시간 누군가는 마음에 찔림을 경험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찔림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오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전이 되는 부분이 이 말씀입니다. 나는 여전히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마음에 찔림을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익숙해져서 말씀을 들어도 판단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무감각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여러분 점검하셔야 됩니다. 말씀 앞에서 무뎌지는 것은요. 찔림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내 영적인 것들이 무감각해지고 있다라고 하는 신호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셔야 돼요. 찔리면 아파야 되잖아요. 근데 찔러도 안 아프면 어떻게 돼요? 그건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에 찔림을 경험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 찔림을 기도의 현장으로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오래전에 이미 결심했지만 삶의 방향이 흔들려서 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어찌할꼬의 자세로 다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설교를 설교 사역을 감당하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할 때마다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성령의 검으로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으로 말씀을 함께 듣고 나누는 우리에게 찌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 강림 주일 성령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사건으로 시작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그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동일한 사건입니다. 오늘 하늘 소망 교회 안에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 가운데 성령님 역사하시고 우리가 더욱더 적극적으로 예배 생활, 말씀 생활에 함께함으로 성령의 역사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