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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도주께서 감천동에 태극도장을 건립하셨을 때에는 대강전(大降殿)과 내정(內庭)만 있었으며 마치 그 형국(形局)이 감천만(甘川灣)에서 아미동(阿彌洞) 방향으로 배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는데 세존께서 청학관(靑鶴館)과 백학관(白鶴館)을 새로 건립하시고 진양원(眞養院)을 四층 회관으로 개축(改築)하시자 뱃머리가 바다로 나오는 형상이 되었고, 축대는 마치 파도치는 형상이 되었도다。 훗날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그때 도장의 형국이 마치 뱃머리가 바다로 향하는 모양이 되었고 그래서 내가 부산을 떠나오게 되었느니라。 이때 신명들도 다 따라 나오게 되었으며, 배가 꼭 바다의 배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니라。 상제께서 모든 법(法)은 서울에서 만방으로 나간다고 하셨지 않느냐。」고 이르셨도다。
36. 이어서 말씀하시길 「상제께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 도수를 보실 때 군산(群山)에서 배를 타고, 한편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나니 이것을 수륙병진도수(水陸竝進度數)라 하셨도다。 군산(群山)은 무리 군(群), 뫼 산(山)이니 바로 부산(釜山)이니라。 부산(釜山)은 팔금산(八金山)이니 산이 무리지은 것이라。 이것은 바로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을 말함이니라。」라고 하셨도다。
37. 세존께서 태극도를 나오실 때 부산 해운대(海雲臺), 청도 적천사(川寺), 경주 계림(鷄林), 대구 동화사(桐華寺)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셨도다。 세존께서 청도 적천사에 들렀을 때 한 일화가 전하여지니라。 적천사 앞뜰에는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는데 이 은행나무는 八百여 년 전 보조국사가 적천사를 중건하고 꽂아두었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전하는데 세존께서 적천사에 들어서자 앞뜰에 있는 은행나무가 울기에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승려들이 나와 보니 세존께서 들어오시므로 스님이 「뉘신지요。」 하고 묻자 세존께서 「마늘 장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며 하룻밤을 유숙하고자 하시니 스님들이 조용한 방을 내어주면서 「은행나무가 우는 것을 보면 대인(大人)임에 틀림없도다。」라고 속삭였다고 하니라。 예로부터 이 은행나무가 울면 성인(聖人)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해 왔다고 하니라。
38. 세존께서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付巖洞)에 올라 오셔셔 한동안 머무시다가 다시 인천을 거쳐 김제 모악산 금산사(金山寺)로 가셨도다。 그리고 금산사를 떠나신 후 바로 공주 계룡산 갑사(甲寺)와 신원사(新元寺)를 거쳐 논산 관촉사(灌燭寺)의 은진미륵을 살펴보신 후 군산(群山)으로 가셨다가 다시 금산사를 둘러보신 후 조치원과 수원을 거쳐 무신년(一九六八) 가을에 안양(安養) 견불산(見佛山) 수리사(修理寺)에 이르셨도다。
39. 이때 김기태ㆍ김하정ㆍ김영진ㆍ이종식ㆍ이학녕 등은 세존께서 명하신 바에 따라 지방 도인들을 수습하는 한편 수시로 세존께서 순회하며 공사 행하시는 곳을 찾아와 시종하였도다。세존께서 안양 수리사(修理寺)에 공부실(工夫室)을 마련하시고 四十九일을 한도수로 정하여 불음불식(不飮不食)과 불면불휴(不眠不休)하시며 공부를 하셨도다。이때 김용수가 시종을 들고 안준순 등이 간헐적으로 모시었도다。
40. 세존께서 부산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거쳐 온 사찰은 모두 미륵불과 연관된 사찰들이었도다。 미륵세존이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연고는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보살로부터 계시를 받고 금산사에 미륵전을 세우면서부터 비롯되니라。 진표율사는 十二세에 출가하여 금산사(金山寺) 숭제법사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았으니, 이때 스승이 이르길 「미륵보살께 나아가 지성껏 구하며 참회하여 친히 계법을 받아 세상에 전하라。」 하니라。 이에 율사는 二十七세가 되던 상원(上元) 원년 경자년(庚子年)에 부안 변산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미륵보살상 앞에서 계법을 구하기 위해 정진하니라。 그러나 三년이 지나도록 계법을 받지 못하자 분에 차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니 홀연 청의동자(靑衣童子)가 받아 바위 위에 올려놓는지라。 이 일로 용기를 얻은 율사는 다시 뜻을 세워 삼칠일(三七日)을 기약하고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온몸을 바위에 던져 참회하니 힘줄이 드러나고 피가 흘러 처참한 몰골이 되니라。 七일 째 되는 날 지장보살이 나타나 몸을 어루만지자 손발이 전과 다름없이 되었도다。 율사는 영응(靈應)에 감동하여 더욱 정진하니 삼칠일(三七日)이 되어 드디어 천안(天眼)이 열리고 도솔천 천중(天衆)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니라。 미륵보살이 지장보살을 대동하고 나타나 율사에게 이르시길 「장하다, 대장부여。 이 계를 구하기 위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지성으로 참회함이여。」 하고 계법을 일러주고 두 개의 표찰을 내리니 팔자와 구자가 적혀 있었도다。 율사가 금산 숲에 내려와 금산사를 중수하니 미륵보살께서 다시 내려와 이르시길 「사답(寺畓) 칠두락(七斗落)의 용추(龍湫)를 메워서 그 자리에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상하라。」고 이르시니라。 율사가 용추못을 흙과 돌로 메우고자 하였으나 이곳은 원래 구룡소(九龍沼)라는 전설이 전하는지라 깊이가 한정 없어 도저히 메울 수가 없게 되니라。 율사가 다시 미륵보살께 정성을 드리니 현신하셔서 「숯으로 메우라。」는 계시가 내려지니라。 그러나 이 넓은 연못을 어찌 숯으로 다 메울까 율사가 걱정하자, 미륵보살께서 「이제 세상에 눈병이 돌 터이니 너는 마을로 내려가 용추못에 숯을 한 짐 구워 넣고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나을 것이라고 방을 써 붙여라。」고 이르시니라。 과연 며칠이 지나자 온 마을에 눈병이 돌자 율사는 마을로 내려가 방을 써 붙이게 되니라。 이를 믿으려 하는 자가 없었으나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도 낫지 않자 방법이 없는 병자들은 숯을 구워 용추에 넣고 눈을 씻으니 정말 씻은 듯이 낫는지라。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숯을 구워 넣으니 용추는 순식간에 숯으로 메워지게 되었도다。 율사는 쇳물을 녹여 미륵장륙상을 주조하고 금박을 입혀 금불(金佛)을 조상하고 돌로 된 석련대(石蓮臺)를 놓고 장륙상을 봉안코자 하였으나 하룻밤 사이에 번개로 인하여 십여 장이나 밀려나 버리니라。 다시 원 자리에 옮겨 놓기를 반복하여도 또다시 밀려나 버리니 율사는 잘못되었음을 알고 또다시 미륵보살께 정성을 드려 방법을 청하니 미륵보살께서 「숯 위에 무엇이 놓이겠느냐。 솥과 시루를 얹도록 하라。」고 이르시니라。 그리하여 율사는 연못을 숯으로 메우고 그 위에 시루와 솥을 좌대로 놓고 그 위에 미륵장륙상과 좌우 보불을 조상하여 미륵삼존불상(彌勒三尊佛像)을 봉안(奉安)하고 미륵전을 지어 남쪽 벽에 미륵보살이 하강하여 계를 내리는 모양을 그렸으니 이때가 통일신라시대 혜공왕 二년 병오년(七六六) 五월 一일이니라。
41. 도솔천(兜率天)의 천주(天主) 미륵보살은 인세에 있을 당시 아일다(阿逸多)로써 그는 석가모니불로부터 장차 불운(佛運) 三千년이 다하는 말법의 때가 되면 인세에 다시 하생(下生)하여 미륵불이 되리라는 수기(受記)를 받았다고 『미륵 삼생경』에 전하여지도다。 인간세상이 말법 때를 당하여 온갖 겁재에 휩싸여 진멸할 지경에 처하게 되자 원시의 신성ㆍ불ㆍ보살 등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하게 되었으니 이때 신성ㆍ불ㆍ보살을 회집하여 구천상제(九天上帝)께 하소연한 주체자(主體者)가 바로 미륵보살이니라。
42. 세존께서 수리사(修理寺)에서 공부를 마치시고 서울 구의동(九宜洞)에 거처를 마련하신 후 안준순(安俊淳)ㆍ서대원(徐大源) 등에게 도장 터를 알아보게 하시었도다。
43. 이에 안준순ㆍ서대원 등이 중곡동 용마산(龍馬山)에 와 각자 도장자리를 찾으니라。 안준순이 긴 고랑을 건너 산 중턱 복바위 쪽으로 가고 있는데, 홀연히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너의 주인(主人)을 모시고 오라。」 하는도다。 안준순이 놀라 황급히 물러나와 세존께 이 사실을 고(告)하니 세존께서 임원들을 대동하시고 용마산 중턱 지금의 중곡도장 자리에 이르시니라。 세존께서 주위의 지세를 살펴보시고는 「이곳이 바로 천장길방(天藏吉方)의 자리로다。」 하시고는 땅을 사들이게 하셨도다。
44. 예로부터 용마산 복바위 아래 부근은 근처 동리 사람들에게 신성시되던 곳이었도다。 이 복바위 아래 지금의 영대가 모셔진 자리에서 미륵불(彌勒佛)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고 하는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가끔 목격되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도다。 세존께서 중곡도장의 자리를 잡으실 즈음에 중곡동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이 지역은 새 서울로 불렸도다。
45.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조선이 개국된 후 새로운 도읍지를 찾고자 이곳 용마산 아래까지 왔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도다。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오던 산맥이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작되어 북한강 상류를 타고 광주산맥을 이루었으니, 이 산맥은 도봉산ㆍ북한산ㆍ인왕산의 양(陽) 기운을 이루고, 또 한줄기는 수락산ㆍ불암산ㆍ용마산의 음(陰) 기운을 이루었도다。 태조 이성계의 부탁을 받은 무학은 먼저 당시 도읍지로 유력시되던 계룡산을 둘러보았으나 지기가 발음(發蔭)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다고 하여 다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느니라。 한강 아래에 있는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무학이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작은 산등성이를 넘자 청계천 옆으로 넓게 펼쳐진 들이 한눈에 들어왔도다。 이곳은 불암산에서 용마산에 이르는 산맥 아래에 넓은 평지를 이루는 곳으로 배산임수지(背山臨水地)를 이루고 있었도다。 지세를 살펴보니 용마산이 둘러쳐지고 한강이 돌아들어 오는 천하에 없는 명당이라, 도읍을 이곳에 정하기로 작정하고 용마산 기슭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도다。 그런데 무학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흙 한 줌도 건드리지 말라고 호통을 쳐서 꿈에서 깨어 다시 지세를 잘 살펴보니 이곳은 한 나라의 왕이 앉을 자리가 아니라 천자(天子)가 앉을 자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니라。 그때야 「아차, 실수했구나。」 하여 그 산 이름이 아차산이 되었다는 설이 전하여져 오고 있도다。
46. 산신에게 놀란 무학이 다시 도읍지를 찾아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한 노인이 소를 몰고 가며 말하길「이 미련한 소야。 미련하기가 꼭 무학(無學) 같구나。왜 바른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하며 채찍질을 하였도다。무학대사가 놀라 농부를 바라보니 농부가 다시 말하길「앞으로 십 리는 더 가야 하는데 여기서 머뭇거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하고 소를 보고 꾸짖는도다。 무학이 농부의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십 리를 더 가니 과연 뛰어난 명당이 있어 그곳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전해지니라。 그때 농부가 십 리를 더 가라고 한 자리가 바로 왕십리(往十里)이며, 도읍 터가 바로 경복궁 터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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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에서 발간한 경전인 <대순전경> 에서 修理寺 를 보여드리기 위해 가져왔다...
여기서 '세존' 은 박우당이시다...
(1) 修理寺
우당께서는 그 많고 많은 절들 중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修理寺 에서 49일간 불음불식(不飮不食)과 불면불휴(不眠不休)하시며 공부를 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自問: 왜 修理寺 였을까?
自答: 아래의 '高見遠慮曰智' 의 글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제생 43절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 놓으셨도다.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 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六用三德 三德則天德地德人德也 統合謂之大德也
德義有生殺之權 生殺則陰陽 知此兩端而已
天用地用 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自然心自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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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理寺 의 理 는 성사의 글에 의하면 太極无極 과 관련되어 있다...(붉고 굵게 표시했다.)
理 는 비록 高 하나 ( 理雖高 ) ,
理 는 太極无極 의 겉(表)에서 出하여 ( 出於太極无極之表 ),
理 는 日用事物之間 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 不離乎日用事物之間 )
이 理 는 도주님의 숟가락에 해당한다...
1) 도주님의 숟가락
태극도 - 태극진경 9장 |
52
중하가 어의를 더욱 깨닫지 못함을 사뢰니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 그 끝만을 보면 천마산 꼭대기에 세운 숟가락이 더 높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니라. 모든 임원이 권한만 알고 의무를 모르면 범람(汎濫)하여 본말이 전도되기 쉬우니 너는 협의회 의장으로서 한경이 그리 되지 않도록 책선(責善)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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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가 아니라 숟가락이다...
젓가락까지 있어야 성사의 북채가 된다.
2) 성사의 북채
행록 3장 41절 상제께서 그 후 경석에게 “너의 선묘인 구월산(九月山) 금반사치(金盤死雉)의 혈음(穴蔭)을 옮겨 와야 되리라”고 명하시고 공우에게 북을 치게 하고 말씀하시기를 “이 혈음은 반드시 장풍(長風)을 받아야 발하리라” 하셨도다. 이때 이 도삼(李道三)의 아우 장풍(長豊)이 문득 들어오거늘 공우가 북채를 잠깐 멈추고 “장풍이 오느냐”고 인사를 하는도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이제 그만 그치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11절 그 후에 응종이 상제의 분부를 받고 식혜 아홉 사발을 빚고 태인 신 경원의 집에 가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고 단지 한 개를 마련하여 상제께 드리니 상제께서 식혜를 단지에 쏟아 넣으시니 단지가 꼭 차는지라. 또 상제께서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준비하여 놓으시고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으시고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고 그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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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의 의미가 <수저=북채> 인데, 도주께서는 우당을 천마산 꼭대기에 세운 숟가락에 비유했고, 근본은 태극(=조정산)무극(=강증산) 임을 강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도주께서는 이 수저의 위력을 보여주셨다...
3) 수저의 위력
태극도 - 태극진경 5장 |
88
미원이 고향인 금현은 상제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싶었으나 감히 상고하지 못하고 시종만 하면서 행로의 검문 대응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였을 뿐 아니라, 여관을 잡고 때늦은 수라 준비 등에 애를 쓰니라. 자정이 되어서야 수라상을 올리고 시좌하였는데 상제님께서 수저를 상머리에 한번 정저(整箸)하시자 그 순간 갑자기 뇌우전벽(雷雨電霹)이 천지를 진동하므로 시종들과 여관 사람들이 모두 무섭고 두려워서 몸 둘 바를 모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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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여관은 南一여관이다...(그 반대편에 北一여관이 있다....)
도주께서는 "이제야 신문공사(神門公事)를 마쳤으니 다시 오지 않아도 되겠구나. 과시 보은지지(報恩之地)로다." 하셨고, 이 때 화양동 제5곡의 석문이 열렸다.
여기서 < 神門=두문> 인데, 이 때는 숟가락이 아니라 수저를 사용했다.......(젓가락까지 사용했다는 뜻이다.)
(참고) <神門=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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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신과 백복신이 두문동의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맨 끝에 위치한다....(그림은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읽으면 된다...)
왼쪽 3개의 원 중 마지막 원이 숟가락에 해당한다...
그림에서 숟가락을 찾아드렸으니 , 젓가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젓가락
행록 5장 31절 상제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입혀서 데려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상제 앞에 데려오니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대시 태조 출세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 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상제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보내시니라. 상제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교운 1장 26절 상제께서 정미년에 태인 고현내 행단에 이르러 차 경석에게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與衆同好靡不成 與衆同惡靡不傾治
國安家得人也 亡國敗家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란 글 한 절을 외워 주시고 잘 지키기를 바라시면서 수부(首婦)가 들어서야 하느니라고 이르시니라. 경석이 상제를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姨從妹)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니 이날이 동짓달 초사흗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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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구성된다.
숟가락은 1개이지만, 젓가락은 2개다...따라서 수부(首婦) 의 종류도 2종류이다....
글을 잘 읽어보면 수부(首婦)의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2종류의 수부(首婦) 가 짝짓기를 한다...짝짓기의 결과는 아래의 무당이다.....
(아래)
공사 3장 33절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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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N43-wb5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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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래서 현재 상도에서 하는 무당도수로 춤추고 노래 부르는것이 맞다고 주장을 하시고 싶으신건가~언제까지 춤추고 노래 부르면 선남선녀가 된다고 하실것인가 ~뭐 한다는데 그것이 맞다고 하는데 말릴 생각은 없지만 너무 때로는 진부하지 않는가~별 의미도 없서 보이던데 처음에는 이슈몰이에 이건 뭐지하여 수도인들이 정성금 돈이 많이 들어 왔는데 회계가 명확하지를 않는것을 보아하니 비리괴려가 상당히 의심 스럽더군 영어 닉네임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 구만 !!!!!!열심히 춤추고 노래 부르세 그려 그래서 선남선녀가 되어 보시게나~ 좀 한심스럽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던데 달달이 공짜는 아니니 돈 다른분들 보다도 더 많이 내어 참석하시게 영어 닉네임은 춤추고 노래 부르면 선남선녀가 된다고 하시니까 말일세 ~나도 돌아가신 상도의 수임선감 살아계실때 한 10몇번 정성금을 챙겨서 춤추고 노래 불러 보았지만 그렇케 큰 의미는 없더군 그냥 하루 스트레스 해소용 정도 정성금 초창기부터 좀 많이 들어 왔던데 영어 닉네임은 떡 주무르지는 않았고 그 떡 꽁가루는 떨어지던가 여하튼 상도는 여럿 이슈몰이로 돈을 많이 바랬지 여럿 다단계 상품등 아닌가~그래서 그 물건들로 성공한 돈 좀 번
수도인이 있던가 내가 아는 모 내수는 그 다단계 상품이나 상도에서 나오는 물건중에 잘 팔고 돈좀 번다는 소리를 들었서나 그래서 잘나가는 척을 했지만~지금 현재는 7080라이브 카페에서 도우미 역활을 하는분도 있던데!!!!!! 참 뭐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좀 아이러니 하던데 이것은 팩트라네 뭐던지 있는사실을 갖고 도를 쳐다보시게나 겉포장의 화려함 보다는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그만 하겠네~그려
같은 물을 마서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든다고 합니다....
도판의 역사가 그러한 것이지요....
성사시절부터 그랬으니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5中(=華陽5곡) 이 열린 것으로 보인다는 거지요....
理 를 修하는 자는 理 가 될 것이고,
道 를 修하는 자는 道 가 될 것이니....지화자 조을시구~~~~~~~~~^^
@far-reaching spirit 어떤 물인가에 따라 다르지 우유를 만드는 소의 물은 사람이 주고 독사의 물은 독사 뱀이 알아서 먹겠지~뭔 소리인지 그럼 난 독사라는 의미인데 올해는 을사년이니 올해는 나는 잘되는 일이 많이 생길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