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별세 / 소설가 최인호 사망이유 침샘암
최인호(1945년 10월 17일서울 출생 ~ 2013년 9월 25일 향년 67세) 는 해방둥이로 태어나 3남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10살 때 부친이 돌아가셔 홀어머니 슬하의 어려운 성장과정 속에서도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72년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재학시절엔 늘 형의 교복을 물려받아 기운 헌 옷으로 줄여 입는 통에 '걸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고 1학년 때 잡지 '學園'에 '하늘은 마냥 힘찬 노래를 부르고 새는 퍼런 심연을 그리고 앉았는 데..'로 시작하는 '휴식'이란 詩를 투고한 것이 우수작으로 당선다. 시인 박두진은 심사평에서 고등학교 1학년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정된 정신자세라며 더욱 정진하라고 격찬했다. 이듬해인 1963년 신춘문예에 단편 〈벽 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대학생 때인 1967년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해 11월 〈2와 1/2〉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어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심리변화나 기발한 사건을 다룬 〈술꾼〉·〈모범동화〉·〈처세술개론〉 등을 발표했다.
1972년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상업적 대중작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별들의 고향〉은 한 젊은 여성의 성적 편력을 통해 1970년대 소비문화의 문제점을 드러낸 애정소설이며, 뒤에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도 〈뭘 잃으신 게 없으십니까?〉(1971)·〈미개인〉(1971)에서는 물질사회를 비판했고, 〈타인의 방〉(1973)에서는 현대인의 내면의식을 통해 소외된 삶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소설집으로 〈별들의 고향〉(1973)·〈우리들의 시대〉(1973)·〈내마음의 풍차〉(1975)·〈천국의 계단〉(1979)·〈고래사냥〉(1983)·〈잃어버린 왕국〉(1986) 등을 펴냈고, 수필집으로 〈누가 천재를 죽였나〉(1978)·〈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1987)·〈길없는 길〉(1993) 등이 있다. 1972년 현대문학상 신인상, 1982년 이상문학상, 1986년 대종상 각본상, 2011년 제14회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말년에 기독교에 귀의후 '영혼의 새벽'을 썼고 투병 즁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두고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소설이란 자평을 달았다. 병상의 마지막 순간에 '주님이 오셨다.' 며 마침표를 찍었다.
최인호는 지병인 침샘암으로 고생하셨다는데, 아직 세상을 뜨기엔 이른 연세라 안타깝기만 하다. 주요 뉴스로 떠오르고, 장례식이 치러지고, 정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정작 젊은 층 사이에는 최인호 작가가 누구지,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작가 최인호는 누가 뭐래도 7080세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예를 들면 1983년 한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고래사냥`과`깊고 푸른 밤`이 동시에 올랐고, 두 작품은 당시 일인자였던 배창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국의 젊은 감수성이 최인호 신드롬으로 수렴되던 한 시절이었다.
`별들의 고향`으로 대표되는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도시문학 또는 대중소설을 표방했다. 절망하는 젊음의 책임을 사회에 묻지 않고 개별자 스스로에게 전가하고,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로 여성을 도구화해버린 점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최인호표 브랜드가 될 만큼 당대 사회의 감수성을 잘 그린 작가였다. 후기로 갈수록 작가는 통속적 소비문학 대신 문학의 진정성으로 승부를 건다. 장편`상도(商道)`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3백여만 부가 팔릴 만큼 주인공`임상옥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라고 깨쳐주었고, 작은 이익보다는 의와 도를 따르는 것이 더 큰 이윤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독자들은 무한 신뢰를 보냈던 것이다.
문학의 위상은 옛만 못하고 문학계의 큰별은 자꾸만 사라져간다. 애잔한 마음일랑 작가의 작품을 들춰보는 걸로 대신해야겠다. 샘터사에 장장 36 년간이나 연재했던 연작소설`가족`이 오늘 같은 날 제격이겠다. 작가가 연재를 시작했던 서른의 나이에 네 살이었던, 이제는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딸 다혜와의 추억은 어찌하고 그리 일찍 가신 걸까. 경쾌하고 청량하던 청년 작가는 곁에 없고, 그의 소설로 위로받던 중년의 독자만 우두커니 남아 애달픈 제 청춘을 소급할 따름이다.
유신 정권아래 삭막하고 거칠었던 세상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젊은이들의 한숨과 좌절을 담은 그의 글은 하길종·이장희·배창호 등 시대를 대표한 젊은 감독들의 손을 거치면서 한 시절을 풍미하며 대한민국 영화계의 역사에 남ㅇ르 명작으로 재탄생하기도 하며 충무로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바보들의 행진'(1975)인데 당시에는 지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억눌린 욕구를 분출할 채널이 터무니 없이 부족했던 시대라, 그 작품은 당시 젊은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반향을 일으켰다. 70년대의 수작 중 하나인 바보들의 행진.. 무기한 늘어지던 휴강, 장발단속, 그리고 입대로 이어지는 독재의 그늘을 잘 담아내어 큰 공감을 얻으며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탄생했었다.
소설가 최인호가 일간스포츠에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우리나라 젊은층의 한숨과 억눌린 불만을 담아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별들의 고향>이 대박을 치자 평단은 최인호를 대중인기작가라고 몰아붙였고 이에 발끈한 최인호가 시사성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며 나선 것이었는데 <바보들의 행진>은 연재 1개월만에 일간스포츠의 판매부수를 2배로 증가시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충무로의 영화사와 감독들이 최인호와 손잡으려고 땀나게 뛰어다니게 될 정도였고 '바보들의 행진' 속편 격인 '병태와 영자'(1979. 하길종 감독)에서는 최인호가 직접 각본을 썼다. 영화는 군에서 제대한 병태가 결혼을 앞둔 영자와의 로맨스를 다뤄 전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히트를 치게 된다.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별들의 고향'(1974) 또한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남아있을 정도인데 그만큼 소설가 최인호의 손끝에서 나온 글은 우리나라 역사에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어 한 시대를 함께 해 왔다. 그리고 잘 알려진 작품중 하나인 고래사냥 또한 최인호의 작품이니 알면 알수록 그가 창조한 세계가 우리나라 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최인호 별세 / 소설가 최인호 사망이유 침샘암
이장호 감독은 "최인호는 한국영화에 터닝포인트를 만든 작가"라며 "청년 문화를 선도한 그는 애정을 가지고 70-80년대 영화계와 문학계를 이끌었다"고 말하며 최인호의 존재감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창호 감독은 이어서 "어떻게 보면 지금 청년문화의 원류는 최인호에서 비롯됐다"며 "그는 우울한 시대를 문화적으로 견디며 복합적으로 저항할 줄 알았으며, 시대를 앞선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금의 20-30대도 알만한 명작 商道..
"상업이란 이익(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德(덕-사랑)를 나누는 것
장사란 이익(利)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人)을 남기는 것"
드라마로도 크게 히트쳤던 상도에 나오는 가장유명한 구절이다. 상도 책과 드라마는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고, 상도 책은 침대옆에 두고두고 봐도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구절들이 참 많다. 최인호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그 글들이 영화화되고,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인호 별세 / 소설가 최인호 사망이유 침샘암
그리고 최인호 사망 원인인 침샘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모이는데 5년간의 침샘암 투병 끝에 별세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어 장례가 치러졌다.
침샘암이란?
첫댓글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