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惡人), 죄인(罪人) 그리고 범인(凡人)
지혜 1,1-7; 루카 17,1-6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2019.11.11.; 이기우 신부
2008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1960년대에 많이 나온 미국 서부활극영화들 가운데 제법 유명했던 ‘황야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따온 겁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만주 벌판을 무대로 삼은 이 영화에서는, 고향을 등졌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세 명의 주인공, 즉 현상금 사냥꾼, 살인청부업자, 열차털이강도가 보물을 찾아서 서로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서부활극영화처럼 나옵니다. 배우 정우성이 연기했던 좋은 놈은 돈이 되는 건 다 사냥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명사수였고, 배우 이병헌이 연기했던 나쁜 놈은 총이든 칼이든 무기라면 최고의 솜씨로 다루는 살인청부업자였으며, 배우 송강호가 연기했던 이상한 놈은 순박해 보이지만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만주 벌판에서 말 대신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열차를 털면서 살아가는 강도였습니다.
이 세 명이 보물을 찾겠다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데, 그 추격전 뒤에는 만주 땅에 이미 살고 있던 만주인과 중국인과 조선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과 일본인까지 뒤섞여서 보물을 찾느라고 치열한 활극을 벌입니다. 하지만 보물지도는 일종의 떡밥이었고 그 지도에는 유전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만주에서 석유가 나올 리 없으니 공연히 애꿎은 사람들만 죽이고 만 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닌 재주나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세상질서가 겨우 보물을 차지해 보려는 죄악의 도구로 전락할 때 그 결말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카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이래로 사람들은 손에 든 무기만 돌에서 칼로, 다시 칼에서 총으로, 이제는 총에서 미사일로 달라졌을 뿐 서로 죽고 죽이는 죄악의 역사는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체념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이토록 악으로 기울게 된 것은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는 악한 영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양심을 병들게 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좆는 바람에 죄를 저지르게 만듭니다. 인류 역사는 선으로도 악으로도 기울어질 수 있는 인간 자유를 가운데에 놓고 하느님과 마귀가 한판 승부를 벌이는 황야의 결투장과도 같습니다. 거기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다 나옵니다. 이러한 죄악의 역사에 악인도 나오고 죄인도 나오며, 이들이 보통 사람들 즉 범인들을 괴롭힙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악인이 가장 나쁜 놈입니다. 무거운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습니다. 악인들이 설치면 쥐꼬리만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덩달아 죄를 짓습니다. 이래서 죄를 짓는 사람들은 죄인이라 불러 구분합니다. 악인이야 죄를 짓건 말건 그 죄에 물들지 않으면 되는데도 그 죄에 물들고 마는 이 죄인들은 이상한 놈에 속합니다. 영화에서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이 벌이는 황야의 결투가 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역사의 무대에서 악인과 죄인들이 저지르는 죄는 무수한 사람들을 해치고 괴롭힙니다. 평범한 사람들, 즉 범인들 가운데에서 보다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 송곳처럼 튀어나와 좋은 놈이 됩니다. 범인에 지나지 않던 그들이 악인과 죄인들과 맞서는 의인이 되고 때로는 성인까지 됩니다.
의인이 되고 성인이 되는 이 과정에서는 용서의 덕목도 필요하고 믿음도 필요합니다. 즉, 회개하려는 확실한 행동과 마음이 있다면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을 용서해 주기도 해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도 사람은 악에 물들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선하게도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이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크기로라도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독서인 지혜서는 보통 사람인 범인이 죄가 싫어서 악에 맞서다가 의인이 되고, 의인이 의롭게 살다가 하느님께 대한 눈을 뜨게 되어서 성인까지도 되는 필요한 지혜를 선사합니다. 그 지혜는 정의를 사랑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악한 영혼이나 죄에 얽매인 육신을 멀리 하게 합니다. 거짓을 피하게 하며, 미련한 생각을 주저하지 않고 버리게 하는가 하면,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 하게 합니다. 이러한 지혜를 받은 전형적 인물이 바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마르티노 성인입니다. 그는 4세기 무렵에 활약한 헝가리 출신 군인이었는데, 예비신자가 되어 프랑스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했다가 몹시 추운 어느 겨울밤에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있던 거지에게 자기 외투를 잘라서 입혀준 선행을 계기로 신비 체험을 하게 되었고 사제가 되었다가 투르 지방의 주교가 되어 이단들과 싸우고 수도원을 개혁하는 데 전투적인 자세로 임했습니다. 그 결과,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악인이거나 죄인이 될 수 있었던 직업 출신으로서, 의인으로 살다가 성인품에 오른 프랑스의 수호성인입니다.
첫댓글 성 마르티노를 보면 시작이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딱 맞네요. 선행의 첫걸음이 중요함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