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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마
도암과 첫 출조한 곳은 여느 저수지나 강이 아니었다.
공짜라면 목숨 내걸고 싫어하는 도치씨는 지난 포상자리에서 얻어 마신 술값을 톡톡히 하려고 묘안을 짜낸 곳이다. 물론 징거미새우를 준 대가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도치씨는 낚시터에서 오가는 어떤 것도 가치성을 따지지 않는다. 금은보석같이 귀중품이나 현금을 제외한 모든 것은 서로 주고받는데 제약이 없는 도치씨다. 그래서 얻어 마신 술값만큼 도암을 입질에 흠뻑 취하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 도암을 만난 밤낚시에서는 매너나 인상이 참 안 좋았으나 술자리를 하고 난 후, 도치씨는 도암과 아주 각별하게 친해졌다. 다소 언행표현이 거칠긴 해도 그 속마음만은 따뜻하고 정이 있는 도암이었다.
도암을 도치씨가 심사숙고해서 인솔해 간 곳은 큰 저수지 아래의 물막이였다.
대개 큰 저수지 아래엔 홍수나 어자원 및 기타 제방유실을 차단하기 위해 수십 평 또는 수백평의 물막이 터가 있지만 도암을 데려 간 곳은 본류의 제방에서 거의 100여m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어 얼핏 보기엔 독립형 소류지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암을 데려 간 날의 물막이 는 생각과 전혀 달랐다. 도치씨가 갈 곳이 마땅찮을 때 찾으면 항상 풍성하게 내주던 입질과 달리 아주 옹색했다.
전혀 입질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날 동네청년회에서 가래나무뿌리로 이 물막이 터의 물고기를 싹쓸이 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마을잔치가 있어 이 물막이 터에 가래나무 뿌리의 액을 풀어 싹 쓸어버렸으니 밤새 입질한 번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 도치씨는 지난 조과의 화려했던 기억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고수했다.
밤이슬이 내리고 새벽냉기가 신선하게 수면에서 올라오자 도암이 짧은 낚싯대하나를 달랑 들고 일어섰다.
“자리 옮기려구요?”
도치씨의 말에 도암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여긴 낯을 가리는 지형이오.”
“낯을 가리다니오?”
“지세가 사람의 기와 맞지 않는 지형이란 말이지요. 그래서 처음 온 나와 합이 안 되는 모양이오.”
“풍수지리 말하는 겁니까?”
도암이 물막이 터의 낮은 상류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좌고우저左高右低면 사지死地라. 외세의 기에 민감하네요. 아마 내 기가 너무 넘쳐 이 터가 나를 배척하는 모양이오.”
“그럼 당신 기는 세고 내 기는 개판이라는 뜻이냐? 웃기는 놈이네?”
이렇게 도암에게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마음 약한 도치씨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아하! 역시 철학하시니 선견지명이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말했고, 도암은 물막이 터의 수로를 따라 마치 수초치기처럼 찌를 바짝 내린 낚싯대로 휘적휘적 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암이 소리쳤다.
“입질이 왔소.”
그와 동시에 도암이 낚싯대를 쳐들었다. 낚싯대 끝에 팔랑거리는 작은 물체가 희뿌옇게 보였다. 도치씨가 랜턴을 비추자 도암의 낚싯대 끝에서 팔랑거리는 형체가 선명하게 들어 났다.
씨 고추만한 미꾸라지 한 마리였다.
도치씨는 콧방귀를 뀌며 도암에게 얼른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미꾸라지를 패대기치거나 밟아 죽이기 전에 도암의 행위를 만류하려는 것이다. 그때는 초면이라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도암선생. 그 미꾸리지 밟아 죽이지 마세요. 물에 도로 넣어 주세요.”
도암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낚싯바늘을 물고 팔랑거리는 미꾸라지를 들고 도치씨에게 다가왔다.
“아니 이 귀한 걸 밟아 죽이다니오?”
“네에?”
“이게 사람 한 목숨 살리는 거요.”
“네에? 미꾸라지가요?”
“허허허! 도치씨 아직 조선釣仙되려면 한참 멀었소.”
“네에?”
“이건 미꾸라지가 아니고 이 미꾸리는 우리 조선토종이오.”
“그게 그거 아닙니까? 미꾸라지나 미꾸리나.”
도암이 새벽공기를 가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강의하듯 말했다.
“미꾸라지는 잉어과에 속하지만 미꾸리는 미꾸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요. 미꾸라지는 입수염이 3쌍이지만 미꾸리는 입수염이 5쌍이오. 수염이 덤성덤성하면 신선神仙이라도 신선대접 못 받잖소? 이 미꾸리는 수염이 5쌍이라 산삼에 버금가오. 이 크기 좀 보소. 이 정도 되면 십 수 년은 살았을 것 같소.”
도치씨는 도암의 해박한 지식에 입을 쩍 벌렸다.
도치씨는 도암의 다음 말에 벌린 입을 더 크게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귀한 것이니 도치씨가 이걸 저장해 두시오! 여난이 많은 도치씨에겐 이런 것을 비장해 둬야하오. 하하하합!”
도암이 호탕하게 웃으며 미꾸라지를 바늘에서 쑥 빼 호박잎에 싸서 도치씨에게 내밀었다. 어느 틈에 호박잎까지 따 온 도암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기는커녕 또 한 번 더 입을 귀뿌리까지 찢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걸 저더러 먹으라는 겁니까?”
도치씨가 너무 황당해서 몸을 사리자 도암이 말했다.
“그럼 내가 실례하겠소. 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안한다는데.”
도치씨가 황급히 만류했다.
“안됩니다. 도암선생.”
도암이 막 입속에 집어넣으려는 미꾸라지를 간신히 입언저리에서 멈추고 실눈으로 말했다.
“도치씨가 먹으려오?”
“아, 아닙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그럼?”
“그 미꾸라지를 날로 먹는다는 것은 디스토마 감염으로 가시려는 자살행위입니다.”
도암이 미꾸리지를 입언저리에서 도로 내려놓으며 가소로운 듯 말했다.
“도치씨, 보기보다 참 답답한 사람이오.”
“네에?”
“그렇잖소? 나야 간신히 초등교육 받은 것이 교육의 전부지만 도치씨 같이 최고학부까지 나온 사람이 세상만사 이치를 모르니 답답하다 못해 갑갑하오.”
“네에? 무슨 말씀이이신지?”
도치씨가 묻는 사이 도암은 번개같이 미꾸라지를 입에 넣고 우기적우기적 씹어 꿀꺽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가 기름기와 화색이 가득한 얼굴로 도치씨를 쳐다봤다.
“도치씨 봤지요?”
“네. 큰일났군요.”
“허! 이런? 도치씨는 참 막막하오.”
“네에?”
도암이 근엄하게 말했다.
“디스토만지 뭔지 모르지만 사람이 입으로 톱날처럼 완전히 씹어버렸는데 그 놈이 어떻게 살아남겠소? 그 놈도 내 영양의 일부분일 뿐이지. 안 그렇소? 하하하하 하하하하!”
도암의 너털웃음은 새벽하늘로 솟아오르고 도치씨의 절망 같은 현기증은 땅으로 내려앉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도치씨는 그날 이후 도암이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도치씨는 도암의 철학관 사무실이 가까워 올수록 더 자신감이 생겼다.
아내의 불륜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내를 죽여 버릴 비책을 얻어 낼 수는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암을 어떻게 설득한다?”
도치씨는 도암을 설득할 묘안을 짜느라 하마터면 앞서가던 차를 추돌할 뻔 했다.
첫댓글 도암이 뭐가다르던 보통 사람과는 다른것 같슴니다.
잘보았슴니다.
네..ㅎ
고맙습니다 좋은밤요~
도를 닦는다는 도암선생 미꾸라지를 먹는다는것이
보통 사람을 초월한것 같슴니다.
도치의 가정생활에도 원만한 해결책이 나왔으면 바라는 마음 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 춥슴니다.
건강에 신경 쓰셔야 할것같슴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젠틀맨님.
오늘밤도 아름답고 편한 꿈꾸시는 밤되세요
또한 젠틀맨님도 건강하시구요
이제 낚시친구가 된 도암과 도치
둘사이의 우정이 볼만 합니다.
글쎄요...과연 좋은 우정의 친구가 될수 있을지 저도 의문입니다...ㅋ
듣기만 해도 끔찍합니다.
미꾸라지를 날걸로 먹는 도암
간디스토마 안걸리나~~
ㅋ
천일염님 마음 되게 약하신가보네요....ㅋㅋㅋ
도암이 그랬잖아요...꾹꾹 씹어 먹으면 디스토마 안걸린다구요...ㅋㅋㅋ
소설이니까 그렇지 별일이 많군요.
미꾸라지 먹는것도 도치를 놀라게 하는것 같아요
미꾸라지 저도 날로는 안먹어 봤는데 맛은 꽤 그럴듯한데요? 아니 맛이 아니고 정력에 말이죠...ㅋㅋㅋ
좋은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