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난 3월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장장 6시간에 걸친 전체회의 끝에 ‘2월24일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 당시 노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 중립 의무를 위반했으나 사전선거운동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선관위의 결론을 근거로 3월9일 민주당 주도 하에 탄핵이 발의돼 12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선관위의 결정이 탄핵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선관위가 청와대와 민주당에 보낸 공문 내용이 서로 다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관위가 정치적으로 줄타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전체회의에서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또 어떻게 해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취재팀은 선관위원들에 대한 취재에 나섰다. 그러던 중 9명의 선관위원의 한 명인 임재경 위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3월15일 오후 서울 종로에 위치한 그의 개인사무실에서 있었다. 임위원은 인터뷰에 앞서 “선관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회의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당시의 대체적인 상황이나 나의 소신은 당당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 최근 선관위가 대통령과 민주당에 보낸 공문 내용이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나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아직 공문을 확인해 보지 않았다. 선관위 측에 공문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 결정에 참여한 선관위원이 공문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선관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선관위에 상시근무하므로 공문 내용을 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7명은 비상임이므로 일부러 확인해 보지 않는 이상 공문 내용을 세세히 알 수 없다.”
선관위 역사상 최대의 변혁기
― 전체회의에서 내린 결론에 대해 선관위원들이 공문 작성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관위원은 법을 위반했느냐 아니냐만 결정하고 실제 공문 작성과 발송은 사무처에서 담당한다. 물론 대략적인 결론(원칙)이 선관위원회의에서 내려지지만 문구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선관위원이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날 9시30분께 투표로 결정난 후 유지담 선관위원장이 내게 ‘어떤 표현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 왔다. 그러나 나는 할 말이 없다며 그냥 나왔다. 다른 위원들에게도 물어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구체적인 문안을 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두 일어서서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에는 법을 위반했다는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에 보낸 공문에는 ‘위반’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선관위가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중 플레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만약 공문이 그런 식으로 다르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국민이 이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더구나 탄핵의 실마리가 된 중요한 결정 아닌가.”
― 아무튼, 결과적으로 선관위의 3월3일 결정은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된 것 같다.
“이번 결정으로 선관위는 1963년 창설된 이래 40년 역사 속에서 최대의 변혁기에 봉착했고, 또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탄핵 국면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결정이 탄핵의 실마리가 됐기 때문에 지금 공문 내용까지 문제되는 것 아닌가. 뭔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선관위의 결정이나 내용을 문서화하는 것이 이런 엄청난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감해야 한다.”
― 일반적으로 선관위는 사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꼭 만장일치로 결론내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표결까지 안 가고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번에 18세부터 참정권을 주는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나는 18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표결 결과 1대 8이었다.”
― 지난 3월3일 전체회의 때 장장 6시간에 걸쳐 토론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당일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이날 회의는 오후 3시에 시작해 오후 9시30분쯤에 끝났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격론이 벌어졌고, 워낙 의견이 팽팽히 맞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투표까지 가게 됐다.”
― 토론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2월24일 노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선거 중립 의무 규정에 위반됐는지 여부, 둘째는 이 발언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나는 둘 다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비록 공무원의 수장이지만 선출직으로 정당 가입도 가능하고 광범위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이중적 의미의 공무원이다. 또 이날 대통령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명한 것 아닌가. 이미 대법원 판례도 있다. 더구나 ‘합법적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까지 있었다.”
― 반대 논리는 어떤 것이었는가.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공무원의 수장인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면 다른 공무원들도 왜 자신들은 안 되느냐고 반발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또 이날 발언은 공중파 TV를 통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당원도 아닌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대통령이 언행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가장 투명하다. 과거 군사정권 때나 권위주의 시대에는 앞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뒤로 공작정치, 공작선거를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모두 말로써 대중 앞에 표현한다. 뒤에서 몰래 하는 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정치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통령의 모든 언행이 잘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날 회의 때 내 결론은 ‘법 위반은 아니지만 일반국민은 이런 헌법상의 구체적 규정을 잘못 이해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대통령이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 결국 각각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토론이 길지 않았다. 오히려 사전선거운동 여부에 관한 토론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그만큼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법 해석에 대한 문제였는데, 헌법 정신을 강조하는 쪽과 하위 실정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 헌법 정신과 하위 실정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헌법 정신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 정신에 입각해 국민의 참정권을 최대한 확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위 역시 고도의 정치적 활동을 하는 존재로서 국민에게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대통령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유권자들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면 된다. 대통령이 아무 말도 못 하게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숨어서 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정치가 오히려 투명
― 선관위원장은 왜 이날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나?
“하나는 6대 2로, 다른 하나는 5대 3으로 결론났다. 만약 4대 4의 결론이 났더라면 위원장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을 터이지만 위원장이 어디에 투표하느냐에 관계 없이 결론났기 때문에 위원장은 투표하지 않았다. 그래도 선관위의 장인데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는 않은 것 아닌가.”
― 이날 투표 결과에 대해 회의가 끝난 후 선관위원들의 분위기는 어땠는가.
“선관위원마다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틀 전 있었던 간담회(소위) 때의 결론과 다르게 났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간담회의 결론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 이틀 전 간담회의 결론이라니, 무슨 말인가. 전체회의 이전에 또 다른 회의가 있었나?
“사무국에서 전화 연락을 받고 3월1일 간담회가 열렸다. 사무총장을 비롯해 5명의 선관위원이 모였다. 사무국 관계자들은 간담회장에는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대기한 것으로 안다. 이날 간담회는 약 3시간 동안 계속됐고, 활발한 토론이 오갔다.”
― 어떤 내용이었나?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하다. 전체회의에 앞서 사전에 모여 이견을 조율해 보자는 것이었다. 3시간 동안의 토론 끝에 결론이 났다. ‘대통령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 결론에 모두 양해했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지적한 사항이 있었다. 자칫 선관위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돼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야당이 노대통령의 발언이 불법이라고 그토록 확신한다면 검찰에 직접 고발하면 되지 않느냐? 굳이 선관위를 거칠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을 근거로 하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임위원의 그런 지적에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특별히 의견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냥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 그런데 왜 본회의의 결론은 다르게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간담회의 결론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소위의 토론 내용이나 결론은 보고서를 통해서나 최소한 구두로라도 선관위원장에게 보고된다. 또 본회의 때도 이날 논의된 내용이 보고되며, 이를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담회의 토론 내용이나 결론에 대해 일언반구 이야기가 없었다. 간담회의 결론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을 처리할 것이었으면 왜 굳이 쉬는 날 나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 그렇다면 이틀 만에 결론이 뒤집혔다는 얘기인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간담회의 결론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 5명의 선관위원이 모두 결론에 동의했는데 이런 투표 결과가 나와 의아한 부분이 있다.”
― 의아한 부분이라면, 이틀 동안 어떤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선관위원인 내가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언론에서 해야 할 일 아닌가.”
小委 결정에 대한 사후 처리 아쉬워
―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참 모호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선관위를 계속 압박했는데, 그런 외부적 요인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법과 양심에 따라 결정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판단이고 보니 영향받을 수 있다. 더구나 지난 1년 동안 정치권, 언론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노무현 때리기’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급기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언급들도 자주 나왔다. 기성 체제는 노대통령의 출신, 배경 등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헌법기관, 행정부서, 정치권의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에 대한 예의나 존경의 차원을 떠나 대통령은 국민 참정권의 결정체다.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국민 참정권 행사에 대한 모독이다.”
― 야당에서 선관위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했는데, 이번 결정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가.
“어제(14일) 저녁 모 방송국 토론회에 나온 한 대학 교수가 ‘민주당에서 선관위원장을 협박했다. 2월24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면 선관위를 탄핵하겠다는 것이었다’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집행부가 아니고 비상임이어서 실제로 그런 협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전에도 선관위 탄핵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왔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그런 압력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선관위가 그런 협박을 받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수치다. 역사에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외압 때문에 결정 바뀌었다면 역사적 수치
선관위가 대통령과 민주당에 발송한 공문.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위사진)는 ‘위반’이라는 문구가 보이지 않으나, 민주당에 발송한 공문에는 ‘위반’이라고 적시돼 있다.
― 본회의 때 분위기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예전 회의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흘렀고, 축 처진 분위기였다. 유위원장의 표정 역시 긴장되고 어두웠다. 유위원장이 회의 개시를 선언했지만 몇 분 동안 침묵만 흘렀다. 참 어색한 정적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그제서야 반대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회의에 들어올 때부터 위원들이 어떤 확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확신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드는 어떤 분위기나 느낌이었다.”
―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느낌이다. 다만 지난해 12월에도 여의도 ‘노사모’ 모임에 대통령이 참석해 시민혁명 운운한 전력이 있고, 그동안 여러 차례 선거법에 저촉될 만한 언행이 있는 등 소위 ‘죄질이 나쁘다느니’ ‘불법 선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 결국 대통령의 지위라든지 정치활동에 대한 엇갈린 견해차이인데, 그 자리에서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도 논의됐나?
“아직 선관위에서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 사견을 밝히자면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요즘 미국을 봐라. 미국 대통령은 1년 내내 선거운동을 한다. 예비선거라는 합법적 공간을 통해 공화당을 지원하지 않는가.”
― 미국은 그렇지만 어찌 됐든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정보나 비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국민에 대한 호소력도 제일 크다. 그런 존재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면 모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선관위는 참정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에도 맞다고 생각한다. 야당은 대통령을 이런저런 법으로 꽁꽁 묶어두려고만 하면 안 된다. 야당도 언젠가는 정권을 잡을 것 아닌가.”
첫댓글매국노에게 땅 찾아주는 한국 법조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을 합법적 쿠데타로 판결해 주었던 한국 법조계. 친일파에 기생하던 놈들과 군사독재에 기생하던 인간들이 또아리틀고 있는 한국 선관위와 헌법재판소. 그런 인간끼리 만들어 놓은 법이 누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인가..는 뻔한 것 아닐까요?
첫댓글 매국노에게 땅 찾아주는 한국 법조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을 합법적 쿠데타로 판결해 주었던 한국 법조계. 친일파에 기생하던 놈들과 군사독재에 기생하던 인간들이 또아리틀고 있는 한국 선관위와 헌법재판소. 그런 인간끼리 만들어 놓은 법이 누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인가..는 뻔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