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법적 정의는 평화와 전쟁을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두 공동체가 전쟁 상태에 있을 때, 각 공동체는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좌절시키고자 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반면, 평화 상태에서는 각 공동체가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혹은 상호 협력하며 각자의 목적을 추구한다.
그러나 평화를 단순히 전쟁의 부재로 설명하는 것은 평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자연법에서 평화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한 공동의 노력과 조화로운 활동을 통해 실현되는 적극적인 협력의 성취이다. 평화를 목가적 상태의 은유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화의 본질을 서술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를 본질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실정법의 조문에만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지평을 넓혀 실정법 형성의 근본원리를 고찰해야 한다. 이 근본원리의 고찰은 자연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자연법에서 평화는 인간 공동체의 최종적인 목표이자 인간 완성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평화는 외부적인 압력에 의한 강제적인 안정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공동체 내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모든 구성원이 상호 존중과 연대를 통해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과정과 공동체의 일치와 조화 및 선한 목적을 위한 협력 속에서 온전히 실현된다. 따라서 평화는 일방적인 강요나 억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협력과 상호 신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평화가 외부적인 충돌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협력적인 관계 구축을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임을 시사한다.
자연법은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전쟁은 단순히 적에 대한 승리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전쟁의 정당성은 방어적 목적에 한정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인간 공동체의 번영과 정의로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평화는 단순한 항복이나 복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평화이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으며,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평화는 일시적인 안정이나 외적인 충돌의 부재를 넘어서, 인간의 내적인 충만함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포함하는 것이며, 인간의 완전한 성취, 즉 모든 인간과 공동체의 번영을 목표로 하는 인간 완성의 이상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와 같은 자연법에서 제시하는 전쟁의 정당화 기준은 여러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전쟁은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방어적이고 제한적인 목적을 가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 전쟁의 목표는 항상 정의로운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는 단순히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셋째, 전쟁을 선택하기 전에 모든 대체 수단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며, 이는 평화적인 해결책이 가능할 경우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자연법은 전쟁과 평화를 단순한 정치적 수단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도덕적 과제로 바라보며, 모든 형태의 폭력과 억압을 배격하고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평화의 실현을 추구한다. 이는 각 개인과 공동체가 실천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다. 진정한 평화가 보장될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생존의 차원을 넘어 창조의 목적을 실현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법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대한민국과 그리스도인은 자국 내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념과 자기 선호에 빠져 정치 수단의 관점에서 갈등을 선동하고, 국내외 전쟁을 고조하는가?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생명 살림과 평화실현을 명령받은 제자이기 때문이다.
이 원고를 마무리했을 때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시민과 국회에 의해 민주주의가 방어되었다. 전쟁과 평화의 출발은 국가 내의 문제이다. 국가 내 평화는 법의 지배를 통한 법치국가의 실현이다. 이때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법에 따라 지배받는 것을 의미하지, 자신은 법 밖에서 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법을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Rule by law)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의 지배’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고, 법치국가의 실질적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 실현이다. 평화는 이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으로 실현될 수 있는 규범 조건의 확보와 그 실질적 실현에 달려있다. 이것의 실패가 실질적인 전쟁 상태이며, 오래된 표현으로 ‘자연상태’이다. 전쟁은 다름 아니라 문명국가의 자연상태로의 회귀이며, 그것은 권력자와 법과 법 집행의 타락에서 그 징후가 드러난다. 전쟁과 평화에서 정말 중요한 점은 우리의 일상이 전쟁 상태로 고착되는 것이며, 평화가 수사적 표현으로 전락하는 언어의 타락이다. 이 시대의 징후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응답하는 분별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