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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관계 인간관계에 관한 옴니버스 수필이라지만 그냥 그런 내 이야기들
1. 엄마
오늘
아침에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나왔다. 그래도 밖에 나와선 허허 웃는다. 누구에게든
그렇게 신경질을 부렸다간 사람 취급 못 받을 것 당연지사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왜 못된 아들의 신경질을 받아주어야 하나.
날이 저물기 시작할 때쯤 하루 종일 꾹꾹 누르고 있던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꾸역 구역 기어오른다. 그렇다고 흔한 전화사 광고와 같이 "엄마, 미안해요"라기엔 아들은 용기가 부족하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먹을 것도 안 챙겨주고 신경질도 심하신 자신의 엄마를 소개했다. 자책감을 덜어 주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런 얘기는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된다.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서는 아들을 엄마는 오늘도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2. 형
학교 앞에서 형을 만났다. 쓰던 지갑을 잃어버린 뒤에 새로 장만하지 않았는데 왠지 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깝다기 보다는 지갑 같은 것은 으례히 누가 선물로 주는 것이지 자기가 쓸 지갑을 직접 사는 것은 좀 처량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때 형을 보았을 때, 나는 형의 지갑을 계속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 나는 지갑이 없는데...'
' 형, 지갑 좋다'
' 나도
지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 에휴, 난 왜 지갑을 잃어버렸나'
미친척 하고 30분 정도 졸졸 따라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형이 끝내, " 지갑 사줄까?" 라는, 내가 너무도 간절히 원했던 말을 해 주어서 나는 큰 소리로 " 응!!!" 이라 말하고 방긋 웃었다.
오늘 나는 형에게 지갑을 선물 받았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던 지폐를 지갑에 차곡 차곡 넣으니 내 마음도 반듯해 지는 거 같다. 그리고 돈 씀씀이도 신중하게 될 것 같다. 형이 복돈도 넣어 주었다. 그리고 사실은 구두도 사주었다.
형이란 건 참 키울 때는 힘들어도 키워 놓으면 남는 장사인 것 같다.
3. 친구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황령산 야간 드라이브. 남자들끼리 가기엔 힘든 코스이지만 - 말하기 어려운 어떤 압박 때문에 - 꿋꿋이 올라갔다.
오늘 밤의 BGM은 성시경의 ' 넌 감동이었어' 이다.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흘려 들었을 때 꽤 근사한 노래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틀었다.
감동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감동이 올 때까지 반복해서 듣기로 나는 결정했다. 우리는 감동이 오기를 기다리며 ' 넌 감동이었어'를 반복해서 들으며 묵묵히 황령산을 올랐다.
산 중턱 곳곳에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런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우리의 마음은 더욱 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우리는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그것도 가까스로), 묵묵히 각자의 로맨스를 추억한다.
야경은 멋졌다. 내가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난다면 그리워하게 될 풍경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불빛들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장소들을 찾아내고, 서로의 집이 어디쯤 있는지도 가리켜 보고 더 먼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어디인지 짚어 보았다.
가을은 어느덧 깊어져 있었고 산에서 부는 바람은 더욱 쌀쌀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따뜻한 커피를 - 그러나 다른 두 넘은 ' 말벌 100km' 따위를 마시다니 너무해! 같이 온 내가 바보지 - 마셨다.
4. 주영이
주영이를 기다린다. 밖에는 비가 추적 추적 내리고 나는 지금 몇 가지 일들로 골머리가 좀 아프지만 주영이를 만나기로 했다. 주영이는 며칠 후에 고시 공부를 하러 서울에 간다. 합격하려면 일, 이년쯤은 책만 파야 할 것이고 그 정도의 시간은 사람과 사람을 거의 세상의 끝과 끝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최후의 만찬을 즐겨야 한다. 주영이와의 기억 속에서 우리 둘은 늘 뭔가를 먹고 있다. 피자를 먹고 까르보나라를 먹고 그녀의 남자 친구는 너무 느끼해서 못 먹는 뉴욕 치즈 케익을 먹는다. 부대찌개를 먹고 밀면을 먹고 설렁탕을 먹는다.
먹고 난 다음에 입의 할 일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이야기도 주영이에게는 쉬웠다. 주영이도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이야기라든가 변비가 있어서 이주일에 한 번 볼일을... 뭐 그런 이야기. 아무튼 여러모로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상에 자신의 전부를 털어놓을 수 있는 한 사람만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이 그녀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영이는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해서 혼자 길에 누워서 분명히 나에게 자기가 성공하면 나에게 돈을 뿌리겠다고 했다. 운전 기사로 써 준다고 했던가? 사람의 기억은 유리한 쪽으로 점점 변형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술이 깼던 다음날엔 물론 주영이는 아무 것도 기억 안난다고 했지만.
아무튼 대학교 4학년을 다니면서 얼굴을 맞대고 생활했다는 것이 마음에 많은 자국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재무관리 시간이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같이 커피 마시러 도망 나왔던 기억과 F는 확실하게 남았다.
4년 전, 예비 대학에서 처음 보았던 키만 크고 비쩍 말랐던 그 아이가 이제 꿈을 이루려고 떠난다니 그녀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 주어야겠다. 물론 이제는 제발 좀 마르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도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녀의 문제가 있는 장(臟)에도! 주영아 파이팅!
5. 친척들
다가오는 추석 성묘의 전야제격인 벌초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시골로
갔다. 개강 앞두고 안 그래도 신경 날카로운 이 때에 벌초를 해야 한다는 것은 복잡한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 이상의 것이다. 풀 한포기를 뜯어내기 전에,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이 폐해와 전통과 구습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자로서의 갈등과 이 행위의 경제적 가치와 효과에 대한 의문 등등의 내가 이 일을 하기 싫은 열 가지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하만 하는 것이다.
고맙게도 비가 그친 후의 선선한 날씨는 그나마 한 가지 이유를 덜어주었고 힘든 일을 마치고 먹은 오리 백숙의 포만감도 나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당숙들의 필수 코스인 훌라를 구경만 해야 했던 작년까지과 다르게 당당하게 옆자리에 형과 맞고 판을 벌여 2만원을 따서 기뻤는데 그것은 2만원 어치의 기쁨에 당당하게 고스톱을 칠 수 있는 기쁨을 더한 것이었다.
1년에 두어번 명절 때나 보는 친척들이 내 삶에서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1년에 단 하루라도 만나서 즐겁고 반가운 사람이라면 그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오늘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6. 인터넷
하루에 맞고를 몇 시간이나 치는지 모른다. TV보면서 치고 밥 먹으면서 치고 바람 쐬러 밖에 나갔다가 무심코 들어간 오락실에서 난 어느덧 맞고를 치고 있다.
인생 낭비하는 맞고, 그러나 달콤한 그 악마의 유혹에 나는 영혼을 팔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많은 요구들이 나를 재촉하는데 정작 맞딱드리기엔 해답이 없고 외면하면 삶이 권태롭다.
그런 내게 맞고 월드는 진정한 판타지였다. 단순 명료한 룰 만이 존재하고 나는 오로지 피를 먹을 것인가 광을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혹은 고와 스톱 사이의 조금 더 난해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점심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지 않은가!
내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이 현실 세계는 어쩌면 가짜일지도 모르겠다. 맞고 월드가 진짜이고 현실은 가짜다!
쓰리고에 피박에 광박에 멍따를 해내는 순간 나는 비로소 한 존재로서의 의식이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 맞고 월드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으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얼간이들이 가짜의 현실 세계를 떠나 진짜의 맞고 월드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에는 침묵 속의 공감보다
좋은 것은 없다, 고 <생의 한 가운데서>의 루이제린져가 말한다. 그러나 사람도
많고 목적도 많고 시간은 오히려 부족하니 누구든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침묵 속의
공감보다는 말을 건네기를 택한다. 느끼기 전에 말하고 듣기 전에 말한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음성언어의 발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수용하기 이전에
자기를 표출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속도를 빠르게 하고 내용을 많게 할수록 그것의
노이즈(Noise)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성급하게 상대방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욕구 때문에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누구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외감에 빠질 수 있다.
평소에 조금씩 써 두었던 글들 중에서 내 주위의 여러 인간관계와 관련있는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그런 후에 내가 느낀 것은 그 각각의 관계에 신중하게 공들여 대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저절로 유지되고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늘 곁에 있는 가족도, 친구들도, 선배도, 후배도 모두가 그렇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읽은 <오솔길>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자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재구성 해 본다면 이렇다.
나는 그 해 여름 우리집 뒷산의 작은 오솔길을 발견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작은 꽃들과 나무들이 반갑게 나를 반기며 인사하는 듯했고 나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모든 걱정과 근심들이 사라졌다.
여름 내내 시간 날 때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고 그 후로 직장 생활로 바빠져 그 길을 찾지 못하는 동안에도 일상에 지쳐 고단할 때마다 아름다운 그 오솔길을 떠올리고 다시 그 길을 걸을 날을 기대하며 힘을 얻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바쁜 일상다반사에 시달리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 지나도록 그 길을 한번 찾아갈 수 없었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다시 그 아름다운 오솔길을 향해 뒷산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작은 그 오솔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사이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이었다.
작자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난 오솔길 또한 소통하지 않으면 그렇게 단절되어 버릴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었다. 너와 나 사이에도 작은 오솔길이 있다고.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지고 빠르게 돌아간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만 한다.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참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이 타인에 대한 신중한 경청의 시간과 꾸준한 소통의 노력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 부족한 것 같아 덧붙이면,
=> 어린왕자가 수 만명의 애들과 다름없다는 여우의 인식은 교통,통신의 발달로 사회의 통합이 확산됨과 더불어 제도권 교육등에 의한 사회구성원들의 획일화라는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여우가 어린왕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되었다는 전제 하에 오랜 시간을 통해 '길들이기'를 제안하는 것으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관계 맺음을 위한 능동적 활동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으나 그 전제에는 다소의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의미와 그것에 대한 노력의 선후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았으며 또한 둘 사이의 필연성 또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대부분의 노력은 어떤 의미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반대로 아무리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 하여도 그 의미는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을 쏟는 것이지 그 동안의 노력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첫댓글 제출기한 엄수가 채점에 중요한 요소인지 모르겠으나 24일 자정 이전에 올린 것이 석연치 않아 새벽까지 수정하였다오. 그리고 <불교예술과 미의식> <논리와 논술>을 수강하였소.
교주님께 여쭈으니 통합과제물은 하나만 올리면 된다 하시더이다. 채점단님들 본 댓글을 확인하셨으면 댓글 달아주시오. 혹 이미 채점이 끝나 확인이 없으면 교주님께 다시 아뢰어야 할 듯.
다양한 의사소통방법중 젤로 좋은 것은 침묵속의 공감... 근데 그 침묵속의 공감 역시 "우리" 라는 단위로 묶여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런 우리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닐지.. 새로운 형식... 좋네요... 수고 하셨습니다..(18)
젤로 좋다는 것이 아니외다 ㅡ.ㅡ;;;
*ㅁ.ㅁ* 잘 봤다... 도발을 잘하는군[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