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한 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파란 돌
한 강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은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문지, 2013)
서울의 겨울
한강
어느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 하던
강물소리,
들려주겠네
(한강 등단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 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 한강
1970년 광주 출생.
한승원 작가의 딸.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ㅡ 노벨 위원회 한강 작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첫댓글 오늘 시내에갔다가 서점에들려 채식주의자 책을 찿으니 매진 되어 폰번호적어놓고 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