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전문가칼럼
[에스프레소] 93세 참전용사의 눈물
조선일보
오진영 작가·번역가
입력 2023.07.01. 03:25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7/01/LLA5JKDC3ZDIDDSVHDTSFJXM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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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쪽지
“군번·계급도 없이 북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
지금 누리는 자유·평화에 감사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창건 참전용사에게 제복을 전달하고 있다./KTV
대학 다니던 시절, 또래 남학생들은 ‘군대 빠지는 방법, 방위(18개월)라도 가는 방법’을 종종 화제로 올렸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군 면제다, 애 하나로는 안 되고 둘은 낳아야 면제다, 비만이나 눈 나쁘면 방위다 등등. 군대 안 가거나 조금이라도 짧게 가는 방법을 둘러싼 정보 교환은 남자 동창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모였다 하면 군대 피하는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한 번도, ‘저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참 안됐구나’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당시 80년대는 신입 사원 공개 모집에 남자만 뽑는다고 써 있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30개월만 다녀오면 되는데 어지간히 엄살들 떠네. 우리는 평생을 2등 국민으로 사는구먼” 이라고 속으로 가소롭게 여겼었다.
KLO부대 출신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편지./TV조선
그 시절 남자 동창들을 향한 나의 냉소를 진심으로 뉘우친 건 97년생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였다. 뜨거워지기 시작한 5월의 태양 아래 훈련소 연병장에 서 있던 우리 아들. 다들 내 아들처럼 잘생기고 앳된 남자아이들이 두려움과 불안이 역력한 얼굴로 줄 서있던 모습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내 손을 꽉 잡은 아들 손에서 느껴지던 축축한 땀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6·25 전쟁 발발 73주년이었던 지난 25일 뉴스에서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잠든 유엔기념공원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입대하던 날 내 아들처럼 긴장으로 차가운 땀이 밴 주먹을 쥐고 이역만리 먼 나라에 왔을 열아홉, 스무 살의 그들. 이곳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어 영영 집에 못 돌아간 남자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 어느 구석에 붙은 줄도 몰랐을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고 남은 평생 슬퍼했을 부모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날 열린 73주년 행사에서는 ‘켈로부대(KLO)’ 참전용사 출신 이창건(93)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쓴 쪽지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이 말한 것처럼 켈로부대원 같은 북파 공작원들은 오랜 세월 국가로부터 참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휴전선을 넘는 모든 무력도발은 1953년 정전협정 위반이었기에 이름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작전에 동원된 공작원들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았다.
지난 2004년에 국회가 북파공작원 특별법을 제정할 때까지 그들은 내내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켈로부대는 미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제외되었다가 2021년에야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제정돼 비로소 정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북한공작원 특별법을 발의했던 김성호 전 국회의원의 책 <북파공작원의 진실>(2022, 가을밤)에는 당시 집권당 의원이 추진했건만 난관에 부딪쳐 물거품이 될 위기였던 북파공작원 특별법이 16대 국회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가까스로 통과됐던 비화가 나온다.
지금의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은 6·25를 ‘미중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 당의 국회의원들은 핑크색 노란색 가발을 쓰고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부르더니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국민을 겁박한다. 그러는 민주당에게도 한때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받을 권리를 찾아주려 한 정치인과 그에 화답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나는 그런 시절의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민주당과, “6·25는 국제전”이었고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며 어민과 수산물 상인의 숨통을 짓누르는 오늘의 민주당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민주당이 지금 같은 괴물이 되기 전 모습을 되찾는 날은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