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파리와 나 ]
장연희
날파리를 잡았다. 눈앞에 휙 지나는 것을 손으로 쳤을 뿐인데 그런다.
하찮은 목숨을 ‘파리 목숨’ 같다고 하더니만 그 앞에 ‘날’ 자를 붙이니 더 하찮은 목숨이 된 듯하다.
손에 묻은 하루살이 날파리 사체를 휴지로 닦아 내다보니 ‘나서 죽었다’는 입장에서는
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닮았다.
그러나 내 손에 죽은 날파리야 비명횡사가 되겠지만 그 아니라도 어째 죽어도 죽을 목숨이라 치자.
그럼 나는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날파리와 다를까, 또는 좀 나을까?
하나 마나 뻔한 생각이 오늘은 좀 무게 있게 다가온다.
손에는 날파리 사체 무게보다 쓱 지나간 휴지 감촉이 더 진한데
바로 그런 하루살이 인생에 내 삶을 얹어보는 건 너무 비장하거나
감정 과잉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생각 못 할 건 또 무어리.
내가 처음 죽음이란 걸 느낀 곳은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이 흐르는 청송이었다.
외가에 놀러 갔던 날이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단다.
아이 엄마가 아들을 붙잡고 아무것아, 아무것아! 어서 집에 가자고 하며
모래밭에 축 늘어진 아들을 흔들며 애간장이 끊어지게 울었다.
그 소리가 여름 해가 어스름 지는 강둑에 죽 늘어선 구경꾼들 사이를 휘감았는데 길고도 처절했다.
또 그 소리가 내 귀에도 꽂히며 슬픔, 호기심, 무서움 등등의 복잡한 감정을 마구 일으켰으나
외할머니 품에 꼭 안겨 한잠 자고 나니 가벼워졌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다.
또 중3 때 제일 친한 친구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도립병원에서 수혈하고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겨울 방학 동안 병세가 더욱 깊어졌는지 얼굴과 입술 색이 검푸르게 변했는데도
우리는 눈빛으로 반가움을 나누고 입학식 때 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죽음이 얼마나 지척에 와 있는지 모르던 시절의 백혈병이었다.
그리고는 증조모, 조부, 조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부모님들과 고모, 고모부들이 뒤를 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죽음에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사이, 친동생이 죽기도 하고 같은 사촌들 간이라도 우리 큰애와 각별하게 친하던 이질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으나 장례식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일상이라는 물질이 애통의 골을 메웠다.
빈틈없이 단단하게.
그렇다면 나의 오늘이 하루살이의 여러 번에 걸친 끊임없는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이라는 아주 지루한 이름이 사실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슬아슬하게
기가 막힌 행운으로 비켜 가고 있는 날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는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언제 누구 손이 휙 지나갈지, 또는 누구 팔에 부딪힐지 모르는
참 위태로운 순간을 이렇게 태연히 보내는 지금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근래에 이 대단한 행운과 축복을 뼈저리게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이 하루가 그저 대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이나 하고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저 쪽박을 차도 마땅할 일이다.
예배당 바닥에 무릎 꿇어 회개하지 않아도 오늘은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 팔 걷어붙이고 봉사활동에 나설 수도 없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진정성 있는 얼굴로 누구에게 거수경례할 수도 없으니 일단 그런 줄 알기나 하고 살아보기로 하자.
그동안 빈둥빈둥, 어슬렁거린 시간 하나 꺼내어 데면데면 살아온 먼 형제들에게
전화도 하고 이번 추석에는 일껏 만나서 밥이라도 먹어야지.
그것도 못 하면 아까 죽은 날파리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으리오.
(202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