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를 삼키면 투명해질까
: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다섯 명의 목소리
펴낸곳 (주)우리학교 | 글 이진솔 | 펴낸날 2025년 2월 12일 | 정가 16,800원 | 판형 135*210mm | 쪽수 252쪽
ISBN 979-11-6755-317-1 (43300)
분류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문/사회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섭식장애 #식이장애 #폭식 #거식 #인터뷰집
■ 책 소개
“병이 삶을 살아갈 자격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사자로서, 연구자로서, 또 상담사로서 담아낸
섭식장애를 앓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
회복을 향한 분투를 담은 진솔한 기록물이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병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
‘섭식장애’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다이어트를 떠올리곤 한다. ‘성공적인’ 다이어트 뒤에 ‘다이어트 강박증’이나 ‘바프 부작용’ 같은 제목을 단 채 공유되는 경험담들이 여지없이 섭식장애 증상이기 때문이다. 폭식을 하고, 폭식을 한 이후에는 죄책감을 느끼며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며 거식을 한다. 이 때문에 섭식장애에는 으레 ‘혹독한 다이어트 뒤에 따라오는 부작용’이라는 인식이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섭식장애가 단지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병이라면, 어째서 목표한 체중에 이르러서도 다이어트를 멈추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괴로움과 수치심을 안고서도 음식을 쓸어 담듯이 먹고 토하고 마는 걸까? 우리는 여기서부터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15년 동안 섭식장애를 앓았던 당사자이자, 병에 대한 이해가 희박한 상황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뛰어든 연구자이자,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상담사인 저자 이진솔이 섭식장애 당사자 다섯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은 이들과의 오랜 인터뷰를 거쳐 섭식장애를 만난 계기에서부터 증상, 병을 앓으면서 겪은 고통, 스스로를 회복하고자 하는 분투가 섬세하게 실려 있다. 당사자만이 나눌 수 있는 진솔한 공감과, 연구자로서 더할 수 있는 사려 깊은 분석은 이제껏 자극적인 어휘와 이미지로만 소개됐던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이 책이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또 이들의 회복을 돕고자 하는 주변인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섭식장애는 ‘다이어트에 미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아니다.
■ 추천사
“섭식장애를 앓는 다섯 명의 목소리를 성실하게 섬세하게 담아낸 이 책은 ‘먹토’가 다이어트에 목매는 이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라는 통념을 부수고 그 조각들을 보여 준다. 다이어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라고.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이 굶고, 먹은 것을 토하고, 식욕 억제제를 복용하는 가운데 더없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한 책이다.”
_강지나(교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프로아나 문화를 전시하는’ 선정적인 보도 방식을 넘어
어떻게 섭식장애를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옥한 토대를 제시한다.”
_박지니(‘섭식장애 인식 주간’ 기획자, 『삼키기 연습』 저자)
■ 출판사 서평
당사자이자 연구자, 상담사로서 기록한
‘섭식장애’의 다른 얼굴들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구토를 한 이후 약 15년간 섭식장애를 앓았다. 한 번이었던 구토는 두 번, 세 번, 매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먹는 행위 자체가 두려워졌다. 극단적인 제한은 곧 통제 불가능한 폭식으로 옮겨 갔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앉은 자리에서 치킨, 피자, 햄버거, 비빔밥, 떡볶이,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과자를 해치웠다. 식도 끝까지 차오른 음식들 때문에 숨 쉬기 힘들어지면 어김없이 토했다. 수치심이, 죄책감이 들었다. 용기를 내 병원에 갔을 땐 “지금도 충분히 말랐는데 왜 먹고 토해요?”라는 말이 날아왔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가 왜 먹는 걸 두려워하는지, 왜 구토를 멈출 수 없는지.
10여 년을 그렇게 병 한가운데에서 보낸 뒤, 그는 섭식장애를 털어놓고 병에서 멀어지겠다는 다짐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그저 어디에든 이야기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아무도 보지 않을 줄 알았던 영상을, 뜻밖에도 수많은 사람이 봤다. 이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3년 뒤인 2020년, 섭식장애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상담심리치료학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아픔을 공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갔으면,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경험을 넘어서는 가치를 찾고 싶었다.
이 책은 그렇게 완성된 석사 학위 논문을 토대로 했다.
섭식장애 당사자에서 연구자가 됐고, 이제는 상담사가 된 사람.
저자 이진솔은 논문을 쓰기 위해 섭식장애를 앓는 다섯 사람을 인터뷰했고, 책을 엮기 위해 다시 두 사람을 더 인터뷰했다. 그렇게 해서 책에는 총 다섯 명(기존 인터뷰 참여자 세 명, 새로운 인터뷰 참여자 두 명)의 인터뷰가 담겼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고, 27세에서 33세 사이이며,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섭식장애를 앓았다. 때로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음식을 먹었고, 때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운동을 했다. 때로는 둘 사이를 오가면서 먹은 것을 모조리 토했다. 사람들은 ‘먹토(먹고 토하기)’나 ‘씹뱉(씹고 뱉기)’이 다이어트에 목매는 이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 통념은 곧 무너져 내린다.
이 책은 이제까지 자극적인 어휘와 이미지로만 소개됐던 ‘섭식장애’라는 병을 당사자로서, 연구자로서, 또 상담사로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담아낸 결과물이자, 헤어 나오기 힘든 병의 한가운데에서 회복을 향해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분투를 담은 진솔한 기록물이자, 무엇보다도 ‘다이어트’에 가려 제대로 이름 불리지 못했던 병에 대한 사려 깊은 탐구다.
다이어트에 가려
제대로 이름 불리지 못했던 병
마음속 깊은 곳에 대한 탐사
“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날 선 평가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일보다 거울 속 내 몸이 어떤지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 결국 섭식장애는 다솜의 유일한 친구이자 전부가 되었다. 살이 빠지면 친구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곁에 남은 건 섭식장애뿐이었다.”
‘섭식장애’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다이어트다. 몸이 하나의 자본이 된 세상, ‘클린한’ 식단을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등 체중 조절 행동이 곧 ‘자기 관리’가 된 세상, 누가 얼마 만에 얼마나 많은 살을 어떻게 뺐는지가 ‘비포-애프터’ 사진으로 끊임없이 화제에 오르는 세상에서는 자연스러운 연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인터뷰 참여자들 역시 시작은 다이어트였다. 다이어트를 마음먹은 이유야 제각기 달랐지만, 섭식장애를 만난 계기만큼은 하나였다. 실제로 ‘성공적인’ 다이어트 뒤에 섭식장애를 앓게 된 사람들이 있다. ‘다이어트 강박증’이나 ‘바프 부작용’ 같은 제목을 단 채 공유되는 경험담들은 여지없이 섭식장애 증상이다. 극단적으로 적은 양에 탄수화물, 염분 등이 제한된 식단을 하면서 충족되지 못한 채 쌓인 식욕이 폭식을 부르고, 폭식을 한 이후에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운동 강박으로, 거식으로, 거식에서 다시 폭식으로 이어지는 굴레.
하지만 섭식장애가 단지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병이라면 어째서 목표한 체중에 이르러서도 다이어트를 멈추지 못하는 걸까? 다이어트를 멈추지 못하는 것을 넘어, 어째서 괴로움과 자책감, 수치심을 안고서도 음식을 쓸어 담듯이 먹고 또 끝내는 토하고 마는 걸까? 우리는 여기서부터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 아니다, 그가 다이어트를 하게 된 이유부터 생각해야 한다. 놀림받고 상처받았던 윤슬,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혼자 이불 속에서 눈물을 삼키던 어린 윤슬부터 만나야 한다.”
섭식장애를 ‘혹독한 다이어트 뒤에 따라오는 부작용’ 내지 ‘다이어트에 미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만 생각하면 이 병을 이해할 길이 없다. 토할 때 쾌감과 해방감을 느낀다는 다운을, 엄마의 애정을 붙들기 위해 어떻게든 체중을 지키고자 하는 바다를 이해할 길이 없다. 여기 실린 것은 다섯 명의 목소리일 뿐이지만, 이마저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날이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섭식장애’라는 병을 이해할 길이 없다.
“살찌지 않으려면 계속 토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살이 쪄서 이 모든 걸 잃느니 죽는 게 나았다. 바다에게 섭식장애는 병이기 이전에 행복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병을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으면서
이 책은 섭식장애를 극복(완치)한 이야기가 아니다. 섭식장애를 앓던 ‘비포’에서 말끔하게 빠져나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애프터’로 옮겨 간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뷰 참여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여전히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어떤 병은 ‘병’이라고 인정받는 것마저 어렵다. 당연히 치료는 머나먼 이야기가 된다. 한국에서 섭식장애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나 연구, 치료 체계가 부재한 상황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회복되기를 바랐지만, 인터뷰 참여자들이 긴긴 세월 동안 병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때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비급여 치료가 기본이기 때문에), 때로는 개개인을 고려하지 않은 일면적인 치료 방식에 실망해서, 때로는 섭식장애에 무지한 의료진의 말에 상처받아서 치료를 그만두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비포-애프터’ 이미지에는 결코 담기지 못할 구불구불하고 긴 눈물 자국의 이야기다. 이제까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만 그려졌던 ‘섭식장애’에 대한 입체적인 도면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곪은 마음을 제 몸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가슴 아픈 초상이기도 하다.
이 책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 명의 참여자와 웃고 울며 나눈 수십 시간 동안의 인터뷰는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 서사로 회귀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연민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다만 병이 삶을 살아갈 자격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낫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완치가 희미하게 느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된다고, 담담한 문장을 건넬 뿐.
병을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