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사리 4 -델리박물관 사리
앞에서 설명한 것 총정리하면,
'영지관리인이었던 윌리엄 펩페가 사꺄족 스투파에서 '붓다의 사리'라는 명문이 적혀진 사리용기를 발굴했다.
펩페는 그 사리를 용기와 함께 꼴까따에 있있던 대영제국 인도총독에게 보냈다.
총독은 용기와 사리 두 과를 꼴까따 박물관에 보관하고, 대부분의 사리를 태국 국왕에게 보냈다.
태국 국왕은 그 사리 대부분을 방콕의 왓사켓(golden temple)에 봉안하고, 미얀마와 스리랑카에 몇몇 사리를 기증했다.'
여기까지 설명했습니다.
그럼 델리 박물관에 전시되있는 부처님 사리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것은 펩페가 발굴한 사리가 아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델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리는 펩페가 발굴한 사리가 아닙니다.
( 이 사실은 저도 몰랐는데 인터넷 검색으로 새롭게 알게 된 것임.)
이 사리 이야기는 인도가 영국으로부처 독립한 한참 뒤의 일입니다.
1970년에 다르마끼르띠 스님이 당시 인도총리였던 간디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삐쁘라와 유적지가 폐허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조사 발굴과 복원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그 편지는 '즉시 이행하라'는 쪽지가 붙은 채로 고고학청장에게 전달되었고, 즉시 스리와스타와(Srivastava)를 팀장으로한 발굴팀이 파견되었습니다.
이 발굴에서 동쪽 승원터에서 '까삘라왓투 빅쿠 상가'라는 인장이 발견되어, 이곳이 까삘라왓투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로서 틸라우라콧(Thilauracot)이 까삘라왓투라는 네팔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발견은 펩페가 발굴한 사꺄족 스투파에서 펩페가 발굴한 층 아래에 한 층이 더 발견되었습니다.
즉, 사꺄족 스투파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는데, 펩페의 발굴은 두 번째 층까지이고, 그 아래 한 개의 층이 더 있었던 것입니다.
그 층에서 두 개의 사리용기가 또 발견되었습니다.
그 두 사리용기와 용기에 들어있는 사리를 우리가 현재 델리박물관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꺄족 스투파의 세 개의 층이 다른 시간대에 증축되었다는 주장이나, 펩페가 발견한 사리용기에 씌여진 명문이 아소까 대왕 시대의 것이라는 금석학자의 주장과 같은 이야기는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머리 아픈 문제는 일단 제껴두어야 함.)
그건 그렇다치고,
그래서 델리박물관의 부처님 사리가 1993년 몽골, 1994년 싱가포르, 1995년 한국, 1996년 태국, 2012년 스리랑카, 이렇게 세계 나들이를 했다고 합니다.
1995년에 한국에 전시되었다는데, 그러면 내가 중이 된지 5년째인데, 나는 왜 그런 소식을 못 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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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김성목, 홍성일 및 외 8명
첫댓글 사리와 관련된 사진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