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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고유 명절인 팔월한가위가 며칠전 꿈결처럼 지나가고 나자 길고 긴 낮이
쥐꼬리 만큼씩 짧아지자 밤이 그 쥐꼬리를 주워다가 붙였는지 밤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 선다.
한로(寒露) !
24 절기 중 17 번째 절후가 아닌가?
한로가 다가서니 여름철새들은 부랴부랴 봇짐을 싸서 어린 자식 앞세우고는
허둥지둥 남녘으로 떠나자 임무 교대를 하듯 겨울철새의 척후병인 기러기가
선발대인양 줄지어 날아와서 빈 자리를 메운다.
한로가 오면 처음 5 일은 기러기가 날아오고 다음 5 일에는 참새가 줄어들며
조개가 제철을 만나서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고 마지막 5 일부터는 국화꽃이
꽃망울를 터트린다.
뿐만 아니라 이 때가 되면 농부들은 오곡을 추수하느라고 그야말로 오줌 누고
거시기 볼 사이도 없이 바빠져서 눈썹을 휘날리며 발바닥에서는 고무신 탄내가
나도록 동분서주(東奔西走) 동동걸음질을 쳐야만 한다.
바뿐 것은 농부들 뿐만 아니라 여름내내 눈이시리도록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무잎들도
푸른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는 알록달록 오색찬란한 색동옷으로 갈아 입어 산은 마치
산불이라도 난듯 황홀하게 단풍이 들어서 단풍구경을 오라고 산들이 우리들를 유혹 한다.
낮이 쥐꼬리 만큼 짧아지면서 태양이 냉수축신처럼 식어지자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한기를 느낄만큼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새벽에는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사과나 배 감 같은 가을 과일은 꿀단지를 뒤집어 쓴듯 달콤하게 익어 가고 꽃 중에 꽃
국화꽃은 꽃동산을 갈무리 하듯 향기 그윽한 국화향을 토해내며 흐드러지게 피여나서
최후에 만찬을 즐기는 꿀벌들의 나래짓이 바쁘다.
국화꽃이 유혹하는 것이 어디 꿀벌들 뿐인가?
국화꽃은 시인들 마음 또한 들뜨게 만든다.
가을 하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은 국화꽃이기에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 난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서쪽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을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는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
국화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서 키는 60~90cm정도 자라고 이파리는 서로
어긋나며 새의 날개깃처럼 끝은 갈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화꽃은 10월에 피기 시작해서 서리가 오는 11 월까지 60 일 정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는 꽃인데 은근과 끈기를 지닌 꽃이다.
국화꽃은 다른꽃과는 달리 먹어도 좋은 꽃이기에 한약방에서는 감기 두통 현기증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단국(甘菊)이라고 하며 약재로도 널리 쓰이는데 서리를 맞은지
보름 정도 지난 국화꽃이 더 약효가 있다고 선호 한다.
국화꽃에는 휘방성 정유성분이 많이 함유 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각종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고 혈압과 중풍 예방에도 효험이 있어서 눈이 밝아지면서 두통에도 좋고
미용 효과도 있어서 국화차나 국화주뿐만 아니라 베갯 속으로 말린 국화꽃이 널리 이용 된다.
특히나 두통에는 황국화꽃이 좋고 눈에는 흰국화꽃이 좋다고 하니 알고 사용하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국화꽃은 대국과 소국으로 분류하는데 국화주나 국화차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소국으로서 소국 중에서도 씨가 영글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들국화는 국화주는 괜찮지만 국화차로는 독성이 강해서 적합하지가 않다고 하니
애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 하다.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꽃도 아름답지만 그윽한 향기는 익어 가을를 몽땅 머금은듯 오묘함을 지니고 있는 꽃이다.
예전에는 관상용으로 주로 재배를 했지만 요즘은 국화차나 국화주를 담그기 위해서
농가에서 많이 재배 하고 있다.
옛부터 지혜로운 우리 조상님들은 국화꽃의 효능을 일찍히 아시고는 국화차와
국화주를 널리 애용해 왔다.
국화는 고려시대부터 사대부와 문인들이 완상의 대상이였슴은 문헌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국화주 하면 내게도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한토막 있다.
유년시절 옆집에 사시는 박참봉 어른은 술을 무척이나 즐기셨는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필 때면 진달래주를 담가서 즐기셨고 앵두와 살구가 익을 때면 앵두와 살구주를 또
즐기셨으며 국화꽃이 피는 가을이면 노란 국화꽃을 따다가 말려서 국화주를 담가 놓고는
겨울이 가고 진달래가 피는 봄이 올 때까지 장복을 하며 즐기셨다.
박참봉 어른은 서리가 내리고 국화꽃이 만발할 때면 만사 재쳐 놓고 주르막 걸머 매고
꽃봉우리처럼 예쁜 손녀딸 영숙이를 앞세우고는 서리를 맞은 국화꽃이 좋다면서
서리가 내린 추운 아침인데도 국화꽃을 따러 나서시는데 국화꽃이 질 때까지 하루도
쉬질 않고 매일 국화꽃을 따오시기에 가을이면 박참봉 어른 마당에는 들국화꽃이 마당 가득
널려 그윽한 들국화 향기가 옆집인 우리집까지 진동을 해서 들녘으로 들국화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들국화 향기를 원 없이 맞곤 했다.
드디어 된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국화꽃이 모두 지고나면 박참봉 어른은 드디어
국화주를 담근다.
국화주는 찹쌀로 담가야 제 맛이라면서 참봉 어른은 해마다 찰벼를 두어마지기씩이나 심으셨다.
국화주를 담그는 날은 이웃 아주머니들이 하얀 치마저고리에 삼베 수건을 쓰고는 국화주를
담그러 참봉 어른댁으로 몰려오는데 아낙네들이 서너 패로 갈라서 국화주를 담그는 모습은
마치 잔치집인양 온 집안이 법석 거린다.
한 패는 찹쌀을 씻어서 고두밥을 짓고 또 한 패는 누룩을 찧고 남어지분들은 국화주를
담글 독을 씻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어 댄다.
그 때 쯤이면 추수도 끝난지라 국화주를 어떻게 담그는지 궁금해서 담 넘어로 짧은
모가지를 길게 빼고는 군침을 흘리면서 구경을 하노라면
고두밥이 쪄갈 때면 박참봉 어른은 고두밥을 식히려는지 일꾼을 시켜서 안마당에 커다란
멍석을 펴 놓는다.
드디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두밥이 멍석 가득 널릴 때면 참봉 어른은
창고에서 생지황과 구기자 뿌리를 꺼내 영숙이에게 다듬으라고 하시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툇마루에 앉아서 국화주 생각에 군침을 삼킨다.
처음으로 국화주를 담그러 오신 개똥이 할머니는 국화주를 담그는데 국화꽃이 보이질 않자
궁금하다는듯 참봉 어른을 쳐다보면서
" 영감님! 올해도 국화꽃은 많이 따셨납유? "
" 올 해는 가을 날씨가 좋아서 작년보다 더 많이 땄구먼유 "
" 영감님! 국화주를 담그는데 국화꽃은 왜 안 꺼내 놓으시구 생지황과 구기자 뿌리만 꺼내 놓으세유? "
그 말을 들은 촉새 같은 상철이 할머니가 퉁바리를 주려는지 개똥이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 이 할망구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국화꽃은 술이 익어야 넣지 아무 때나 넣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여직 모른단 말이야 "
" 그렇군요... 내가 국화주는 처음으로 담궈보는지라 잘 몰라서 물어봤구먼유 "
개똥 할머니는 낙심천만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면서 구시렁 거리자
" 알아야 면장을 한다구 모르시면 궁굼한 것이 당연하지유... 국화꽃은 술이 익을 때 넣어야
국화주가 제 맛이 나는구먼유 "
박참봉 어른은 개똥이 할머니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자
" 개똥 할멈은 솜씨가 좋아서 금년에는 국화주가 더 맛나겠는걸 " "
퉁바리를 준 상철이 할머니도 그제서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든지 개똥이 할머니를 추켜 세운다.
고두밥이 싸늘하게 식자 할머니들이 고두밥에다 잘게 찧은 누룩을 섞어서 골고루
버무리자 젊은 아낙들은 버무린 고두밥을 바가지 가득 퍼 담아 광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술독에 개미가 먹이를 물어드리듯 몽땅 쏟아 붓자 참봉댁은 미리 준비한 정갈한 물을
적당량 독에 붓고는 그 위에 생지황과 구기자 뿌리를 넣으려는지 영숙이를 부르자
달덩이 같은 영숙이는 터질듯 부풀어 오른 가슴을 불쑥 내밀고는 생지황과 구기자 뿌리가
담긴 바구니를 안고는 암반 같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할머니께 갖다 드리자
참봉댁은 국화주를 담그는 기술자인양 생지황과 구기자 뿌리를 정성스럽게 술독 속에
넣고는 장독소래를 덮는다.
드디어 국화주 담그는 일이 모두 끝이 났다.
"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
툇마루에 앉아서 국화주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참봉 어른은 그제서야 부시시
일어서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하시드니 팔자걸음으로 위엄 있게 사랑방으로 들어가신다.
해마다 그랬듯이 금년에도 국화주를 담그는 일이 끝이나자 젊은 아낙들과 영숙이는 안마당에
솥뚜껑을 걸고는 국화전을 부치려는지 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할머니들은 마루에서 국화전을
부칠 찹쌀가루 반죽을 시작하자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참봉네 머슴인 주서방은 장작을
한아름 끌어 안고는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불공 보다 잿밥에 뜻을둔 땡땡이 스님처럼 아낙네들은
국화전 부치는 일에 물씬 흥이 묻어 난다.
이네 안마당에서는 장작에 불을 부치자 솥뚜껑 속에서는 들기름이 지글지글 거리기 시작하면서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자 꽃 파는 아가씨처럼 국화꽃을 머리에 인 국화전이 솥뚜껑
속에서 머금직 스럽게 익어 간다.
이 때쯤이면 마당에는 술상이 차려지고 참봉 어른은 주서방을 불러서 이웃분들을 초청을 한다.
주서방이 마을를 한바퀴 돌고나자 고소한 들기름 냄새를 맞으면서 콧구멍을 벌렁 거리던
이웃들은 이제나 저제나 불러주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군침을 삼키면서 꾸역꾸역
참봉네 집으로 모여들어 참봉네 집은 금새 잔치집이라도 된냥 마을분들로 시끌벅적
거리기 시작 한다.
드디어 방마다 해 묵은 국화주에 국화전이 차려진 머금직스런 술상을 달덩이 같은 영숙이와
머슴이 상을 나른다.
초겨울 정다운 이웃끼리 오순도순 모여사는 한적한 산골마을에는 때 아닌 국화주 잔치로
권커니 작커니 국화주 초겨울 해가 짧기만 하다.
젊은 나도 이웃에 산다고 영숙이가 초청을 한다.
감히 어른들 틈에는 끼이지를 못 하고 화전을 부치는 아주머니 옆에 죽치고 앉아서 영숙이가
부어주는 국화주에 국화전을 안주로 맛을 보니 입안 가득 향기 그윽한 국화향이 퍼지면서
목젓을 울리고 국화주가 황홀하게 넘어가는데 그야말로 가을를 먹는듯 꿀 맛이다.
얼마나 맛이 좋은지 둘이 먹다가 둘이 다 죽어도 모를 맛이다.
어느새 산골에도 쌩쌩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무르익자 헐벗은 나무가지 끝에는 고추처럼
매서운 동장군이 매달려 노니느라고 나뭇가지를 못살게 하자 나무가지는 춥다고 앵앵거리면서
울음을 토해 놓는다.
이를 본 하나님은 나무들이 불쌍해 보였던지 나뭇가지에 겨울옷을 입히려는지 해질녘 먹구름을
몰고오드니 땅거미가 내리자 봄바람에 복사꽃잎이 날리듯 함박꽃 같은 함박눈이 소리없이 흰옷을
입히기 시작 한다.
동지섣달 긴긴밤 마실을 갖다와서 자도 코가 비틀어지도록 잘 수가 있기에 저녁을 먹고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마실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옆집 참봉 어른네 집에서 갑자기 향기 그윽한
국화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주위를 휘둘러 보니 해질녁 국화주를 떴는지 퇴비장에는 술독에서
꺼낸 국화꽃이 한무더기 나자뻐져 있다.
버려진 국화꽃 찌꺼기를 바라보노라니 지난 초겨울 맛을 본 향기 그윽한 국화주 생각이 굴뚝 같다.
함박눈은 펑펑 쏟아져 온 세상천지는 백설로 분분한데 국화주를 마시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국화주 생각에 금새 입안 가득 군침이 고여서 목줄을 타고는 꼴깍꼴깍 군침만 넘어 간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고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고 아무리 국화주
생각이 굴뚝 같지만 없는 국화주를 어떻게 맛을 볼 수가 있단 말인가?
국화주를 생각하면서 눈길을 걷노라니 어느새 친구네집 대문 앞까지 당도 했다.
대문을 열고 친구가 모여 있는 방문 앞으로 가니
댓돌 위에는 이리저리 나자뻐진 신발짝들이 쏟아지는 눈을 뒤집어 쓰고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주인을 지키는 충견(忠犬)처럼 꼼짝도 않고 주인이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고 방안에서는
무엇이 그리도 재미 있는지 깔깔깔 거리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친구들 목소리가
방문을 빠져 나온다.
벌컥 방문을 여니 방안 가득 친구들이 모여 있는데 사냥을 잘해서 수사반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덕수가 추워서 그런지 시렁에 산토끼를 두마리를 매달아 놓고는 가죽을 벗기고 있고
그 옆에는 조수인양 칠복이와 재식이가 토끼를 붙잡고 있다가 나를 보드니 칠복이 놈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 야이 썩을놈아! 추워 죽겠다 빨리 문 닫고 들어와라 "
" 내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문을 닫고 들어가냐 ? "
" 들어 오고 문을 닫 든지 닫고 들어 오든지 그 것은 니놈이 알아서 하고 얼른 문이나 닫아라 "
" 미친놈! 밖에 있는 놈도 있는데 방안에서 뭐가 춥다고 호들갑이냐? "
퉁바리를 주면서 방으로 들어서는데
" 아무리 급해도 대갈빼기에 눈이나 털고 들어와라"
칠복이 썩을놈이 또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머리와 옷에 쌓인 눈을 털고는 방으로 들어서는데 토끼 껍줄을 몽땅 벗긴 덕수가 토끼가죽으로
귀거리를 만든다며 가죽을 벽에 붙이려는지 가죽을 들고 나오면서
" 그렇찮아도 왜 안 오나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다 "
" 토끼는 누가 잡았냐? "
" 내가 잡았다 왜? "
서리하는데는 선수지만 사냥이라면 멧새도 한마리 못 잡는 칠복이가 제놈이 잡았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자랑하듯 씨부렁 거린다.
" 네가 산토끼를 잡았다고? 혹시 그 토끼 눈 까진 토끼 아니냐? "
" 이 썩을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봐라 봐! 토끼눈까리가 까졌나 안까졌나 "
칠복이가 껍줄을 벗긴 토끼눈을 내 앞으로 드리밀면서 확인해 보라고 꼴갑을 떤다.
" 네놈이 토끼를 잡았다면 내 손에 장을 끓이겠다 "
" 너 그말 책임질 수 있냐? "
" 나도 사낸데 한 입으로 두 말 하겠냐 "
" 그것 참 잘 됐다 손에 장을 끓일 필요는 없고 술이 없으니 대신 술을 사와라 "
" 정말로 니놈이 토끼를 잡았다면 당연히 술은 내가 사 야지 "
그 때 가죽을 벽에 붙인 덕수가 들어 온다.
" 덕수야! 이 토끼 정말로 칠복이가 잡았냐? "
덕수는 대답은 하질 않고 나와 칠복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빙그래 웃기만 한다.
" 그자식! 내가 잡은 토끼라는데 왜 자꾸만 입 아프게 묻냐 "
칠복이란놈은 제가 잡았다고 벅벅거리지만 덕수를 쳐다보면서 눈을 껌뻑 거리는
것으로 봐서 덕수가 잡은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순간 좋은 생각이 펏득 머릿속에 떠 오른다.
그렇찮아도 마실을 오다가 국화주 향기를 맞고는 국화주 생각이 굴뚝 같았었는데
안주가 좋으니 칠복이를 데리고 국화주를 서리해다가 마시면 금상첨화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술은 내가 사올테니까 칠복이 너 나 좀 잠깐 보자 "
" 왜? 눈이 오니 혼자 가기가 무섭냐? "
" 그런게 아니고 잠깐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래 "
" 물어볼 말이 있으면 여기서 물어 봐라 "
칠복이는 그래도 제놈이 토끼를 잡았다고 우겨 댄다.
" 여기서 이야기 하면 니놈 입장만 곤란해질텐데 그래도 괜찮겠냐? "
"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입장 곤란해질 일이 뭐 있다고 겁을주냐? 나는 괜찮으니
무슨 이야기든 마음 놓고 해 봐라 "
" 너 지난번에 머시기 한테 연애 편지보낸 이야기인데도 그 이야기 해도 괜찮겠냐? "
" 야이 염병할놈아! 내가 누구 한테 연애 편지를 보냈다고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냐? "
" 뭐라구! 칠복이가 머시기 한테 연애 편지를 보냈다구? 머시기가 도대체 누구냐? "
친구들이 관심이 있다는듯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모두다 칠복이를 쳐다보자 칠복이란놈
금새 얼굴이 빨게지면서 얼른 내 손목을 끌고는 밖으로 나서며
" 알았다 알았어... 토끼는 덕수가 잡았으니 내가 술을 사오면 되잖아 그러니 헛소리는 그만 해라 "
" 야! 궁금해서 죽겠다 칠복이가 누구한테 연애편지를 보냈는지 자세하게 말해봐라 "
" 연애 편지는 무슨놈에 연애편지...!!! 그런 것이 아니고 이자식이 무서움을 많이 타서
나 하고 같이 술을 사러가려고 한 헛소리니 신경 쓸 것 없고 너희들은 토끼탕이나
끓여 놓고 술이나 기다려라"
칠복이는 불이나게 나를 끌고는 대문밖으로 나서더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골목길로 나서며 내 멱살을 틀어 쥐고는
" 야!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주둥아리가 가벼우냐? 그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안 하기로 했잖아 "
" 네놈은 잡지도 않은 토끼를 잡았다고 자꾸만 우기니 열을 받아서 그렇지 "
" 알았다 술은 내가 사 올테니까 연애편지 이야기는 다시는 하지마라 난 지금도 그날
일만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다 "
" 열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사내자식이 한 번 딱지 맞았다고 해서 벌써 포기를
한다면 그게 사내냐 계집이지 예쁜 영숙이를 니놈 색시로 만들려면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하냐 ? "
" 나도 사낸데 자존심이 있지 가난해서 싫다는데 그런데도 자꾸만 매달리란 말이냐? "
" 사랑하는데 자존심은 무슨 얼어죽을 자존심이냐? 그럴 수록 니가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야지 그래야 영숙이도 니 마음을 알고 마음을 열고 너를 좋와하게 되지 사내가
되가지고 듣기 싫은 소리 한마디 들었다고 삣쭉 한다면 거시기 떼서 개나 먹으라고 줘라 "
" 영숙이가 너 보고 뭐라고 하드냐? "
" 가난해서 그렇지 니가 싫지는 않다고 하더라 "
" 영숙이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그래서 뭐라고 했냐? "
"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너는 부지런해서 꼭 부자가 될 놈이라고 했지 "
" 그랬더니 뭐라더냐? "
" 자기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시집가서 처음에는 고생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하더라 "
" 너 혹시 나 듯기 좋으라고 거짓말 하는 것 아니냐? "
" 거짓말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말을 거짓말 하겠냐 "
" 그렇다면 편지 한 번 다시 써줘볼래 "
" 편지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써줄테니까 용기를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매달려 봐라 "
" 친구야 고맙다 ! 그 대신 어느 누구에게도 편지를 써줬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마라 "
" 알았다 그 것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마 "
" 술이나 사러 가자 "
" 술 살 돈은 있냐? "
" 돈이 어딨냐 외상으로 그어야지..."
" 주모가 전에는 안 그러드니 요즘은 돈을 좀 벌어서 그런지 외상술 달라고 하면 깽깽거리더라 "
" 하긴 지난 가을 외상값도 아직 못다 갚았는데 또 외상술 달라고 하면 외가리주모가
줄라나 모르겠다"
" 돈은 걱정 말어라... 돈 없이도 술을 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
" 뭐라구! 돈 없이도 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구? 그러면 술을 도둑질이라도 하자는 거냐?
" 도둑질은 아니고 서리를 하자는 거지 "
" 술이 어디 있는데 서리를 하자는 거냐? "
" 술이 있는 곳은 내가 가르켜 줄테니까 너는 들키지 않고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
" 사냥은 못 하지만 서리라면 자신 있다 "
칠복이에게 박참봉네 국화주 이야기를 귀뜸하자 칠복이는 까무라칠듯 놀라면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 너 지금 불난집에 부채질하냐? 만약 영숙이 한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신새가
뭐가 되라고 영숙이네 술을 서리하자는 거냐? "
" 잘 하면 처갓집이 될지도 모르는데 장래 사위가 미리 술 좀 갖다 먹기로서니 뭐가
잘 못 된 일이냐? "
" 그거야 그렇지만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처갓집은 커녕 산통만 깨질텐데
어떻게 영숙이네 술을 가져온단 말이냐? "
" 소리나는 닭도 잡아 오는데 부엌에 있는 술 가져오는 것이야 식은죽 먹긴데 산통은
무슨 산통이 깨진다고 지래 겁을 먹냐? "
" 그거야 그렇지만 영숙이네 술은 싫다 "
" 싫으면 할 수 없지 술은 내가 가져오는 수밖에... 그 대신 너는 망이나 봐라 "
" 너 같은 두대바리를 시키니 차라리 안 먹고 말지... "
" 그럼 어쩌냐 국화주가 미치도록 땡기는데 "
잠시 입을 닫고는 함박눈이 내리는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든 칠복이가 뭔가 작심을 한듯
" 편지를 대필해주는 니놈이 부탁하니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어도 술서리를 해와야 하겠지 "
" 야! 먹고 죽은 귀신은 땟깔도 좋다는데 국화주 생각이 굴뚝 같으니 이번 한 번만 서리를 해와라"
" 알았다 술서리는 이 번 뿐이다 "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자 앞산에서는 부엉이가 배가 고픈지 "부엉! 부엉!" 처량하게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귓 속을 파고 든다.
칠복이와 나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아무도 몰래 우리집으로 숨어들었다.
부엌으로 몰래 가서 커다란 주전자를 가져와 칠복이에게 건내주자 칠복이는 주전자를 들고는
구렁이처럼 소리도 없이 담장을 넘어서 박참봉 어른 집으로 숨어 든다.
참봉네 집안 또한 등잔불은 모두 꺼지고 쥐죽은듯 고요한데 숨 죽이고 있노라니 싸락거리고
내리는 눈오는 소리만이 귓속을 파고 든다.
아는 놈이 도둑질 한다는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는
담장에 붙어서서 눈만 내다 걸고는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가슴을 조리면서 망을 보고 있으려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 칠복이가 금새 국화주가 가득 담긴 주전자를 들고는 부엌을 빠져 나오더니
내게 주전자를 넘겨 주고는 원숭이처럼 훌쩍 담을 넘어 온다.
눈 깜짝할 사이 귀신 같이 국화주 서리를 해 온 것이다.
눈모자를 쓴듯 함박눈을 이고는 귀하디 귀한 국화주를 한주전자 들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친구네 집으로 오니 사랑방 가마솥에는 토끼탕이 설설 끓으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술주전자를 본 친구들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 야! 기왕이면 됫병소주를 두어병 사오지 막걸리 한주전자를 누구 코에 바르겠다고 그걸 사오냐? "
" 너희들 눈에는 이게 막걸리로 보이냐? "
" 막걸리가 아니면 산삼주라도 되냐? "
" 산삼주는 아니지만 국화주라고 들어는 봤냐? "
" 국화주라니! 그게 정말이냐? "
" 국화주가 어디서 났냐? "
" 아버지께서 약으로 드신다고 지난 가을 한 단지 담군 것을 몰래 가져왔다 "
" 그렇게 귀한 술을 가져오다니... 고맙다 "
박참봉네 국화주인줄 모르는 친구들은 고맙다고 모두들 한 마디씩 씨부렁 거리면서
군침을 삼킨다.
술잔 가득 국화주를 따르니 향기 그윽한 국화향기가 방안 가득 퍼지면서 친구들은
술잔을 들고는 마시기도전에 국화 향기에 취한듯 냄새를 맞느라고 코를 벌렁 거리더니
한 모금씩 맛을 보고는 눈알 별처럼 반짝거리면서 " 카! "하고는 술맛이 끝내준다면서
감탄사를 토해 낸다.
나도 한 모금 맛을 보니 입 가득 가을이 무르 익는듯 국화꽃 향기가 퍼지면서
정신까지 황홀해 진다.
국화주 맛이 얼마나 좋던지 친구들은 거푸 술을 따라마시면서 " 아! "하는 감탄사를
토해내며 국화주를 음미하는지 사르르 눈을 감는다.
국화주가 바닦을 드러낼쯤 국화주에 취한 친구들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내다보며
시인이라도 된듯 홍알홍알 개똥시를 읊조렸는데......!!!!
그날 밤 마신 국화주는 참으로 별미 였는데....
이번 가을에는 만사 제쳐두고 국화꽃을 따다가 국화주를 담궈서 펑펑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토끼탕 끓여 놓고 국화주를 마시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추억을 더듬어 보리라.
아 !
국화주를 마시던 그리운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