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10회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의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그녀가 그의 손에 간 고등어 봉지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거절도 못하고 받아 들었다.
간 고등어를 좋아한다는 여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
고 선뜻 사 오는 여자. 아마 그녀의 성격은 그만큼 개방적이고 활달하다는 것이리라. 여자
는 그에게 고개를 끄떡여 잘 가시라는 표시를 하고는 성큼 걸음을 옮긴다. 간식으로 우유를
사러 왔던 모양이다.
저녁 찬으로 먹은 간 고등어가 짰던 모양이다. 그는 속이 더부룩한 것을 삭히려는 마음에
집을 나선 그는 천천히 백화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집과 백화점 중간쯤에 있는
호프집에 갔다.
이제는 한 낮에 조금 덥다는 것을 느끼지만 저녁이면 추위를 느끼는 날씨인데도 가게 밖에
놓은 야외 탁자에도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도 실내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야외가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가 앉는 것과 동시에 종업원이 메뉴판을 놓고 간다. 그는 무엇을 안주로 할까 생각하지만
별로 안주 삼을 만 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배는 부르니 통닭도 그렇고, 그는 간단하게 마른
안주에 생맥주 한 잔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탁 위에 놓인 벨을 누른다. 벨 소리
를 너무 크게 해 놓아서인지 실내에서 딩동 거리는데 그의 귀에도 들렸다. 종업원이 즉시
그 앞으로 와서 선다. 그가 '마른안주하고.' 하는데 뒤에서 여자의 말이 그의 말을 잘라버린다.
“여기요! 통닭하고 오백 두개요.”
놀란 그가 고개를 드는데 그의 얼굴 앞으로 얼굴 하나가 다가온다. 그 여자였다. 낮에 셔츠를
그에게 팔았던 여자. 지하 매장에서 간 고등어를 사서 건네주고 간 여자. 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
선다.
“놀라셨어요? 놀래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손님은 내가 먹고 싶은 통닭을 시킬 것 같지 않아서요.”
하면서 그녀는 그의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의 마음이 조금 상한다. ‘아니! 뭐 이런 여
자가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그도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차마 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힐 수는 없었다. 까짓 통닭 한 마리와 생맥주 한 잔으
로 기분 상할 필요는 없었고. 또 혼자 마시는 것 보다는 둘이 마시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겠다
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저, 지금 배 많이 고프거든요. 얼른 집에 가서 저녁 먹으려고 부지런히 걷는데 손님이, 아니 사
장님, 아니 뭐라고 불러야……. 아! 그냥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천천히 걸어오
시는데 한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시면서, 그러더니 여기 앉으시더라고요. 문득 얼씨구나! 하는 마
음이 들던데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 한 번 만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가 고개를 들어 여자를 빤히 쳐다본다. 무슨 소리라고 묻는 것이었다.
“얘기하려면 조금 길지도 몰라요.”
종업원이 생맥주부터 그들 앞에 가져다 놓는다. 여자는 건배라는 뜻으로 잔을 들어서 그 앞으로
한 번 내 밀더니 단 숨에 반 정도를 마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