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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소 국경체험(Border Encounter)을 다녀와서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이하, 이보교)는 1월 29일(월)부터 31일(수)까지 미-멕시코 국경지역인 텍사스 주의 엘 파소와 멕시코의 후아레즈 시에서 국경체험(Border Encounter) 프로그램에 16명의 성직자, 활동가, 사회복지사, 변호사들이 참여했다.
이보교는 추방 위기에 놓인 서류 미비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꿈으로 2017년 시작되었다. 뉴욕, 뉴저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미 전역에 150여 가입교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보교는 작년 제1회 민권운동 역사순례에 이어서 올해 제2회 엘 파소 국경체험을 다녀왔다. 이 현장들이 갖는 의미는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난민들의 애달픈 삶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현장이 이보교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찾았다.
정글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며, 사막과 강을 가로질러 수 천 킬로미터를 걸어온 난민들이 마주하는 국경 장벽은 난민들에게 거절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뜨겁게 맞이하는 환대의 장이었다. 손쉽게 사랑을 포기하는 우리 삶 속에 엘 파소 국경은 우뢰 같은 외침을 들려주었다. "벽을 밀면 문이 되며, 눕히면 다리가 된다" 앞으로 3번에 걸쳐 우리의 희망체험을 연재하려고 한다. -편집자 주-
서로의 일상을 떠나 잠시 특별한 시간을 공유하는 첫 시간에 우리의 만남은 반갑게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네개의 공항 (뉴욕, 뉴저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에서 움직였지만 다행히 모두들 30분 정도의 차이로 비슷하게 도착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점심시간 전에 엘파소 공항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주최측인 ABARA 에서는 Nate 와 Clara 가 미리 픽업 차량 두대를 준비해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공항에서 ABARA 오피스 (및 아파트형 숙소) 까지 도착하도록 준비해 주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채 떠나기도 전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경찰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AR-15 이었다. 권총도 아니고, 테이저건도 아니고, 대테러부대에서나 볼 법한 라이플이 그래도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공항 내부에 있는 경찰 오토바이에 걸려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역시 텍사스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준비된 픽업 차량에 몸을 실었다.
ABARA 오피스에 도착하자 ABARA 설립자 Sami DiPasquale 과 줌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John Nelson 목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Sami 의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Border Encounter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첫째날의 스케쥴은 촘촘하게 서로 다른 각도에서 국경 상황을 설명하고 교육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Sami 의 설명에 따르면, 이 단체의 이름 ABARA 는 semitic languages(셈어족,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사용되는 언어들) 에서 ford 를 뜻하는 말로, 한글로 말하자면 여울 및 시내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엘파소는 대부분의 남부 지역이 리오그란데 강을 따라 멕시코와의 국경을 형성하는데, 여울이라는 이름과 semitic languages 를 활용한 작명이 그의 성장 배경인 요르단 및 여러 중동 국가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해주었다. ABARA 의 미션은 “In response to global migration in a polarized world”(양극화된 세계의 글로벌 이민에 대한 대응)인데, 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하여 “We envision a global beloved community flourishing through justice, peace, healing and transformation.”(우리는 정의와 평화, 치유와 변혁을 통해 글로벌 커뮤니티가 사랑으로 풍성해지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이라는 사명선언문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국경 인근에서 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Nate 가 간단하게 우리가 ABARA 와 연결될 수 있게 물꼬를 터 준 PCUSA 의 Tres Rios Border Foundation 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이민의 본질적인 이유와 중남미 지역의 현실’ 이라는 제목으로 Sami 의 세미나가 이어졌다. 이민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하여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죽비와 같이 내 마음을 내려친 말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데, 오로지 미국에서만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좋은 집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삶, 그리고 은퇴 이후의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Sami의 말이었다. 다시 한번, 그의 성장 배경이었던 중동의 현실과 함께 중남미의 이민 현실을 함께 이야기하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미국 교회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민낯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예수 신앙이 넓고 평탄한 길이 되었을까?
이어서 그는 한 장의 세계지도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난민들이 이동하는 경로와 도착하고 싶어하는 나라들을 표시한 지도였는데, 그는 이 지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 미국은 국경 위기의 중심 국가가 아닙니다. 모든 난민들이 미국으로 오고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가장 높은 난민 퍼센트는 유럽에서 나타나고, 아프리카 내에서도 많은 난민들의 이동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전체 난민들의 15퍼센트만이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13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난민 이동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난민의 67퍼센트가 여성과 어린이인 점을 볼 때, 침공/침략 이나 ‘우리의 일자리를 뺏으려 이민자들이 온다’는 클리셰들은 적절하지 않은 비유라는 점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오히려 많은 중남미의 이민자들이나 난민들이 건너야만 하는 Darien Gap 을 지도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사람이 죽어도 매장할 수도 없고, 시신을 데리러 갈 수도 없어서 시체가 길가에서 썩어가는 이 루트를 국경을 건너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야만 하는데, 이 Darien Gap 이라 불리는 지역이 베네수엘라 난민들을 포함하여 중남미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행을 육로로 선택할 경우에 불가피하게 마주쳐야만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말하자면, 아주 절박하고 옵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을 그 길을 이 사람들이 왜 가야만 했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또한, 중남미에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에는 폭력과 가족의 위기, 부의 집중과 소수의 권력 집중, 부패, 카르텔, 이민법 및 추방과 같은 미국의 국내정책, 또한 미국 외 타국들을 향한 꼭두각시 정부와 경제 제재와 같은 미국의 대외정책들, 미국의 마약 소비 행태(미국은 카르텔로부터 마약을 사고, 카르텔은 미국으로부터 총을 산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을 꼽으면서, 단지 난민들이 돈을 좀 더 벌기 위하여 미국으로의 이민을 강행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줌 강의에서도 들었던 one city, two countries 의 도시, 엘파소와 후아레즈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리오 그란데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국경과 담장에 가로막혀 서로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 이 지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8선과 휴전선은 차치하고라도, 만일 서울이 강북과 강남을 한강 기준으로 하여 두개의 서로 다른 나라로 나누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니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 일정은 “양국적 도심지에서의 외국인 혐오적 수사(rhetoric)가 미치는 영향” 이라는 제목으로 오피스 인근의 치유의 정원(healing garden)에서 이어졌다. 이동하면서 Nate 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이 일정이 Border Encounter(국경 마주보기) 전체 일정 가운데 가장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일정이라고 했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는 히스패닉 이름들이 동판으로 벽에 새겨져 추모공원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원이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labyrinth(걸으며 묵상할 수 있도록 바닥에 새겨 놓은 미로 형식의 길) 에 둥글게 서서 2019년 8월 3일에 인근 월마트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전해 들었다. 스물 세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또 다른 스물 두명이 중상을 입은, “인종 청소” 및 “히스패닉 침공” 이라는 외국인 혐오 레토릭이 만들어 낸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종차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나중에 자료를 조사해보니 그 사건에 대해 옹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함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둥글게 모여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한 참가자는 “이름이라는 것은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처음 가지게 되는 라벨이다. 그리고 이 이름들을 보면 마땅히 우리가 히스패닉 이름이라고 짐작할만한 이름들이 벽에 걸려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이름들을 그들이 생명을 잃은 뒤에 기억하기 위해 보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만물에 이름을 붙이라고 하셨을 때도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기를 바라셨다. 나는 이 이름들이, 또한 더욱 다양한 서로 다른 이름들이, 각자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기 위하여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더 많은 이름들을 그들이 생명을 잃기 전에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는 말을 나누었다.
약간은 가라앉은 마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 오피스에서, 우리는 Bethany Rivera Molinar 목사님을 만나 “God’s Heart for the Immigrant, God’s Mission through the Immigrant”(이민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이민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제목으로 이민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함께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들었던 강의였는데, 그녀의 설명 또한 이민이라는 렌즈를 통해 성서의 유명한 여러 이야기들을 즐겁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가라앉았던 마음이 약간은 위로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아담과 이브, 아브람과 사래의 이야기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고향을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떠나야 했던 초기 이민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요셉 이야기의 후반부는 형제들이 다른 옷, 다른 지위, 다른 언어 등으로 인해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들을 찾아보고, 요셉이 결국은 (총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가족들을 위해 변호사가 되어주고, 그들의 이민을 도와주고 결국엔 스폰서까지 되어주었다는 이야기로, 그리고 뒤이어 이스라엘 민족이 왜 나중에 이집트에서 핍박을 받게 되었는지 중요한 이유가 ‘숫자가 늘어서’ 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민자를 향한 두려움이 그들을 핍박하게 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어서 룻과 나오미 이야기에서는 남자들은 죽었고, 룻은 남편이 죽어 신분 유지가 안되었기 때문에 ‘unlawful’(율법에 합당하지 않은,혹은 ’불법의‘) 이민자가 되어버린 나오미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시어머니를 선택하여 낯선 나라로 역이민 온 룻을 통해 이민자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또한 보아즈라는 현지 유력가의 후원을 통하여 이민 과정을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그녀의 기구했던 사연을 살펴보고. 자신의 삶을 oppressor(억압하는자, 혹은 맥락 상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위협당했어야만 했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민자로서 다니엘은 그의 신앙과 그의 음식은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게다가 그의 음식이 현지식보다 더 건강한 음식이었다!) 이야기는 좌중을 모두 웃게 만들었는데, 아마도 모두가 한국 음식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당연히 이민자들’ 이었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의 이야기와 ‘머리둘 곳 조차 없었던’ 예수의 공생애 기간. 외국인이자 혐오의 대상인 이민자 사마리아인이 선한 일을 해내는 장면과, 예수의 마지막 명령 great commission - ‘가서 세상 모두를 그리스도의 제자 삼으라’는 이 말의 원문이 ‘다시 한번’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예수가 가지고 있었던 이민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기록이라는 사실까지. 그녀는 방대한 양과 서로 다른 성경 인물들을 이민이라는 공통적인 관점을 통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 호흡으로 순식간에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성서 읽기에는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월요일의 마지막 교육 세션을 마무리했다. 이제 내일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있는 쉘터를 방문하고, 실제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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