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브라이언 켈리(Bryan Kelly)는 특허 문서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현대사회를 구축한 근본적인 혁신의 시점에 대한 정량적 지표를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섬유, 운송 장비, 기계, 금속 등과 관련한 획기적인 특허는 1900년 이전에 나왔고 광업, 전기장비, 플라스틱 및 고무제품 등은 1950년 이전에 이미 혁신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1970년 이후에 정점을 찍은 산업 분야는 유전자 변형 기술이 주도한 농업과 식품 분야, 의료 장비, 컴퓨터 및 전자 제품뿐이었습니다. 켈리의 연구 결과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발명들이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켈리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검토해 보기 위해 컴퓨터와 전자공학의 눈부신 발전이 없었다는 상상을 해 보기로 하죠. 이는 1970년대 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 당시에 반도체와 PC는 없었지만 새로운 밀과 벼 품종, 효율적인 가스터빈, 대형 컨테이너선, 통신 및 기상위성, 항생제와 백신 등이 새롭게 발명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전자공학이 인간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삶의 편리성을 제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들은 이미 1970년대 이전에 발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전자기술의 확산 덕분에 프로세스의 자동화, 관리, 모니터링 등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전자기술의 등장 이전에도 이러한 기본 요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현대 문명의 물질적 기반은 1880년대의 10년 동안 만들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시기에 석탄 화력 및 수력 발전소, 증기터빈, 변압기, 송배전 시스템, 백열전구, 전기모터 등이 발명되었습니다.
또한 내연기관 자동차, 공기 주입식 고무 타이어, 알루미늄, 철골 마천루 등이 발명되어 도시 구조와 인간의 이동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1886~1888년에는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가 공기 중에 존재하는 전자기파가 빛처럼 반사, 굴절하며 일정한 진동을 가지는 파장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현대 무선통신의 시작입니다.
발명과 혁신 덕분에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획기적인 발명품의 혜택은 부유한 국가에 사는 10억 명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여전히 반복되는 질병과 높은 조기 사망률, 최저 생계 수준에서 고통받고 있는 약 30억 명의 불행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물과 식량의 공급을 늘리는 데는 새롭고 놀라운 발명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개발된 기술의 혜택을 확산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작은 혁신만 있어도 그들의 삶은 크게 개선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잘못된 국가와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혁신의 목록에는 저렴한 백신에서부터 교육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항목들이 포함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가고 있는 놀라운 기술혁신들에 관한 정보를 거의 매일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발명들도 중요하겠지만 단기간에 많은 사람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기술혁신들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발명을 통해 미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과 이미 확립된 기술을 전 세계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안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부자들의 우주여행을 위한 기술개발이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영양 결핍 문제의 해결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명과 혁신을 위한 자원 배분이 미래 수익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만큼은 자본의 논리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술혁신의 우선순위가 결정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홍진기 원장의 기술혁신의 우선순위 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