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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朝鮮大學校, Chosun University) : 네이버 카페
조선대학교
Chosun University
조선대학교 본관 | |
| 표어 |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창의인재 양성 |
| 건학이념 | 개성교육·생산교육·영재교육 |
| 종류 | 사립 종합대학 |
| 설립 | 1946년 9월 9일 |
| 총장 | 김춘성 |
| 학교법인 | 조선대학교 |
| 학부생 수 | 19,469명 (2020년) |
| 대학원생 수 | 1,554명 (2020년) |
| 교직원 수 | 교수: 1,910명 (2020년) 직원: 393명 (2020년)[1] |
|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길 146 |
| 규모 | 13대학, 10대학원 교지: 1,048,165m2 (2019년) 교사: 508,469m2 (2019년)[2] |
| 교색 | 청색 |
| 상징물 | 상징 동물: 백학[3] 교목: 소나무 |
| 웹사이트 | 조선대학교 홈페이지 |
|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Wikimedia | © OpenStreetMap 조선대학교의 위치 | |
조선대학교(朝鮮大學校, Chosun University)는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길 146에 위치해 있는 사립 종합대학이다.
또한 조선대학교는 호남 지방 거점 사립대학이자 한반도 최초의 민립대학(民立大學)[4] 으로서 1946년 9월 ‘민족국가 수립에 기여할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이라는 설립 정신 아래 7만 2,0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조선대학설립동지회에 의거하여 광주야간대학원(光州夜間大學園)으로 설립되었다.[5] 같은 해 11월 호남지역 안에서의 대학이 아닌 전국의 인재를 키우는 대학이 조성되기를 바라서 조선대학(朝鮮大學)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6] 1948년 5월 26일 재단법인 조선대학이 설립인가되었으며[7][8][9]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10]
일제 강점기의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에 영향받았으나 설립과 관련하여 직접 영향받지는 않았고 [주 1] 비리 재단 축출과 학원 민주화와 학원 자주화를 달성하고자 1987년에서 1988년까지 학내에서 일어났던 대학 개혁 운동인 1·8 항쟁 이후 학교법인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파견하는 임시이사 체제로 이어져 오다가 2010년 22년만에 정이사(正理事) 체제로 전환하였다.[11] 교훈(校訓)은 ‘개성교육·생산교육·영재교육’이고 교색(校色)은 청색, 교목(校木)은 소나무, 상징 동물은 백학인데 이것은 무등산 서석골에 있는 본관 건물의 형상이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며 선비의 기상, 미래의 이상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는다.[12] 약칭으로 조선대 혹은 조대라고 부르며, 학교법인 조선대학교가 운영한다.
연혁
태동기
설립 당시 공사 중인 본관 (1950년 초)
일본 제국의 탄압으로 좌절된 호남 지역의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은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조선대학 설립동지회(朝鮮大學 設立同志會)와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하면서 부활하였다.[13][14] 설립동지회원들은 12월부터 트럭을 타고 전라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모금하였는데 이에 군수, 경찰서장, 면장, 시골이장은 물론 기생까지 당시 쌀 2말값에 해당하는 100원짜리 설립동지회원권을 샀고 가난했던 농촌민도 대학을 세운다는 말에 깨, 김, 미역을 내놓으면서 대학 설립에 힘을 보태는, 설립동지회원 자격은 해방된 조국을 건설하려는 신념에 불타는 지식인, 관리, 지주에서 머슴과 촌부까지 계층, 학력, 빈부 격차를 넘어서 호남 지역 전 대중뿐만 아니라 멀리는 제주도에서 충청도와 수도권에까지 완전히 개방되었다.[15][16] 당시 전라남도지사였던 서민호는 일본 메이지대학교(明治大学)를 졸업하고 일본 문교사회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박철웅에게 설립동지회장직을 맡게 하였고 대학 설립을 준비하고자 도청이 소유한 차량을 사용하게 하고 도지사 명의로 사장과 군수에게 협조 지시 공문을 보내는, 설립에서 일선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6]
1946년 8월 5일 “개성교육·생산교육·영재교육”의 건학 이념과 “민족국가 수립에 기여할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이라는 설립 이념으로[17] 광주서중학교에서 발족식을 했으며 동년 9월 9일 광주야간대학원(光州夜間大學園)이 설립 인가되었고[5] 9월 29일 광주야간대학원[4학부, 12학과, 1,194명]을 개교하였다.[6] 그 해 11월 23일 광주 지역에 국한된 대학이 아닌 전국의 인재를 키우는 대학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정부수립 전에 인재 양성이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 초석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서민호 전라남도지사의 뜻을 좇아 교명을 '해뜨는 아침'이라는 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면서 진취성을 띤 기상을 함의한 조선대학(朝鮮大學)으로 개칭하였고[6] 1947년 설립동지회는 회원 7만 2천여 명을 확보하고 1948년 5월 26일 재단법인 조선대학이 미군정청에서 설립이 인가되었는데[5][7][8][9] 이는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당시 국민 4천여만 명 중에서 모집한 주주가 6만 1천여 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전국 인구가 1,600만 명이던 1947년 당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7만 2천여 명이 성금을 내어 대학을 건설하였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18]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조선대학 설립동지회 입회 권유문 |
설립 주체의 대중성과 규모로 말미암아 조선대학교는 명실상부한 호남인의 민립 대학으로 출발하였고 설립동지회는 입회 권유문으로써 시급한 과제인 민족국가와 민족문화 건설에 당면하여 획일성을 배격하고 개성을 갖춘 민주주의에 적합한 시민을 양성하고 학문과 사회 현실이 상호 실행하는 연관이 있는 현실에 적합하게 교육하여 전문지식인을 양성하되 자질 있는 학생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15]
1953년 3월 10일 조선대학은 조선대학교(종합대학)로 승격되며[10] 문리과·법정·공과대학 3개 대학과 대학원을 설치하였다.[19] 1957년 대학원이 박사학위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게끔 지정되었다.[19]
군부 독재 시기
1960년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정치상 혼란기 속에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군부 독재 시기에 접어들어 거듭 부침하는 일변,[6] 1965년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에 적으로 활동하였다.[20][21] 1965년과 1966년 각각 사범대학과 의과대학을 설립하였고 1971년 부속병원을 개원하였으며, 체육대학을 설립하였다. 1973년 치과대학, 1978년 경상대학을 설립하였고 치과대학 부속치과병원을 개원하였다. 1979년 외국어대학을 설립하였고 1980년 미술대학을 설립하였다.[19]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기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5월 18일 이전부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조선대민주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공동 명의로 제1 시국 선언을 발표하였고 항쟁기간에 시민군 지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5월 17일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인사가 정권을 장악하려고 주도한 5·17 쿠데타를 이용하여 불법성을 띤 비상계엄을 확대하는 조치에 따라 자정을 기해 무기한 휴교령이 발동하고 새벽 2시 제7공수특전여단은 전주 전북대학교 점령 전주를 지나 곧바로 광주로 들어와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를 점령하고 학내에는 즉시 계엄군이 진주하였으며 공수부대원들은 각기 조를 편성해 광주 시내 각 학교의 입구를 지키고 검문·검속하였다.[22] 항쟁 기간 계엄군들은 조선대학교 내에 진주하면서 야영하였는데 당시 시내 곳곳에서 연행되어 온 수많은 시민과 학생이 교내 체육관, 대운동장의 야전 막사에 수용되어 계엄군에게 잔인하고 혹독하게 폭행당했다. 1997년 광주광역시 예산으로 교내 정문 입구 화단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사적지 표지석(사적번호12)이 설치되었다.[23][24][25]
학원 민주화 운동 시기
1·8 항쟁 기간 중 농성중인 재학생
이 부분의 본문은 1·8 항쟁입니다.
호남 지역 민중에 의거해 설립된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사유화(私有化)하고자 대학 설립 당시 '설립동지회 회장'이었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1982년 불법으로 정관을 변경하고·부정입학·교수 해임·교수 및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공금 횡령·1986년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막기 위해 매일 아침 7시에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출석을 부르고, 노교수·여교수 할 것 없이 운동장을 두 바퀴씩 구보하게 한 다음 총장에게 충성서약을 하게 하는 등[18] 온갖 전횡을 일삼던[26] 박철웅 총장과 그 일가에 항거하여[27] 설립 이후 민족과 지역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역할과 발전을 기하지 못하였다는 반성이 대학구성원들과 지역사회에서 크게 일어나, 대학 설립 당시의 지역 원로들이 젊은 사람들이 일선에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제5공화국 막바지인 1987년 반(反) 군부 독재 투쟁과 맞물려 학생, 교수, 동문들이 중심이 되어 학부모까지 가세하여 '박철웅 총장 퇴진 및 민립대학 환원'투쟁인 1·8 항쟁이 일어났다. 1·8 항쟁은 113일간의 장기농성[28] 끝에 1988년 1월 8일 새벽 4시 학내에 공권력 투입으로 막을 내린 학원 민주화 투쟁으로[29][30][31][32] 항쟁 기간동안 투입된 경찰력이 1,500여명에 이르며 강제진압과정에서 2명이 중화상을, 1명이 투신하였고 45명이 구속되었다.[33][34]
1·8 항쟁 이후 1988년 9월 이돈명 제8대 총장이 선출되었는데,[35] 취임과 동시에 이돈명 총장은 설립 정신을 받들어 구 경영진에 의해 수십 년 간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온 각종 제도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서 명실상부한 민립·민주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작업에 착수하였고, 1989년 3월 전국 대학 최초로 예·결산과 집행내역을 공개함으로써 대학 구성원들에게 학교의 운영 실태를 알리고 주인의식을 이해하게 하는 학사행정의 원칙을 확립하였다.[36]
2000년대 이후
설립기념탑 (2009년)
2000년 생물신소재연구센터, 가상교육센터, 고전연구원, 계측제어공학교육센터 등을 설립하였고 2001년 디자인대학원을 설립하였다.[19] 2003년 교육인적자원부 지방대학육성사업, 과학기술부 기초의과학센터(MRC)[37]·WISE호남지역센터에 선정되었다. 2004년 한문학과, 경찰행정학과, 태권도학과를 신설하였으며,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을 설치하였다.[19] 2004년 군사학부를 신설하고,[38] 육군 31보병사단과 학군협정 조인식을 가졌으며,[19] 4월 동광건설의 황금추 회장이 고시원(황금추관)을 기증하여 준공에 들어갔다.[39] 2007년 12월 중앙도서관 분관 법학전문도서관을 개관하였고,[40] 완도 해양생물연구센터를 개소하였다.[41]
2008년 '장기발전계획2015'를 확정하였는데, 이는 통일한국의 주역이자 동북아시아중심 대학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질적인 도약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조선대학교의 대학발전계획으로서 우수교원확보 효과적 교육/연구환경조성, 수요자중심의 맞춤형 교육으로 창의적 인재 양성, 성과중심의 연구지원 시스템 구축,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추구, 재정기반 확충과 복지향상, 특성화를 통한 국가와 지역의 미래 선도, 창의적인 문화캠퍼스 조성을 내용으로 하는 7개경영방침을 기본으로 하고있다.[42]
2009년 3월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을 개설하였고,[43] 글로벌법학과, 기초의과학부,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였다. 4월 대학 교육 역량강화사업 지원 대학과 지역연고산업육성사업에 각각 선정되었고, 7월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인재양성사업에 선정되었다.[19] 1·8 항쟁 이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파견하는 임시이사 체제로 이어져 오던 학교법인은[44] 2010년 22년만에 정이사(正理事) 체제로 전환되었고,[11]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융합형원천기술개발사업, 공공복지안전연구사업,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 대학에 각각 선정되었다.[19] 2011년 기초교육원을 확대·개편하여 기초교육대학을 신설하였고,[45] 개교65주년을 맞이하였다.[46] 2012년 호남지역 최초로 임상약학대학원을 신설하였다.[47]
2018년 :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결과 역량강화대학 선정 및 조건부 일반재정지원[48]
캠퍼스 · 주요시설
정문과 공대 제1공학관 (2011년)
광주광역시 동구에 본캠퍼스인 백악캠퍼스가 있고, 북구에 첨단산학캠퍼스가 있다.
백악캠퍼스
조선대학교 백악캠퍼스는 광주광역시 동구 필문대로 365에 위치해 있으며 약 1,068,743m2의 교지가 있다. 캠퍼스의 뒤로는 무등산을 끼고 있으며, '백악(白堊)'이라는 명칭은 본관 건물이 전체가 흰색이어서 백악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본관의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려고 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하여 '백학(白鶴)캠퍼스'라고도 한다.
조선대학교 본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총 길이 375m로 전 세계 대학 건물 중 가장 길이가 긴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학교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의 상징으로 1947년 착공된 이후 한국 전쟁으로 건립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광주, 전남,북 호남지역 시,도민들과 전 교직원과 학부모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공사를 추진하여 1954년 완공되었다.[49] 건립 당시에는 중앙 5개의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건물이었으나 몇 차례의 증축을 거치며 현재의 19개의 박공지붕 건물로 발전되었다.[49] 1995년 본관 건물은 기둥에 균열이 발견되는 등 노후건물로 판정되어 한동안 폐쇄되기도 하였다.[50] 2003년 한국대학신문의 아름다운 캠퍼스 BEST10에 선정되었고, 2004년에는 본관의 중앙 5개 박공부분이 등록문화재 94호로 지정되었으며,[49][51] 2009년에는 야간 경관 조명 공사로 광주광역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새롭게 태어났다.[52]
서석홀, 입석홀, 학생회관, 의성관, 국제관, 해오름관, 항공우주·선박해양공학관 등의 건물이 있으며 중앙도서관 앞 운동장 전면에는 인조잔디 축구장 2면, 하키장 1면, 테니스코트 4면등이 있어 2007년 전국체육대회 등 대규모 체육행사의 보조경기장으로 활용되었고,[53] 2010년에는 노천극장인 1·8 극장이 새롭게 단장되었다.[54] 주변에 광주 도시철도 1호선 남광주역이 있다.[55]
중앙도서관
백학학사
글로벌 하우스
중앙도서관
1950년 본관 2층 서고에서 시작하여 여러 해에 걸쳐 각 단과대학에 분관을 두어오던 도서관은 2003년 공대분관, 자연대분관, 의대분관을 통합하여 현재의 중앙도서관이 개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전체 5,508평의 규모에 호남지역 최초로 장서수 100만권을 돌파하였다.[56] 일반열람실, 멀티미디어정보센터, 인문·사회과학자료실, 예술·역사자료실, 문학자료실, 연속간행물실, 의학학술정보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57]
법학전문도서관: 중앙도서관의 분관으로 2007년 12월 개관하였다. 60,000여권의 법학전문도서와 특성화 분야인 문화법 관련도서 6,000여권 및 1,000여종의 저널 등을 구비하고 일반 열람실 1,600석을 보유하고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사 등 법조인들에게 이용증을 발급하여 도서대출과 판례정보 등 다양한 정보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법조인 출신 교수진과 연계해 법률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40]
생활관
조선대학교에는 총 3개의 생활관이 있다.
백학학사: 남·여학사 총 513실에 1,026명을 수용할 수 있는 2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별 네트워크시설, 독서실, 체력단련실, 자치회실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태양열을 이용한 시설을 갖춘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서 2002년 개관하였다.[58]
그린빌리지: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생활관으로 여학사 2개동, 남학사1개동에 148명을 수용할 수 있다.[59] 2006년 국내최초로 신재생에너지 시범마을로 조성되어[60] 태양열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자급자족한다.[61]
글로벌하우스: 2011년 완공되어 지하2층 지상11층 규모에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62] 기숙형 글로벌화 집중교육(GH-ESL, GH-CSL) 실시를 통하여 1~3층에서는 원어민 강사가 상시 배치되어 학기중 2-3학년을 대상으로 영어, 중국어 몰입교육이 이뤄지고 있고[63] 편의점, 멀티미디어실, E-Clinic Center 등을 갖추고 있다.
언어교육원
1996년 어학교육원으로 시작하여 2008년 현재의 언어교육원으로 명칭을 변경, 학부 생활영어·영어회화실습 강의를 전담 운영하고 있으며, 산업체 및 시민을 위한 외국어 강좌 개설 및 외국인 임용관리, 외국인 학생을 위한 한국어 강좌, 베트남 분원 세종 한국어 학당[64], 한국어교사 양성과정[65], CU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등을 운영하고 있다.[66]
평생교육원
1995년에 조선대학교 부설 사회교육원으로 개원하여 2004년에 평생교육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기능을 수행하며 연간 130여개 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현재 민간경비교육, 학점은행제 등을 운영하고 있다.[67]
박물관
1992년 미술대학 건물 2층에 개관하여 1999년 지금의 본관 1층으로 이전하였다. 총면적 706m2에 전시실, 수장고, 유물정리실, 학예연구,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고 소장유물은 2만 7,774점에 이른다.[68] 전시실은 제1전시실(대학사실), 제2전시실(정득주 동문 기증유물실), 제3전시실(호남지역사실)로 나뉜다. 제1전시실에는 조선대학교의 연혁과 민립대학건설 과정, 건립 당시의 영상자료를 전시하고 있고[69] 제2전시실에는 조선대학교 졸업생인 정득주가 기증한 460점의 도자기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69] 제3전시실에는 조선대학교 박물관이 직접 조사하여 밝혀낸 유적과 각 대표 유물 등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호남 지역에 자리 잡고 살아온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69] 이외에 다양한 특별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대학교 미술관입니다.
1989년 미술대학 신관을 건립하면서 함께 개관하였고 1992년 정식으로 미술관 승인을 받았다. 미술대학 건물 1층에 위치해있으며 상설전시실인 '김보현&실비아 올드미술관'은 본관 중앙현관 1층에 위치해있다.[70][71]
조선대학교 전경 (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