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팔이 약사가 기타를 연주하는
하얀 레코드판 위로
한 아이가 돌면
걸음마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오선지에 적힌 외팔이의 과거를
한 페이지씩 뒤로 넘기면
검게 변해버리는 장미,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날 때
멈추는 음악, 검은 장미의
전원 줄이 끊어진 듯 문은 닫히고
검은 레코드판 위로 한 줌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잿빛 음악이
무책임한 허공을 읽는다.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십시오
안내방송이 끝나기 전
먼저 도착한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태어나자마자 걸친 인간의 가죽이
낯설어서 울면,
목에서 흘러나오는
짐승의 잡음을 따라
다른 영아들도 울었다
우는 자에게 위안은
더 우는 자를 보는 것
전생의 후생 사이를 감지하는
나의 두개골은 밀봉되기를 거부했고
뒤늦게 나타난 간호사가
기껏 흘린 피를 지워주었다
차지해야할 자리를 잡지 못한
오감의 무중력 속
나는 갈라진 틈의 눈으로 울다가
낯선 요람에서 잠을 깨기도 했다
울음마저 피곤하게 느낄 때
내게 열이는 것
보일 듯 말 듯 소중해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
기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려는
책장과 옷장과 침대가 말없이
싸운다
젖은 옷을 입은 채 나를 말리기 위해
회의적인 귀를 바닥에 대면
잠든 나에게 속삭이는 누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진 못한 소식들이
무언가에 부딪혀
움푹해진 순간으로 흘러든다
예전의 마른 상태로 돌아가는 소매
팔보다 긴 그림자를 흔드는 소매
나조차 없는느낌의 눈 속엔
아무도 없는데
속삭임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 내 귓속엔
하루를 순환하는 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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