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가 추석 연휴를 평정한 건 무대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제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산 권력을 향해 국민 위해 목숨 걸고 꾸짖은
때문만도 아니다.
----KBS의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 출연한
가수 나훈아(왼쪽)와 지난 29일 대전지방검찰청을 방문하여
검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밝은 모습을 보인 윤석열검찰총장----
노련한 전략가에, 대중의 심금을 쥐락펴락하는 데
도가 튼 나훈아 ‘큰 그림’에 시청자들이 맥없이
포획됐다고 보는 쪽이 맞는다.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쇼의 시작은
위기감이었다.
명분은 코로나 사태로 절망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는 거였지만, 위기에 빠진 건 나훈아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방송 출연 없이 1년에 한 번 대형 콘서트로
존재감을 과시해온 그에게 코로나는 뜻밖의
걸림돌이었다.
----코로나19는 뜻밖의 걸림돌----
유례없는 트로트 붐도 나훈아를 압박했다.
지상파까지 트로트 전쟁에 뛰어든 가운데 임영웅,
영탁 등 젊은 스타들이 트로트 시장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나훈아 명곡 ‘울긴 왜 울어’를 이찬원 노래로
아는 2030이 얼마나 많던가.
콘크리트 지지층인 6070 여인들마저 장민호,
김호중에 목을 매는 판이었다.
뭣보다 신곡을 띄워야 했다.
“거듭나야 할” KBS로 승부수를 던진 게
드라마가 됐다.
괴력의 카리스마와 퍼포먼스로 ‘원조’의 진가를
보여줬고, 노개런티에 나라 훈장도 거절했다는
나훈아가 거대 방송과 권력을 풍자하며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외치니 전국이 뒤집어졌다.
----나훈아의 세상이 왜 이래----
KBS는 제작비 십수 억을 쏟아붓고도 ‘
재방송·VOD·중간광고 금지’라는 나훈아 지침을
이행하느라 적자가 났지만, 정작 나훈아는
유튜브를 휩쓴 신곡들로 실익을 챙기는 중이다.
나훈아가 시들해질 즈음 윤석열이 등판했다.
권력과 여권의 동시다발적 압박에 식물 총장으로
말라비틀어질 순간, 그 또한 승부수를 던졌으니
‘나훈아 쇼’만큼 진기한 구경거리가 됐다.
하이에나들 우글대는 국감장을 무대로 택한 것이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국감장을 뒤흔든 윤석열총장----
놀랍게도 대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데는
나훈아 못지않았다.
“중상모략이란 단어는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표현”
이란 말로 충청도식 결기를 드러내더니,
“임기를 다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었다”
는 한마디로 ‘적진’을 교란시켰다.
“그냥 편하게 살지 왜 이렇게까지 (정의롭게)
살아왔는지…”
라는 거구 총장의 탄식은 그를 마뜩찮아했던
사람들마저 동요시켰다.
후폭풍이 거셌다.
일찍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무협지성
어록을 남긴 바 있는 윤석열식 거침없는 언변에,
회사든 나라든 권력의 똘마니들이라면 신물 난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열광했다.
----대검찰청 앞의 화환----
대검찰청 앞에 늘어선 화환에 화들짝 놀란 이들이
“윤서방파 두목” “대검 나이트”라며 갖은
심통을 부렸으나, 조폭 나오고 검사 나오는 영화가
1000만 가는 법이다.
나훈아와 윤석열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본심을 알 리 만무하고, 반짝 인기는 파도와
같아서 대개 허무하게 잦아든다.
다만, 둘의 닮은 점은 보인다.
권력에 굽히는 걸 사나이 최대 굴욕이라 여긴다.
코드도, 좌우도 없다.
나훈아 신곡 중 ‘엄니’는 군부 정권 시절 만든
노래다.
----5.18 광주 사태때 부른 엄니----
5·18 광주 사태 때 자식 잃은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경상도 출신인 그가 전라도 사투리로
노랫말을 쓰고 불렀다.
“엄니 엄니 워째서 울어쌌소,
나 여그 있는디 왜 운당가”로 시작한다.
니 편 내 편 없고 외곬이기는 윤석열도 그렇다.
죄가 있으면 천하의 권세라도 좌우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렀고, 그래서 핍박받는 중이다.
어느 점잖은 교수님은
“오죽하면 신기루 같은 저 사내들에게 열광할까”
혀를 찼지만, 그 답을 폭주하는 댓글 속에서
찾았다.
----신기루 같은 저들 ----
“이런 형 하나 있으면 좋겠다.
직장도, 집도 이 생에선 구할 수 없어 홀로
우는 내게 등이라도 기댈 든든한
형 하나 있으면 좋겠다.”
김윤덕 문화부장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